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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KAL 폭파사건]정부측 수사 경위[손석희]

[KAL 폭파사건]정부측 수사 경위[손석희]
입력 1988-01-15 | 수정 198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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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경위]

    ● 앵커: 다음은 그동안의 정부 측 수사경위 그리고 김현희를 직접 수사한 국가 안전기획부 수사관의 기자회견 내용을 손석희기자가 정리해 드립니다.

    ● 기자: 정부는 당초부터 사고 KAL기가 테러에 의해서 폭파됐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수사의 첫 작업으로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린 15명의 외국인 탑승장 명단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 15명 가운데 하찌야 신이치와 하찌야 마유미를 용의자로 추적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보통 일본 여행객들이 입국 신고서에 성만을 기재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이름만을 기재한 점.

    또 다른 비행편을 마다하고 6시간씩 기다리면서 까지 굳이 대한항공기를 이용한 점 등 때문이였습니다.

    수사의 분기점을 이룬 것은 바레인 당국이 공항에서 이들을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갑자기 음독자살을 기도한 때 부터였습니다.

    국가 안전기획부는 이러한 수법이 북괴 간첩들의 행동과 같고 자살용 독극물 형태가 지난 84년과 85년 검거된 간첩 정해권, 신광쇠의 것과 같다는 점 등을 중시하고 바레인 당국에 김승일의 사채와 김현희의 한국 인도를 강력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작년 12월 15일 서울 도착 직후부터 김현희는 범행 진술을 물론 음식도 거부하면서 완강히 버텼고 비교적 안정을 회복한 뒤에도 중국어 또는 일본어로 자신이 중국 흑룡강성 태생에 백취해 라는 등 허위 진술로 북괴 공작원임을 감춰서 수사는 난항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술은 허위임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 이상연 안기부 제 1차장: 일본, 중국의 전통적 생활양식이나 지리에 미숙하고 사용하는 중국어가 흑룡강성 말씨가 아닌점 등이 발견되어 진술내용에 허위 여부를 다각적으로 추궁하게 되었습니다.

    또 점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침묵과 거짓의 벽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김현희는 TV 등을 통해서 본 우리의 생활상이나 수사관의 심문방법 등이 북괴에서 교육받았던 것과느느 크게 다른 점 등에서 심한 심리적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서울 도착 8일 만인 구랍 23일 오후 5시경 김현희는 갑자기 여 수사관의 가슴을 치면서 “언니 미안해.” 라고 우리말을 처음 사용하며 울먹였습니다.

    그후 범행 일체의 순순한 자백역시 우리말로 했음을 물론입니다.

    한편 김현희의 수사를 맡았던 수사관계자는 오늘 오전 기자 회견을 갖고 김승일과 김현희가 우리 측에 인도된 후에 수사과정 등에서 이들이 KAL기 폭파범이란 심증을 굳힌 근거는 김현희의 수첩에 적힌 숫자의 배합이 비엔나 등지의 북괴 공관 전화번호와 일치하고 김승일의 사체 부검결과 치아를 해넣는 방식이 전형적인 북한식이 였다는 사실등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김현희가 수사 초기 줄곧 중국어와 일본어로만 말했으나 우리 수사진은 그녀가 한국어를 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처음부터 통역을 세워서 한국어로만 심문했으며 김현희가 못 알아듣는다는 가정하에서도 계속 정중한 말투를 쓴데 대해서 신뢰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 측은 김현희로 하여금 인간적인 정을 느껴 자발적으로 진술하도록 여자 수사관이 24시간 함께있으면서 머리를 빗겨주는 등 세세한 것 까지 돌봐 줬으며 수사기간 중 시내 관광과 TV시청 등을 통해서 우리의 실상을 알고난 뒤에 결정적인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김현희가 바레인에서 자살을 기도했을 때 죽지 않은 것은 현지 관계관과의 실랑이 도중에 독약이 든 담배가 부러져 극히 소량의 독약만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잘못 알려진대로 이 자살기도가 제스처 였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관계자는 또 김현희의 몸에 상처가 많다는 소문과는 달리 BCG 접종 자국 외에는 흉터가 없으며 현재 건강 상태도 양호한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밖에 김현희는 북한에서 일본어 교육을 받을 때 31살가량의 일본 여인으로부터 배웠는데 이 여인은 수년 전 일본의 어느 해변가에서 산책 중에 북괴 공작원으로부터 납치돼온 여인으로 납치 후 김정일이 살려주는 것만도 은혜를 베푼 것이라면서 이름을 은혜로 직접 지어 줬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수사관계자는 김현희의 향후 신병 처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진행될 것이라고만 밝혔습니다.

    MBC 뉴스 손석희입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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