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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쓸 곳 없는 급식권 "편의점 도시락만"

[단독] 쓸 곳 없는 급식권 "편의점 도시락만"
입력 2018-01-31 20:27 | 수정 2018-01-3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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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급식이 나오기 않기 때문에 방학 땐 한 끼 챙겨 먹는 것도 어려운 아이들에게 지자체는 급식 카드나 급식권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MBC가 전국의 급식 카드 운영 현황을 전수 조사해봤는데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이라는 당초 사업 목적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공윤선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 리포트 ▶

    고등학교 1학년 준영이(가명)가 초등학교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나섭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픈 어머니와 일 나가는 아버지, 학교 급식도 없는 방학이 되면 준영이 5남매의 밥을 챙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건 구청에서 준 한 끼에 4천 원짜리 급식권뿐.

    취재진이 아이들과 함께 집 근처 한식당들을 찾아갔더니, 3군데서 거절을 당했습니다.

    [A 식당]
    "아뇨, 우리 식권 안 해요. (안 받아요.)"

    [B 식당]
    "급식권은 안 받는데?"

    [C 식당]
    "다 안 돼요, 안 돼."

    결국 찾아간 곳은 걸어서 15분가량 떨어져 있는 편의점.

    [장준영(가명)]
    "야 그건 4천 원 넘잖아, 이건 고를 수 있는 거다."

    도시락을 들었다 놨다 하길 수차례.

    몇 개 없는 3천8백 원짜리 도시락을 골라 그제 서야 점심을 먹었습니다.

    편의점에 안 갈 땐 자장면이나 짬뽕을 시켜먹어야 합니다.

    [장준영(가명)]
    "이틀에 한 번씩 짬뽕, 번갈아가면서 자장면하고… (볶음밥이라든지 이런 건 안 돼요?) 가격이 4천 원 넘으면 거기(음식점)에서 손해를 보니까 그래서 안 되는 것 같아요. 맨날 똑같은 것만 먹으니까 질릴 때도 있어서 그런 게 좀 별로인 것 같아요."

    준영이네 동네에서 급식권을 쓸 수 있는 음식점은 모두 8곳, 그런데 이 중 5곳은 중국 음식점입니다.

    이마저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자장면과 짬뽕 군만두로 정해져 있습니다.

    나머지는 토스트집과 편의점이고 한식당은 한 곳뿐입니다.

    아버지는 편의점 음식이나 자장면을 매일 먹다시피 하는 아이들이 걱정스럽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장기택(가명)/아버지]
    "금액이 금액인지라 종류별로 먹을 수 없고… (그래서 제가 있을 땐) 직접 해 먹든가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난 2005년부터 급식 전자카드나 급식권 지급 등 통한 급식 지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득이 낮은 한부모 가정이나, 맞벌이 가정 중 아동 등이 대상입니다.

    지난해만 31만여 명의 아이들이 혜택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실제 현장을 둘러보니 당초 사업 목적과 달리 아이들이 맘 편히 영양가 있는 밥을 먹지 못하고 있습니다.

    MBC가 전국 15개 시도의 급식카드와 급식권 운영 현황 조사 결과를 파악해 본 결과 한 끼 이용 금액 한도가 4천 원에서 4천5백 원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국 평균 자장면 값은 4천8백 원, 김치찌개 백반은 6천2백 원 수준.

    제대로 된 한 끼를 먹기엔 부족한 돈입니다.

    또 가맹을 맺은 업체에서만 급식카드나 급식권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가맹점 역시 편의점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서울은 80%, 대구 71%, 부산 64%, 인천 66%, 경기도 58%가 편의점이었고, 이에 비해 한식당은 서울 7%, 대구 7%, 부산 11%, 인천 4.6% 경기도 11.1%밖에 안 됩니다.

    가맹 음식점은 점주가 신청하는 방식으로 모집되는데 지원 단가가 낮다 보니 편의점과 중국 음식 위주로 몰리게 된 겁니다.

    업주들도 사실상 봉사 차원에서 참여하는 형편입니다.

    [00 구청 공무원]
    "기본적으로 (단가가) 5천 원은 되니까요 백반집 같은 경우는… 그런데 이제 (업주) 본인이 봉사정신으로 4천 원만 받겠다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그 금액에 맞춰서 (가맹점) 계약서를 쓰시고요."

    아이들은 한 끼 먹을 돈이 아쉬운데 이처럼 사용할 곳이 마땅치 않고 메뉴도 한정되다 보니 지원을 받아도 막상 제대로 사용을 못 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급식 카드 예산 1천158억여 원 중 무려 158억여 원이 남았습니다.

    전국 평균으로 13.6%가 쓰지 못하고 남았는데, 이 비율이 30~40% 가까이 되는 지역들도 적지 않습니다.

    [정익중/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맹점이 적고 그리고 아이들도 사용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까 예산이 남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의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겁니다.

    [윤재옥/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
    "균형이 안 잡힌 식사는 결국 칼로리만 높아서 비만이라든지 또 청소년기에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병이 생길 수도 있고…"

    이 때문에 민간단체들의 경우엔 현금 지원이 아니라 도시락 배달을 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이소현/월드비전 사랑의도시락]
    "아동들에게 영양가 있는 도시락 지원은 영양발달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또 학업과 인성에도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끝나가는 방학이 아쉬울 만도 하지만, 끼니때마다 고민이 생기는 준영이 같은 아이들에겐 다가오는 개학이 반갑습니다.

    [장준영(가명)]
    "학교는 (급식에) 반찬이나 그런 게 있으니까 신경을 더 쓰니까 맛있는 것도 많고 좋은 것 같아요."

    건강한 밥을 먹이기 위해 급식권을 손에 쥐여 줬지만 오늘도 아이들은 그저 끼니만 때우러 편의점을 전전합니다.

    MBC뉴스 공윤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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