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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송요훈 기자

박경리의 삶과 문학세계

박경리의 삶과 문학세계
입력 2008-05-05 21:47 | 수정 2008-05-1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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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고 박경리 선생은 우리 근현대 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연민, 인간에 대한 애착, 이는 작가 박경리의 삶이자 문학이었습니다.

    송요훈 기자가 회고해 봅니다.


    격동의 역사에 서막이 오르던 구한말에서 해방까지.

    4대에 걸친, 주인공 서희와 그 가족의 변천사에 한국의 근대사를 투영한 소설 <토지>는 우리 현대문학사에 산맥처럼 우뚝 선 대작입니다.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로도 번역돼 외국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오르내렸습니다.

    ● 정현기 (문학평론가, 전 연세대 교수) : "쓴 기간과 그 길이와 그가 가지고 있는 소설의 미학적인 함량과 이런 것으로 봐 한국 현대소설사에 하나의 거대한 산맥으로 보고 있습니다."

    1955년 단편소설로 등단한 박경리 작가는 <토지>의 집필을 시작하면서 서울을 떠나 스스로를 유폐시켰습니다.

    그리고 세상과 단절한 채 홀로 온갖 서적들을 섭렵하고 꿰어가며, 온갖 인간군상의 삶과 한 시대의 역사를 원고지 한 장, 한 장에 채워갔습니다.

    그렇게 25년, 채워진 원고지가 4만여 매, 등장인물은 6백 명이 넘습니다.

    ● 권영민 (서울대 국문학교 교수) : "작가적인 생애의 반을 하나의 작품에 매달려서 끈질기게 그 작품의 완성도를 추구했다는 건 근대문학 또는 현대문학 100년사에 이와 같은 작가와 작품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25년간 한 작품에 매달리면서 자신의 혼을 모두 쏟아 부은 탓일까, 작가는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아야 했습니다.

    ● 박경리 작가 (2004년 고향 통영 방문 강연) : "토지가 끝나면 나는 해방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멍에를 짊어지고 그야말로 꼼짝달싹할 수 없었어요."

    <토지>는 작가 자신의 삶이었습니다.

    딸조차도 여자이기에 혹독하기만 했던 철저한 봉건적 가부장이었던 아버지.

    남편과 아들을 빼앗아간 전쟁.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고독으로 파고들었고, 원고지에 상처와 아픔을 토해냈습니다.

    고독은 탈출구였고 문학은 치유제였습니다.

    ● 박경리 작가 (2006년, 토지문화관에서) : "소설을 혼자 하는 작업, 외로운 시간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어요."

    <토지>로 명예를 얻었으나 그 명예를 좇아 세상으로 나오는 대신 어려운 후배작가들의 글쓰기를 돕는 것으로 말년의 생을 보낸 작가 박경리.

    ● 박경리 작가 : "그냥 무료로 자고, 무료로 밥 먹고, 작품만 쓰면 되는 거죠."

    그가 후배작가들에게 주는 고언은 기계문명에 매몰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 박경리 작가 : "기계문명에 젖은 감성으로는 재미, 일회용... 진정한 예술은 소외당하죠."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처럼, 모든 것을 문학에 바치고 남은 것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갔지만 박경리, 그의 이름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MBC 뉴스 송요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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