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데스크
박장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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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폭도화‥"진상 밝혀라"
日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폭도화‥"진상 밝혀라"
입력
2011-09-01 22:03
|
수정 2011-09-0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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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
88년 전 오늘, 일본에선 1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관동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폭도로 몰려 억울하게 학살당했는데 일본 정부가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사회 내에서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도쿄 박장호 특파원입니다.
◀VCR▶
1923년 관동 대지진 직후, 일본 신문들입니다.
폭도화 된 조선인들이 약탈과 방화 일삼고 일본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사실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공포와 증오에 휩싸인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 학살이 있었던 장소 중 하나인 도쿄 아라카와 강변입니다.
다리 아래 묻혀있던 유골들은 트럭 세 대에 나눠 이틀에 걸쳐 어딘가로 옮겨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SYN▶ 니시자키/시민단체 '봉선화'
"군대가 기관총으로 살해했습니다. 이 부근에선 경찰서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6천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걸로 추정만 할 뿐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죽었는지, 희생자 신원도 파악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 시민 단체들은 작년부터 일본 정부에 조선인 학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SYN▶ 다나카/일본 센슈대학 교수
"일본 정부가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고 희생자 유족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조선인 학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피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익 계열 교과서들은, 다른 교과서들과 달리 군대나 경찰 개입했다는 사실도 빼고 애매한 표현으로 간략한 설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1923년 12월, 당시 일본의 야마모토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학살의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답변했지만, 그 후 88년이 지나도록 일본 정부 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박장호입니다.
88년 전 오늘, 일본에선 10만 명 이상이 희생된 관동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우리 동포들이, 폭도로 몰려 억울하게 학살당했는데 일본 정부가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본 사회 내에서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도쿄 박장호 특파원입니다.
◀VCR▶
1923년 관동 대지진 직후, 일본 신문들입니다.
폭도화 된 조선인들이 약탈과 방화 일삼고 일본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사실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공포와 증오에 휩싸인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인 학살이 있었던 장소 중 하나인 도쿄 아라카와 강변입니다.
다리 아래 묻혀있던 유골들은 트럭 세 대에 나눠 이틀에 걸쳐 어딘가로 옮겨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SYN▶ 니시자키/시민단체 '봉선화'
"군대가 기관총으로 살해했습니다. 이 부근에선 경찰서 안에서 살해당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6천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한 걸로 추정만 할 뿐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죽었는지, 희생자 신원도 파악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일본 시민 단체들은 작년부터 일본 정부에 조선인 학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SYN▶ 다나카/일본 센슈대학 교수
"일본 정부가 학살의 진상을 조사하고 희생자 유족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조선인 학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피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익 계열 교과서들은, 다른 교과서들과 달리 군대나 경찰 개입했다는 사실도 빼고 애매한 표현으로 간략한 설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1923년 12월, 당시 일본의 야마모토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학살의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답변했지만, 그 후 88년이 지나도록 일본 정부 조사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박장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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