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박재훈 기자
체르노빌 참사 25년‥현재 모습은?
체르노빌 참사 25년‥현재 모습은?
입력
2011-04-26 22:13
|
수정 2011-04-2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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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오늘은 사상최대의 원전재해였던 체르노빌 참사가 일어난 지 꼭 25년 되는 날입니다.
체르노빌은 과연 25년 전 비극을 모두 극복 했을까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박재훈 기자가 체르노빌 현지에서 전해왔습니다.
◀VCR▶
체르노빌로 가는 길.
발전소 밖
3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자
25년동안 외부의 접근을 차단해 온
검문소가 막아섭니다.
통제구역에 들어서자 펼쳐지는
자작나무와 전나무숲은
방사능의 영향 탓에 아직도
제 색이 아닙니다.
사상최악의 참사를 일으킨
원전 4호기의 백미터 앞까지
접근했습니다.
구소련 당국이
급하게 발전소를 봉합한 콘크리트 벽은
시간이 흐르면서 곳곳이 갈라지고 있고
그 사이로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INT▶ 션 패트릭/그린피스 활동가
"다른 곳보다 방사능 수치가
백배 이상입니다.
여기서는 못 삽니다."
발전소 인근 풀숲 곳곳에서는
경고 표시판과 고철덩이가
발견됩니다.
25년 전
방사성 폐기물을 매립했거나
미처 다 묻지 못한 곳입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아스팔트 길은 사실
관리당국이 거의 날마다 물청소를
하기 때문에 방사능 수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
조금만 풀숲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취재를
계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이 죽음의 땅이
방사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INT▶ 세르게이/국립 방사능센터 소장
"세슘이 분해될 때까지는 3백년,
플루토늄은 2만 4천년이 걸립니다."
당시 체르노빌 등 피해지역 주민들은
키에프로 옮겨 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 이천여명 가운데
5천여 명이 방사능 피폭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7살 야로슬라브는 한 쪽 다리가
자랄수록 더 길어지는 장애를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INT▶ 나제쥐다/야로슬라브 어머니
"옆 집 남자애는 간암에서 폐암까지
이르렀고, 옆 동 남자애는 척수암으로
얼마 전 죽었어요."
유산과 기형아 출산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습니다.
◀INT▶ 베르싸나 이바노비치/국립방사능센터 부원장
"지금 가장 주목하는 건 당시
원전 직원들이나 구조대원들의
자녀들로 이어지는 질병입니다."
세대를 내려갈수록 더 커져가는
방사능 공포, 여전히 노심초사하는
주변국들. 25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체르노빌에서 MBC뉴스 박재훈입니다.
오늘은 사상최대의 원전재해였던 체르노빌 참사가 일어난 지 꼭 25년 되는 날입니다.
체르노빌은 과연 25년 전 비극을 모두 극복 했을까요?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요.
박재훈 기자가 체르노빌 현지에서 전해왔습니다.
◀VCR▶
체르노빌로 가는 길.
발전소 밖
3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자
25년동안 외부의 접근을 차단해 온
검문소가 막아섭니다.
통제구역에 들어서자 펼쳐지는
자작나무와 전나무숲은
방사능의 영향 탓에 아직도
제 색이 아닙니다.
사상최악의 참사를 일으킨
원전 4호기의 백미터 앞까지
접근했습니다.
구소련 당국이
급하게 발전소를 봉합한 콘크리트 벽은
시간이 흐르면서 곳곳이 갈라지고 있고
그 사이로 붉은 녹물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INT▶ 션 패트릭/그린피스 활동가
"다른 곳보다 방사능 수치가
백배 이상입니다.
여기서는 못 삽니다."
발전소 인근 풀숲 곳곳에서는
경고 표시판과 고철덩이가
발견됩니다.
25년 전
방사성 폐기물을 매립했거나
미처 다 묻지 못한 곳입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아스팔트 길은 사실
관리당국이 거의 날마다 물청소를
하기 때문에 방사능 수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
조금만 풀숲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더 이상 취재를
계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지나야
이 죽음의 땅이
방사능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INT▶ 세르게이/국립 방사능센터 소장
"세슘이 분해될 때까지는 3백년,
플루토늄은 2만 4천년이 걸립니다."
당시 체르노빌 등 피해지역 주민들은
키에프로 옮겨 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 이천여명 가운데
5천여 명이 방사능 피폭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7살 야로슬라브는 한 쪽 다리가
자랄수록 더 길어지는 장애를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INT▶ 나제쥐다/야로슬라브 어머니
"옆 집 남자애는 간암에서 폐암까지
이르렀고, 옆 동 남자애는 척수암으로
얼마 전 죽었어요."
유산과 기형아 출산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습니다.
◀INT▶ 베르싸나 이바노비치/국립방사능센터 부원장
"지금 가장 주목하는 건 당시
원전 직원들이나 구조대원들의
자녀들로 이어지는 질병입니다."
세대를 내려갈수록 더 커져가는
방사능 공포, 여전히 노심초사하는
주변국들. 25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고,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체르노빌에서 MBC뉴스 박재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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