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현원섭 기자
현원섭 기자
MBC뉴스데스크 '영욕의 40년'
MBC뉴스데스크 '영욕의 40년'
입력
2010-10-05 21:40
|
수정 2010-10-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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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그럼 오늘의 주요뉴스 보도는 여기서 마치고 이어서 지난 40년동안 MBC뉴스데스크를 빛낸 명 앵커들이, 직접 뉴스를 진행하는 특별순서를 준비했습니다.
◀ANC▶
뉴스데스크 40년 역사의 추억이 하나씩 펼쳐지겠습니다.
반가운 얼굴들도 또 아련한 기억도.
지금부터 함께 하시죠.
◀ANC▶
MBC 뉴스데스크가 시청자와 함께 한 지 오늘로 만 40년이 흘렀습니다.
뉴스데스크는 늘 대한민국의 텔레비젼 뉴스를 선도하면서 시대의 정직하고 냉철한 기록자가 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뉴스데스크의 지난 40년을 현원섭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VCR▶
1970년 10월 5일 밤 10시 30분.
MBC 뉴스데스크 첫 방송은
한국 텔레비전 뉴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앵커맨의 등장은 파격이었습니다.
방송 기자들은 펜 대신 마이크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나갔습니다.
1973년, 생생한 고발 뉴스의 등장은
방송 뉴스가 진가를 발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SYN▶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
소에게 물을 먹입니다."
◀SYN▶
"컬러로 여러분께 방송해드립니다.
앞으로 많이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1980년 말 역사적인
컬러방송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뉴스데스크는 보다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안방으로 배달했습니다.
앵커는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가
현장 생중계라는
방송뉴스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SYN▶
"이곳 쓰루가 항구에서 인공위성 통해서
국민의 큰 관심 끌고 있는
김만철씨 일가소식을 중심으로
뉴스데스크 보내드립니다."
뉴스데스크의 시선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극지로까지 향했습니다.
사상 두 번째로 남극 현지 생중계를
성공했고, 북극도 탐사 취재했습니다.
◀SYN▶
"남극대륙은 넓이가 한반도 60배나
되는 세계에서 5번째 큰 대륙입니다."
방송뉴스의 형식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80년대.
그러나 동시에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무력진압,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뉴스데스크는 국민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되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남겼습니다.
◀SYN▶
"띠띠띠 땡!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90년대의 서막을 알린 건
전쟁이었습니다.
포탄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위태로운 걸프전 한 복판에
MBC 기자들이 투입됐고,
뉴스데스크 또한 45일간
치열한 보도 전쟁을 치렀습니다.
◀SYN▶
"이라크 국민들은 최후의
전의를 불태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국민 소득 만 달러 돌파,
그러나 현대사에 유례없던
초고속 성장의 이면은
너무도 참혹했습니다.
뉴스데스크는 그 모든 현장을
신속하고 냉철한 눈으로 기록했습니다.
월드컵 경기 직후 2시간씩
숨가쁘게 이어졌던 거리응원 보도.
뉴스데스크 속 응원 현장에서 우리는
이념도 갈등도 없이 오직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습니다.
뉴스데스크 40년.
MBC는 늘 시청자와 함께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왔습니다.
때로는 냉철하게
사회의 비리를 파헤쳤고,
또 때로는 따뜻하게
서민을 위로했습니다.
이제 MBC 뉴스데스크는 디지털 시대,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을 앞두고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시청자의 입장에 서고,
시청자의 눈이 되는
정직한 기록자로 남을 것입니다.
MBC뉴스 현원섭입니다.
그럼 오늘의 주요뉴스 보도는 여기서 마치고 이어서 지난 40년동안 MBC뉴스데스크를 빛낸 명 앵커들이, 직접 뉴스를 진행하는 특별순서를 준비했습니다.
◀ANC▶
뉴스데스크 40년 역사의 추억이 하나씩 펼쳐지겠습니다.
반가운 얼굴들도 또 아련한 기억도.
지금부터 함께 하시죠.
◀ANC▶
MBC 뉴스데스크가 시청자와 함께 한 지 오늘로 만 40년이 흘렀습니다.
뉴스데스크는 늘 대한민국의 텔레비젼 뉴스를 선도하면서 시대의 정직하고 냉철한 기록자가 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뉴스데스크의 지난 40년을 현원섭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VCR▶
1970년 10월 5일 밤 10시 30분.
MBC 뉴스데스크 첫 방송은
한국 텔레비전 뉴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하나의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앵커맨의 등장은 파격이었습니다.
방송 기자들은 펜 대신 마이크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나갔습니다.
1973년, 생생한 고발 뉴스의 등장은
방송 뉴스가 진가를 발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SYN▶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
소에게 물을 먹입니다."
◀SYN▶
"컬러로 여러분께 방송해드립니다.
앞으로 많이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1980년 말 역사적인
컬러방송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뉴스데스크는 보다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안방으로 배달했습니다.
앵커는 스튜디오를 박차고 나가
현장 생중계라는
방송뉴스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SYN▶
"이곳 쓰루가 항구에서 인공위성 통해서
국민의 큰 관심 끌고 있는
김만철씨 일가소식을 중심으로
뉴스데스크 보내드립니다."
뉴스데스크의 시선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극지로까지 향했습니다.
사상 두 번째로 남극 현지 생중계를
성공했고, 북극도 탐사 취재했습니다.
◀SYN▶
"남극대륙은 넓이가 한반도 60배나
되는 세계에서 5번째 큰 대륙입니다."
방송뉴스의 형식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80년대.
그러나 동시에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무력진압,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뉴스데스크는 국민의 충실한
눈과 귀가 되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남겼습니다.
◀SYN▶
"띠띠띠 땡!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90년대의 서막을 알린 건
전쟁이었습니다.
포탄이 쉴새없이 쏟아지는
위태로운 걸프전 한 복판에
MBC 기자들이 투입됐고,
뉴스데스크 또한 45일간
치열한 보도 전쟁을 치렀습니다.
◀SYN▶
"이라크 국민들은 최후의
전의를 불태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국민 소득 만 달러 돌파,
그러나 현대사에 유례없던
초고속 성장의 이면은
너무도 참혹했습니다.
뉴스데스크는 그 모든 현장을
신속하고 냉철한 눈으로 기록했습니다.
월드컵 경기 직후 2시간씩
숨가쁘게 이어졌던 거리응원 보도.
뉴스데스크 속 응원 현장에서 우리는
이념도 갈등도 없이 오직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습니다.
뉴스데스크 40년.
MBC는 늘 시청자와 함께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왔습니다.
때로는 냉철하게
사회의 비리를 파헤쳤고,
또 때로는 따뜻하게
서민을 위로했습니다.
이제 MBC 뉴스데스크는 디지털 시대,
종합편성 채널의 등장을 앞두고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시청자의 입장에 서고,
시청자의 눈이 되는
정직한 기록자로 남을 것입니다.
MBC뉴스 현원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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