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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100년전 서울 모습[홍순관]

100년전 서울 모습[홍순관]
입력 1994-07-28 | 수정 199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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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전 서울 모습]

    ● 앵커: 잠시 100년 전으로 돌아가봅니다.

    100년전인 1894년, 구한말을 조감할 수 있는 통계가 통계청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인구는 1,300만, 서울 인구는 30만이었습니다.

    외국인이 17만 명이나 북적였고, 강도가 활개를 쳤습니다.

    홍순관 기자입니다.

    ● 기자: 구한말 전국 인구는 현재 남한 인구의 30%인 1,3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구 밀도는 ㎢당 60명으로, 작년도 세계 인구 평균 밀도인 41명보다 많아, 당시에도 여전히 인구가 조밀한 나라였습니다.

    서울의 인구는 요즘 한 개 구청 인구보다 훨씬 적은 30만 명이었으며, 기와집은 10채, 3채 꼴이었습니다.

    외국인은 17만 명 가량이 채류해, 작년 말 현재 등록된 외국인수 6만 7천 명보다 오히려 많아, 당시 주변 열강이 한반도를 노린 쟁탈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합니다.

    1895년 시해된 명성황후 민비의 장례비를 쌀값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요즘 돈 100억 원 정도였는데, 이 돈은 당시의 농, 상공부 예산보다 많았습니다.

    당시 교육은 여전히 1만 6천 개가 넘는 서당이 주로 담당했었습니다.

    합방 직전까지 전국의 근대적인 보통 학교가 173개가 생겼으나, 보통 학교의 여학생 비율은 6%에 불과했고, 하루 평균 11.6%가 결석을 하고 30%는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1898년 독립신문에 난 쌀 한가마 가격은 4원, 요즘 돈으로 2만 3천원이었고, 갓 보급되기 시작한 전화 한통화 값은 2전으로 계란 1개값보다 조금 비쌌습니다.

    범죄 중에서는 강도가 많아 인구 10만 명 당, 24건이 발생되어 요즘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많았습니다.

    MBC뉴스 홍순관입니다.

    (홍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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