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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야동'이 아니라 '범죄'…피해 호소할 곳 없어

디지털 성범죄 '야동'이 아니라 '범죄'…피해 호소할 곳 없어
입력 2018-01-19 20:27 | 수정 2018-01-1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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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사진과 동영상 유출, 각종 성적 모욕을 당하는 이른바 '디지털 성범죄'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가 '범죄'라는 사회 인식이 부족한 데다 피해를 호소할 곳도 지원받을 곳도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공윤선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지난해 여름, 직장인 송에스더 씨는 SNS상에서 자신을 '조건 만남' 여성으로 둔갑시킨 계정이 만들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가 사진을 도용한 겁니다.

    [송에스더/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뭐 (조건만남이) 얼마냐고 이런 식으로 (메신저로) 가격 물어보고 뭐 황당하죠. 솔직히 잠도 잘 못 자고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서."

    도용한 사람을 찾아내 "왜 그랬냐"고 따졌지만 대놓고 성희롱을 하거나 도리어 신분을 증명하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습니다.

    경찰의 시큰둥한 반응에 신고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SNS엔 송 씨 사진에 이름만 바꿔 성매매를 유인하는 계정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송에스더]
    "거의 포기를 했죠. 진짜 저처럼 도용당하신 분들이 피해가 덜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솔직히 취재에 협조하는 마음이 크거든요…"

    최근 국내외 웹 하드나 SNS에선 이런 디지털 성범죄가 만연해 있지만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몰래 촬영이나 성관계 동영상을 동의 없이 유포하는 등 명백한 범죄의 신고 건수도 최근 6년 사이 5배나 증가했습니다.

    한양대학교 여대생 8명은 같은 학교 남학생이 SNS에 올려져 있던 자신들의 사진을 이용해 합성 음란물을 만든 걸 발견했습니다.

    [피해 대학생]
    "음란 사진에 저희 얼굴을 넣고 그 위해 00을 합성하는 거예요. 뿌려진 것처럼."

    경찰에 신고했지만 문제의 남학생이 사진을 유포한 게 아니라서 처벌할 마땅한 법이 없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도움을 청한 곳은 민간 여성인권단체인 '한국 사이버 성폭력 대응센터' 디지털 성범죄 대응이 시급하다며 20대 여성 활동가 6명이 나서 만든 단체입니다.

    지난해 이곳에서 상담을 받은 피해자 206명을 분석한 결과 동의 없이 성적 촬영물이 사이버상에 유출되는 피해가 48%로 가장 많았습니다.

    가해자를 보면 전 애인이거나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경우가 각각 35%로 가장 많았고, 상담 피해자의 60%가 경찰 신고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여성들이 직접 나서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 단체까지 만들게 된 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엔 피해자들이 수백만 원씩 들여가며 직접 유출 영상을 지워야 하는 현실도 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는 온라인 기록을 삭제해 주는 이른바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10여 개 이상 뜹니다.

    다급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도 이곳을 찾게 되는데, 문제는 정해진 비용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란 겁니다.

    [A 업체]
    "월 2백만 원입니다. 6개월 정도는 집중 삭제 기간을 하셔야 되고 한 1천2백만 원 정도 들어가요."

    일단 착수금부터 달라는 곳도 있습니다.

    [B 업체]
    100만 원 계약금인 거고 나중에 (유포자)를 잡으면 성공보수를 받아요."

    한 디지털 장의사 업체의 경우 1년 동안 의뢰한 사람이 2천480여 명에 달했습니다.

    시장이 점점 커져 작년엔 100억 원 규모에 이른 것으로 추산됩니다.

    범죄피해자가 수백만 원을 내고 자기구제를 해야 하는 현실.

    통신업자로만 등록하면 업체를 차릴 수 있다 보니 일부에선 2차 피해도 생기고 있습니다.

    [김여진/한국 사이버 성폭력 대응센터 조직국장]
    "(알고 보니) 영상 속에 사람이 내가 아닌 것 같다라고 해서 환불 해지를 요청했지만 거부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바뀌어야 할 건 '심각한 범죄'를 '국산 야동' 쯤으로 취급하는 일반의 인식입니다.

    [김보화/한국성폭력상담소 연구소 울림 연구원]
    "이것은 장난, 사소한 일, 진짜 성폭행은 아닌 일 이런 방식으로 인식되는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한 때 유출된 동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는 이동진 씨.

    동영상을 보는 것 자체가 성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동진]
    "(여성을) 지금 나의 성적만족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 대상, 물건처럼 소비가 되고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유출 영상을)소비 할 수 있을지 않을까…"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에 영상물 삭제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종합서비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지만 편성된 예산은 7억여 원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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