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뉴스데스크

조선왕조실록 청백리 기록 후인들의 귀감[이선재]

조선왕조실록 청백리 기록 후인들의 귀감[이선재]
입력 1997-02-10 | 수정 1997-02-10
재생목록
    [조선왕조실록 청백리 기록 후인들의 귀감]

    ● 앵커: 조선 시대에는 청렴한 관리를 청백리라고 해서 그 자손들을 관리로 우선 등용시킨 반면에 뇌물을 받은 관리의 후손들은 과거를 못보게 하고 또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부패를 철저히 막기 위한 이중 장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있는 청백리의 일화를 알아봅니다.

    ● 기자: 조선왕조실록의 청백리 기록은 2천 건이나 나옵니다.

    경기 고을을 순행하던 성종이 관찰사가 김종순 집에 쌀과 콩이 두어 말만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성종은 술상을 올리라고 명한 뒤에 관찰사가 청렴함이 지나쳐 거의 굶어죽게 되었다며 위로합니다.

    명종 1년, 청백리로 선정된 대사관조사수가 청백리에서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간청합니다.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혹시 주는 자가 있으면 받아서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양심에 왕은 그대로 청백리에 이름을 올려 놓게 합니다.

    청백리 시호에는 절제한다는 절자가 많이 들어가 있는데 세종은 신유정에게 무절, 세조는 한확에게 양절, 김담에게 문절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 이남희 (서울시스템 한국학 D/B 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선왕조실록에는 중신들의 기록을 통하여 그 인물의 행적과 평가를 밝혀 놓고 있는데 특히 그 인물이 청렴하고 결백했는지를 명백하게 밝혀놓고 있어서 후인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 기자: 또 곤궁한 청백리 자손들을 구제하거나 관리로 등용함으로써 부패를 막는 장치로 활용했습니다.

    세종 때 사헌부의 상서 문을 보면 뇌물을 주는 사람은 뇌물을 받을만한 사람에게만 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뇌물을 받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가져왔다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선재입니다.

    (이선재 기자)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