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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기자이미지 김소영 기자

공옥진 선생님 일어나세요!

공옥진 선생님 일어나세요!
입력 2007-05-27 21:56 | 수정 2007-05-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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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병신춤하면 떠오르는 공옥진 선생을 아시지요.

    춤, 노래, 재담이 어우러지는 일인 창무극의 선구자입니다. 하지만 익살과 해학의 그 놀이판을 이제 다시는 못 볼 것 같다고 합니다.

    김소영 기자입니다.




    한 때는 혼자서 수천 관객을 웃기고 울렸습니다.

    학교라고는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춤,노래,재담 3박자를 고루 갖춘 창무극, 이를테면 1인 뮤지컬의 선구자였습니다.

    전남 영광 불갑산 자락에 자리한 <영광예술연구소>. 연구소 간판은 헛간 천정을 받치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부엌과 방이 따로 없는 뒷 방. 공옥진 선생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취재진을 맞았습니다.

    수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회복했지만 작년에는 교통사고까지 당한 것입니다.

    ● 공옥진 : (선생님 근황 궁금해하시는 분 꽤 많거든요?) "뭐 전할 것도 없어. 죽기 아니면 살기인데 뭐. 내 몸이 아프고 괴로우니까 말도 못하지."

    한나절을 설득했습니다. 무너져내린 육신을 완강하게 가리는 고통스런 몸짓에서 예인의 마지막 자존심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 문귀복(이웃집 할머니) : "누가 찾아오면 자주 울어. 마음도 약하신 분이야. 누가 암만해도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스물이 채 안돼 한 결혼 생활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하나뿐인 딸도 제 앞가림에 급급한 처지, 한 때 제자들도 가르쳤지만 돌아서면 남남이나 한가지였습니다.

    자신의 한을 쏟아 낼 수 있는 무대만이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 공옥진(2001년) "이렇게 올라가가지고 착 뿌릴때 손끝으로 내 한과 모든 것이 손 끝으로 노출돼버려."

    춤, 노래, 재담을 혼자서 구사하는 공연의 명성은 드높았지만 문화재 지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 진옥섭 : "춤으로 소리로 따로 따로 문화재가 지정되는 거죠. 이분이 이룬 것들은 이분 당대에서 끝나는 거여요. 이것은 어마어마한 손실인 거죠."

    ● 인터뷰 : (건강 꼭 챙기세요, 선생님. 저희 갈께요.) "미안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돌아누운 공옥진의 방. 홀로 삭이는 한의 소리만이 떠돌았습니다.

    MBC 뉴스 김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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