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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보안사, 5, 6공 권력의 핵심[박준우]

보안사, 5, 6공 권력의 핵심[박준우]
입력 1995-11-28 | 수정 1995-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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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사, 5, 6공 권력의 핵심]

    ● 앵커: 5,6공 13년 동안은 가히 보안사 공화국이라고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보안사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신군부 집권의 계기가 됐던 12.12 군사반란, 그리고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 등에서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보안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준우 기자입니다.

    ● 기자: 79년 여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계엄령 하에서 보안사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습니다.

    보안사는 이에 따라 계엄 하에서는 중앙정보부와 검찰, 경찰 등 공안기관의 정보와 수사기능 일체를 보안사가 지휘 감독하도록 한다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구상에 불과했던 합동수사본부 설치안은 그로부터 몇 달 뒤 10.26사건이 수사를 보안사가 맡게 되면서부터 현실화 됐습니다.

    이처럼 뚜렷한 설치근거 없이 출발했던 합수부는 계엄 해제시까지 15개월 동안 초법적인 기구로 군림하면서 신군부의 내란행위를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2.12 군사반란 당시에는 보안사가 독점하고 있던 각급 부대에 감청권을 활용해 정식 지휘계통에 있던 장교들의 진압 움직임을 사전파악해서 무력화 시켰습니다.

    5.17 비상계엄 확대와 함께 주요 정치인과 유력인사들을 연행할 때도 명단작성에서부터 수사 후 처리방안까지 전 과정을 입안, 실행한 곳이 보안사였습니다.

    보안사는 또 자신들의 집권 기도를 감추기 위해 언론 등, 모든 출판물에 대해 검열을 실시했으며 공무원 해직, 삼청교육, 언론 통폐합 등 위법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여러 조치에 관여했습니다.

    75년 창설 이후 91년 기무사로 명칭이 바뀔 때까지 보안사는 모두 10명의 사령관이 재임했으며 그중 2명의 대통령과 2명의 장관을 배출하는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10명의 사령관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명이 12.12와 5.18의 책임자로 수사선상에 오름으로써 보안사는 과거 수행했던 역할에 대해 또 한 차례 냉엄한 평가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MBC뉴스 박준우입니다.

    (박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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