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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이슈] '산더미 근무' 日 과로 자살 파문, 우리나라는?

[이브닝 이슈] '산더미 근무' 日 과로 자살 파문, 우리나라는?
입력 2016-10-24 17:43 | 수정 2016-10-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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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지난해 일본에서 한 전도유망한 20대 신입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신입사원은 한 달에 10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과로 자살', 먼저 관련 보도 내용부터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도쿄대를 졸업하고 작년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에 입사한 24살 다카하시 씨는 몇 달 뒤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노동감독서 조사결과, 주말도 없이 매일 출근해 하루 3-4시간씩 한 달에 100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카하시 씨의 근무 기록에는 17분 정도 밖에 나갔다 온 걸 제외하면 53시간 연속 사무실에서 근무했던 날도 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카하시 씨 유족]
    "제 딸은 일주일에 10시간도 못 잤습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초과근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실제 근무시간을 적게 적으라고 압박했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후생 노동성이 덴쓰 본사와 자회사 5곳을 상대로 전방위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아베 정권은 장시간 노동을 개혁 1순위로 올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일본에서는 과로사 또는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직장인이 지난 10년간 4천600여 명, 하루 평균 1.3명으로 집계됐습니다.

    ◀ 나경철 아나운서 ▶

    숨진 다카하시 씨는 자신의 SNS에 지옥과도 같았던 회사 생활에 대한 글을 여러 차례 올렸는데요.

    스스로 목숨을 끊기 2달여 전인 10월부터 '자고 싶다는 것' 외에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다거나, 새벽 4시까지 일을 하며 힘들어하는 내용, 또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을 하게 돼 죽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한 달 동안 다카하시 씨는 무려 100시간 넘게 초과근무를 했던 것으로 뒤에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요.

    12월에도 하루 "2시간밖에 못 잔다", "죽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이라는 글을 남겼고, 하루에 20시간이나 회사에 있으니 더 이상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내용까지 올라왔습니다.

    다카하시 씨는 결국 어머니에게 "일도 인생도 너무 힘들다"는 메일을 남긴 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요.

    입사한 지 7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 앵커 ▶

    일본에서는 '사축', 즉 마치 '회사의 가축처럼 일을 하는 직장인'이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다른 나라의 일로만 치부하기엔,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우리 직장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3년차 직장인 정훈직 씨는 출근을 준비합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9시인데도 1시간 일찍 사무실에 나갑니다.

    [정훈직]
    "아무래도 9시에 딱 맞춰서 가기에는 눈치도 보이고, 먼저 가서 준비해야 할 것들도 있고 해서 일찍 나가고 있습니다."

    정훈직 씨는 야근을 준비합니다.

    정시 퇴근은 간절한 바람일 뿐.

    밤 9시, 근무를 마치면 이제 회식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정훈직]
    "문화가 이미 이렇게 정착이 돼 있는 것 같고, 취업하기 힘든데 일하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

    야근을 마치고 집에 오니 밤 11시.

    일주일에 5일은 야근입니다.

    작년까지 시행되던 7시 칼퇴근은 CEO가 외국인에서 한국인으로 바뀌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석 달 된 딸아이 얼굴 보기가 어렵습니다.

    [직장 9년차]
    "외국인이 CEO가 있을 때는 회사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가정이다, 한국적 마인드에서는 그게 없는 거죠. 일이 먼저고 회사가 먼저다."

    ◀ 유선경 아나운서 ▶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조사 결과 지난 2014년, 한국인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천백 24시간이었습니다.

    임금 근로자와 시간제 근로자, 또 자영업자 등 전체 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였는데요.

    OECD 회원국가 34개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긴 겁니다.

    OECD 회원국 평균과 비교해 보면, 연간 354시간 더 길어, 주당 평균 6.8시간 정도 일하는 시간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소개해 드렸던 일본은 의외로 OECD 평균과 비슷한 정도의 수준이었고,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은 우리의 2/3 즉, 8개월치밖에 일을 안 하고 있었는데요.

    다시 말해 우리가 독일인들보다 연간 4개월 정도, 일을 더 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펴낸 우리 기업문화를 진단하는 보고서에는 더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직장인들은 우리의 후진적인 기업 문화 중에서도 '습관화된 야근'을 가장 심각하게 꼽고 있었는데요.

    우리 직장인들은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그 절반 정도인 평균 2. 3일 정도 야근을 하고 있었고, 3일 이상 야근을 하는 직장인도 10명 중 4명 이상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을 많이 하는 만큼 생산성도 높으면 좋을 텐데 꼭 그렇진 않다는 게 문젭니다.

    평균 수준, 그러니까 주 2~3일 야근을 하는 직장인의 업무 생산성은 57%인 반면, 주 5일 내내 야근을 하는 경우 생산성이 45%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직장인들은 왜 이처럼 일을 오랜 시간 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저희 이브닝뉴스 취재진이 물어봤습니다.

    들어보시죠.

    ◀ 인터뷰 ▶

    [Q. 저녁 있는 삶, 살고 계십니까?]

    [이승철/31살 회사원]
    "요즘에는 업무량이 좀 밀리는 시기여서 웬만하면 야근을 좀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운동 같은 거나 영어공부라든지 조금 더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윤현근/51살 택배업]
    "일이 보통 8시, 늦게는 10시까지 끝나니까 저녁에 뭐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못해요. 그냥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자기 바쁘니까…."

    [김태현/36살 회사원]
    "아이랑도 좀 시간을 보내고 싶기는 한데 그런 부분에 좀 소홀한 거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퇴근 후 업무 지시는) 당연히 불편하긴 한데요. 반대로 그게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좀 일상이 돼 있다 보니까…."

    ◀ 앵커 ▶

    지금들으신 것처럼 최근에는 '카카오톡' 같은 SNS가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면서 직장인들의 근무 시간을 늘리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시도때도없이 울리는, 업무용 '카톡' 때문에 '카톡 감옥'이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는데요.

    어느 정도인지 함께 보시죠.

    ◀ 리포트 ▶

    중소기업에 다니는 10년차 직장인 김 모 씨.

    모바일 메신저로 불쑥불쑥 날아오는 상사의 메시지 때문에 오붓한 휴식을 망치기 일쑤입니다.

    [김 모 씨]
    "정말 아침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아무 상관없었어요.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뭐 읽어봤니? 이거 했니? 저거 했니? 여행 가도 하다못해 캠핑을 가도 전 이거(스마트폰) 하고 있어야 하니까…."

    대답이 늦으면 어김없이 질책을 받기 때문에 매일매일 24시간이 긴장 상태.

    10개가 넘는 업무 관련 단체 대화방까지 관리하다 보면 '메시지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김 모 씨]
    "(단체 대화방이) 회의 탁자라고 생각을 하시면 여기 회의 탁자에도 앉아있는 거고 저기 회의 탁자에도 앉아있는 거거든요. 몇 개의 방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면서 끊임없이 이럴 때는 정말 미치겠다…."

    2년 전 번역과 통역 전문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전 모 씨도 퇴근 후. 주말·휴가를 가리지 않는 업무 지시를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사표를 냈습니다.

    언제 어딜 가든 스마트폰 충전기에 보조 배터리, 노트북까지 챙겨다니는 생활.

    [전 모 씨]
    "(스마트폰에서 소리가 나면) 가슴이 왠지 막 두근두근 거리기도 하고 강박 관념이 생긴 거죠 (전화를) 안 받으면 불안하고…."

    [임세원/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일의 시작만 있고 끝이 없다라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죠. 무력해져 있죠. 에너지 수준이 굉장히 떨어져 있고 지쳐 있는 쉽게 말해서 배터리가 거의 다 방전돼버린 사람 같은 그런 모습인 거고…."

    [김기선/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스마트 기기를) 업무시간 외에도 활용하면 초기에는 생산성이 좀 더 오르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후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훨씬 더 강화되고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거든요."

    ◀ 유선경 아나운서 ▶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문자나 SNS의 알림 소리,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겠지만 직장인은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언론 재단이 직장인 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2% 즉, 10명 중 6명이 스마트폰의 '항상 연결' 기능 때문에 더 불편해졌다고 답했는데요.

    10명 중 8명 이상은 공식적인 근무시간 외 업무와 관련된 연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즉,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직장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인들이 업무시간이 아닌 때에도 스마트 기기로 일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677분, 즉 11시간이 넘는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는데요.

    이런 직장인들의 바람을 모아, 최근 일명 퇴근 후 카톡 업무 금지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독일 정부는 이미 지난 2013년, 업무시간 이후엔 비상시가 아니면 상사가 직원에게 전화나 이메일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침을 내놨고, 프랑스도 비슷한 내용으로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이나 BMW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노사협약을 통해 근무시간 외에는 이메일이나 스마트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습니다.

    ◀ 앵커 ▶

    주 5일 근무제가 처음 실시된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자영업자나 소규모 업체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남의 얘기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주 5일도 모자라, 주 4일제를 실시하고 있는 직장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업무시간을 줄여 효율을 더 높이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는 얘기인데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함께 보겠습니다.

    ◀ 리포트 ▶

    중소 화장품 생산업체인 이 회사는 주 4일 근무제를 시작했습니다.

    대신 8시 반부터 6시 반까지 하루 9시간씩 나흘을 일하는 방식으로 주 4일제 근무를 정착시켰습니다.

    그러나 월급을 깎진 않았습니다.

    [유종혁/본부장]
    "실제로 따져보면 36시간 일하는 거기 때문에 (주 40시간 일하는)다른 회사보다 일을 덜 하는 건 아니에요. 4시간 정도만 덜하는 거고요. 그렇다면, 이 4시간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주 4일 근무는 직원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평일인 금요일에 원하는 것을 배우거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됐고, 회사를 위해 가족과 개인의 생활이 통째로 희생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생산성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주 4일 근무제가 시작된 지난 3년 동안, 70억 원이었던 이 회사의 연매출은 100억 원으로 30% 증가했고, 22명이던 직원 수가 30명으로 늘면서 작년엔 사옥을 신축해 이사할 정도로 사세도 커졌습니다.

    ==============================

    오후 2시 전엔 텅 비어 있는 사무실.

    일찍 식사를 마친 직원들은 외국어 공부에 투자합니다.

    하루 근무를 6시간으로 제한했고 올해부턴 주 4일제까지 도입했지만 성과는 줄지 않았습니다.

    [류보라/에이스그룹 직원]
    "이전의 직장은 여유가 조금 업무시간에 있기 때문에 딴생각을 한다든지 그럴 수 있잖아요. 근데 지금은 딱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또 다른 회사, 이곳은 4년 전부터 저녁 7시 반이면 사무실 전등을 모두 끕니다.

    근무 시간은 축소하는 대신 목표 성과는 유지해 눈에 잘 띄지 않게 낭비되던 시간이 줄어든 겁니다.

    [변정옥/유한킴벌리 직원]
    "몰입해서 하느냐, 천천히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성과를 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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