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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대표의 영욕의 30년[김석진]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대표의 영욕의 30년[김석진]
입력 1992-05-19 | 수정 1992-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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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대표의 영욕의 30년]

    ● 앵커: 이번에는 마침내 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김영삼 대표 30년 야당생활을 청산하고 정치노선을 바꾸어서 대권에 도전하기까지 그가 겪은 숱한 영옥의 길을 정치부 김석진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결단의 지도자 뛰어난 승부사 김영삼 후보를 두고 정가에서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40년 동안의 현대 정치사에서 고비마다 정면 돌파로 승부를 걸었던 김영삼 후보의 정치역경은 야당시절 민주화투쟁경력으로 시작됩니다.

    지난 72년 유신선포직후 정권타도의 강경 투쟁을 선언했던 그는 총재직무집행가처분과 의원직 재명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83년 5공 시절 언론통제 속에서는 민족회복을 외치며 23일간 계속됐던 단식투쟁은 그 자신사생결단의 정치 행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김영삼 후보 83년 단신투쟁: 여러분께 걱정 끼쳐 미안합니다.

    ● 기자: 반 독재민주화투장의 기수로 한국 여당 사를 주도했던 그에게 시련과 좌절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40대 기수론을 처음 재창하고 신민당대통령후보에 도전했던 그는 김대중후보에게 역전패의 쓰라림을 당했습니다.

    ● 김영삼 후보 70년 신민당전당대회: 우리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이 나라는 민주주의의 진보 한발 나서는...

    ● 기자: 87년 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야당후보 단일화 불발 속에 출마해 이른바 1노3김 4자 대결에서 2위에 그쳐 모처럼의 집권기회를 그쳤습니다.

    이듬해 13대 총선 에서도 제1야당의 자리를 평민당 에게 내주고 못내 제3당으로 전락하는 시련을 경험했습니다.

    결국 잇따른 시련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아래 3당 통합을 결행하는 특유의 승부기질로 이어졌습니다.

    ● 김영삼 후보: 저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나라와 겨레의 지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짐합니다.

    ● 기자: 온건. 중도개혁노선과 의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김영삼 후보는 현역 정치인가운데 최다선의원인 9선의 정치경력으로 헌정사의 숱한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3대 민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온 그는 약관 25세의 최연소국회의원기록과 원내총무5번, 대변인2번, 야당당수 세 차례 집권당대표2명의 다채로운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당 소수파를 이끌고 집권당에 변신한 그는 다수파의 끊임없는 시비와 내각제 각서파동 등의 파란을 극복하고 오늘 일단 대권후보도전에 성공했습니다.

    인간적인 포용력과 친화력을 강점으로 내세우는 김영삼 후보에게 대통령 자격론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지적으로 논리보다 감각을 중시하는 성향과 신중함보다는 용기를 앞세운 추진력 지나치게 낙천적인 성품 등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부인 선명순 여사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둔 김영삼 후보는 마산에 거주하는 부친 김홍조옹에게 매일 아침 안부 전화를 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상도동 자택부근에 야산길 4 (판독불가) 조깅은 25년 동안 하루도 그르지 않아 대권에 도전하는 집념의 일단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MBC뉴스 김석진입니다.

    (김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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