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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황의준, 임상재

작품인가? 제품인가? '판박이' 공공 조형물

작품인가? 제품인가? '판박이' 공공 조형물
입력 2018-01-05 20:26 | 수정 2018-01-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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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여기 조형물이 둘 있습니다.

    같은 작품으로 보이십니까, 아니면 전혀 다른 작품으로 보이십니까?

    그러면 또 이 작품은 어떤가요?

    동일한 작품으로 봐야 할까요? 서로 다른 작품으로 봐야 할까요?

    요즘 거리에 다양하고 특이한 조형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 조형물을 서로 다른 장소에서 본 적은 없으신가요?

    공공 조형물, 작품인가, 제품인가.

    황의준, 임상재 두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강원도 평창의 한 스키 리조트에 설치된 조형물입니다.

    젊은 부부와 아이가 기다란 빗자루를 타고 초승달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비슷하게 생긴 조형물이 서울과 인천, 경기도 용인·남양주·파주, 경남 창원 등 전국 곳곳에 6개나 더 있습니다.

    [설동욱/경기도 부천시]
    "스키장하고 조금 안 어울리는 느낌이 있는 것 같고요. 전국 다른 지역에도 있다고 하니까 과연 예술성이나 창의성이 있는 건 지 좀…"

    모두 한 작가가 만든 작품입니다.

    초승달 모양을 보름달로, 노란 색상을 은색으로 바꾼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점은 없어 보입니다.

    또 다른 작가가 만든 뫼비우스 띠 모양의 이 작품 역시 색깔만 조금 바꾼 채, 서울·대구·울산 등지에서 판박이처럼 나타납니다.

    전통 탈로 탑을 쌓은 듯한 이 조형물도 위치만 다를 뿐 쌍둥이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공공조형물 작가]
    "작가 입장에서 볼 때는 조금씩 바꿔가면서 하는 거죠. 자기복제, 자기재생산, 일종의 진화, 시리즈 이렇게 보시면 맞는데…이상한 눈으로 볼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나 등등의 큰 문제는 없어요."

    그러나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큽니다.

    [김영민/공공미술 갤러리 관계자]
    "건축주가 소장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반인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사유재이나 공공재의성격이 강하잖아요. 계속해서 똑같은 방식으로 작품하는 것들은 차단하거나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연면적 1만 제곱미터 이상의 건축물에는 건축비의 0.7% 이상을 들여 공공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출연해야 합니다.

    문제는, 건축주들이 이 비용을 세금처럼 여긴다는 점.

    건축주 입장에서는 이미 나와있는 작품과 비슷하게 의뢰해 비용을 낮추려 하고 이에 응하는 일부 작가들은 창작의 수고 없이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태건/공공미술 기획자]
    "공공미술임에도 공익적 접근보다는 사실상 과도한 경제적 이윤추구가 필연적으로 질적하락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베이트 관행까지 생겨났습니다.

    일부 건축주와 작가 사이에 브로커가 개입해 건축주에 리베이트를 주는 대신 브로커와 연관된 특정 작가들의 작품이 반복적으로 설치되는 구조라는 지적입니다.

    [김영민/공공미술 갤러리 관계자]
    "저희도 실제로 리베이트에 대한 요구를 받아본 적이 있고요. 작년에도 한 두 차례 그런 제안을 받았는데…"

    [김종근/미술평론가]
    "일부 작가들이 특정 브로커와 결탁해서 조형물을 독식함으로써 결국 우리 시민들로서는 시각적 다양성과 볼거리를 갖고 있지 못하고 결국 도시미관을 해치게 되는…"

    조형물 설치를 많이 하는 곳이 또 있습니다.

    지자체인데요.

    지역을 홍보하겠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조형물들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임상재 기자가 현장을 점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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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송도를 드나드는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높이 17미터 탑 3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LED전광판으로 송도를 홍보하겠다며 지난 2008년 약 16억 원을 들여 세웠지만 사용기간은 고작 2년.

    [박지환/직장인]
    "(전광판이 켜진 걸) 초창기에 보긴 봤는데요. 그 뒤로 한 번도 켜져 있는 걸 거의 못 봤습니다."

    이후 흉물로 남아있다 이제는 외장재가 떨어질 우려에 무허가 건축물인 사실도 새삼 문제가 됐습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관계자]
    "정밀 점검한 결과 일단 위험시설로 판정된 것이 가장 큰 이유고요. 사전에 (옥외광고물법) 검토가 안 된 상태에서 건축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올 상반기 세금 2천8백만 원을 들여 철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화제를 모았던 대추 조형물도 지금 논란 중입니다.

    지난 2016년 7억 원을 들여 지은 초대형 대추 조형물에 실용성을 높이겠다며 안에다 화장실까지 설치했지만 방문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은계순/마을 주민]
    "쓸데없는 짓이죠. 뭐하는데 거기에 해 놓은 건가요. 돈을 그렇게 많이 투자해 놓고 사용도 안 하고 뭐하는 건가요."

    관리 사각지대로 빠져든 조형물도 곳곳에 있습니다.

    한강의 특이한 조형물 괴물.

    조형물을 설명해주는 안내판의 일부는 떨어져 있고 괴물 울음소리가 나야 할 음향시설은 망가진 상태입니다.

    강원도 양구군의 세계 최대 해시계도 안내판은 심하게 녹이 슬어 글자가 지워졌고 바닥 조명시설은 흙으로 덮여 제 역할을 못한지 오래입니다.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가 아예 없습니다.

    [양구군청 관계자]
    "도시개발과가 안 있었고 다른 과가 있었는데 그 과가 만들어 놓고 그 과가 없어지고…책임 소재가 지금 모호합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이미 2014년 각 지자체에 관련 조례를 마련해 무분별한 조형물 건립을 막을 것을 권고했지만 조례가 있는 곳은 86곳.

    전국 지자체의 35%에 불과합니다.

    [박찬우/세금바로쓰기 납세자운동 본부장]
    "주민들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그 지역의 장소와 역사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형물들은 곧 세금 낭비고 애물단지로 변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공공조형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예술품인지 돈만 날리는 흉물인지 점검할 시점입니다.

    MBC뉴스 임상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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