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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KAL 폭파사건]공작원 김현희 기자회견

[KAL 폭파사건]공작원 김현희 기자회견
입력 1988-01-15 | 수정 198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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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폭파지령]

    ● 앵커: 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1월 15일 오늘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의 진상에 접한 자유인들은 분노와 경악이라는 말 밖에는 더 할말을 잊었습니다.

    무고한 115명의 인명을 앗아간 장본인은 바로 북한 공산테러 집단의 김정일이고 그리고 그 하수인은 김의 친필 지령을 받은 특수 공작원으로 그 정체가 들어났기 때문입니다.

    북괴 외교관의 딸 김현희는 북괴의 허구와 남한의 진실을 이제 똑똑히 깨달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사용된 마유미라는 가면을 벗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먼저 오늘 뉴스데스크는 김현희 기자회견부터 전하는 순서로 진행해 드립니다.

    ● 김현희 기자회견: 858편기를 폭파하기 위해서 858편기에 탈 때와 어떻게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내렸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김현희: 비오그라드에서, 비오그라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같이 간 과장과 지령으로부터 폭파용 라디오와 약술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호텔에서 산 비닐주머니에 넣어가지고 폭파용 라디오와 약술을 든 비닐주머니를 가지고 비오그라드에서 바그다드로 왔습니다.

    바그다드에서 두 차례의 검열을 받았는데 짐 검사와 몸 검사를 받을 때 처음에 라디오 배터리 때문에 검사에 걸려서 문제가 대두됐습니다.

    그때 같이 간 김 선생님이 항의해서 라디오 배터리를 넘겨받고 무사히 2차 검열은 끝냈습니다.

    다음 다시 2차 검열에서는 폭파에 쓰이는 배터리를 김 선생님에게 드렸는데 2차 검사에서는 그냥 무사히 통과됐습니다.

    검사가 다 끝난 다음 홀에 들어가서 김 선생님이 라디오에 배터리로 갈아 넣고 9시간 후로 폭파하라고 스위치를 동작시켰습니다.

    그리고 라디오와 약주병, 액체용 폭팔물인 약주병과 함께 넣어가지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비행기에 올라서 그 비닐주머니를 창문위 선반위에 올려놓고 아부다비에 와서 내릴때는 그 비닐주머니를 가지고 내리지 않았습니다.

    ● 기자: 처음에 와서 완강히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한국인이 아니라고 했다는데 어떤 계기에서 심경변화를 일으켰습니까?

    ● 김현희: 그것은 떠날때도 그렇고 그것은 이번 사건의 비밀을 포장하고 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궁의 아비심을 보장하기 위해서 끝까지 비밀을 지키려고 부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와서 차안에서 시내를 다니면서도 시내 전경과 인민들의 모습을 통해서도 그렇고 TV를 통해서도 많을 것을 보게 되었고 가깝게 지내는 수사관분들과 그 밖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북쪽에서 교육을 철저히 받고 생각하던 부분이, 현실이 너무도 차이가 나고 반대되는 현실이 좋기 때문에 점차 어느것이 진실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게 되어서 제가 이 자리에서 기만당해서 이제까지 살아온 것을 깨닫게 되었고 배신감을 더욱 느끼게 됐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사실을 밝히자는..

    이번 사건으로 이렇게...

    ● 기자: 그동안의 비행기 폭발이후부터 지금까지 아마 많은 생각을 했을텐데 지금 현재의 심정은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겠다는 각오를 말씀해 주시고 그리고 남한에 와서 어디를 가봤고 여기와서 느낀게 뭔지 그것을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 김현희: 저가 죄를 지은 몸으로서 이런 사건으로 돌아가신 분들과 그리고 가족들 그리고 그러한 충격을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이곳 인민들 앞에 얼굴을 들고 차마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아서 처음에는 기자회견을 그만두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저 조용히 죽게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근데 제가 생각을 거두고 여기에 나오게 된 것은 여기 와서 차를 타고 시내를 다니며 발전된 여기 모습과 여기 인민들의 자유로운 생활과 표정을 보게 되었고 TV를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정치분야에서 아주 자유가 있는 것이며 저는 직접 참가는 못했지만 그게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모든 인민들이 자기 의사에 따라서 각기 대통령을 선거한 것을 통과시켜 전체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TV를 통해서 저쪽에서도 이것이 일제의 식민지이고 민족성의 말살이고 외세가 판이 치는 세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와는 반대로 유구한 민족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러한 TV 프로들이 민족의 역사와 전통으로 대화하는 프로로 되어 있고 오히려 민족성이 북쪽보다도 더 강하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통해서 수사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가 생각하고 있던 저쪽에서 계획하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상반된 현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진실을, 비록 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백번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비록 제가 죽는다 해도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드리는 것이 돌아가신 분들과 그리고 가족들 그리고 인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고 또 앞으로 이번 일과 같이 무의미하고 죄없은 많은 인민들이 희생되는 폭력적이고도 무의미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바라기 때문에 밝히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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