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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연습도 회사 일?…'직장갑질' 이상한 동호회

마라톤 연습도 회사 일?…'직장갑질' 이상한 동호회
입력 2018-01-30 20:30 | 수정 2018-01-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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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쉬쉬하고 묵인해 온 직장 내 횡포, 이른바 직장 갑질 실태를 오늘(30일)부터 연속 보도하겠습니다.

    첫 순서로 마라톤을 강요하는 한 회사를 통해, 업무와 무관한 압력이 어느 정도인지 고발합니다.

    오해정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어둠이 내린 잠실 주경기장.

    10여 명의 중년 남녀가 강추위를 피해 지상터널에서 몸을 풀고 이어서 두어 바퀴를 뜁니다.

    그런데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회사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기 바쁩니다.

    이들은 중견 생활가전 회사의 지국 직원들입니다.

    대부분 40대 이상인데 매주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새벽마다 이렇게 조금 희한한 마라톤 연습을 합니다.

    [지국 직원 A]
    "영하 15도가 내려가든 아니면 한여름에 장마가, 천둥 번개가 치더라도 무조건 나가야 된다는 게 많이 좀 회의감을 느끼죠."

    일종의 사진 찍기용 야외연습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연습 뒤 누가 참석했고 누가 빠졌는지 SNS 대화방에 세세히 공유하고 인증사진까지 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방에는 본사 간부들이 들어와 있어 매번 연습상황을 감시한다고 직원들은 말합니다.

    [지국 직원 B]
    "회원들이 자꾸 빠져나가거나 그러면 거기(동호회) 임원들이 또 안 좋은 소리를 듣고…. 마라톤 회장이 무릎도 꿇고 (본사 팀장한테) 잘못했다고 울고불고했다고…."

    영하 12도의 강추위에도 퇴근 후 반드시 모여서 운동은 하지 않은 채 사진만 찍고 뿔뿔이 흩어지는 이유입니다.

    [지국 직원 C]
    "(그런데 오시자마자 가시는 것 같은데요?) 지금 날씨가 추워서 감기 걸린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이들은 명목상 회사 마라톤 동호회 소속이지만 수도권 지국 직원 210여 명 가운데 마라톤 동호회 가입률은 무려 70퍼센트가 넘습니다.

    열 명 중 일곱 명 이상이 마라톤이 취미인 셈으로 달리기를 싫어해도 가입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지국 직원 B]
    "저 사람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고 마라톤도 안 해. 그러면 다른 사람한테 그냥 넘길 일도 저 사람은 괜히 전화 한번 해서 다시 푸시를 하고…."

    훈련 참석률이 낮으면 바로 제재가 들어옵니다.

    동호회는 수도권 5개 지부로 나뉘어 있는데 열성을 보이지 않는 지부는 집에서 먼 훈련장으로 보내 특별훈련을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퇴근 뒤 마라톤 연습하러 두 시간 가까이 이동하는 징계를 받는 겁니다.

    [지국 직원 A]
    "다쳤다고 하는데 깁스하고 오셨더라고요. 나뿐만 아니라 같이 하는 사람들한테 혹시 피해가 갈까 봐…."

    거의 마니아처럼 매년 5번 이상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야 하고 대회 참가 비용과 동계훈련 합숙 비용 모두 직원들 부담입니다.

    회사 측은 회식 문화를 없애고 운동을 장려하면서 마라톤 동호회를 활성화시킨 것일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집단주의를 주입하고, 대회에 단체 출전시켜 회사 홍보 효과를 거두기 위해 사생활을 빼앗는 행위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정소연/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고 또 가정생활이라든가 사회생활에 지장을 입은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을 이유로 한 정신적 손해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회사 송년회에서도 직원들이 원하지 않는 불편한 이벤트는 계속됐습니다.

    본사 사장과 임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중년 지국 직원들은 걸그룹 음악에 맞춰 군무를 추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채 밴드 공연을 했습니다.

    [지국 직원 B]
    "사장님이 참석을 하니까 열심히 준비를 해라. 어디 아프거나 이랬던 사람도 있는데 파스 붙이고 그러면서까지 열심히 했어요."

    비슷한 연배의 임원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느낌이었다고 자괴감을 토로합니다.

    [지국 직원 A]
    "나이가 좀 어리면 덜 민망할 수 있는데 나이가 오히려 (임원보다) 더 많은 사람도 있어요.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죠. 재롱 잔치하는 그런 기분…."

    회사 측은 마라톤과 송년 이벤트 모두 직원들의 자율적인 활동으로 본사 개입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업무와 무관한 일을 시켜 힘들다는 민원이 직장갑질 119에만 최근 석 달간 1천 2백여 건이나 접수됐습니다.

    [박점규/직장갑질119 위원]
    "그런 잡무를 시킨다는 것은 위법한 일이라는 것을 고용노동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릴 필요가 있고 사용자들도 그런 일이 결국 회사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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