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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호소해도 '찬밥' 신세…뒷짐 진 정부 기관

성폭력 피해 호소해도 '찬밥' 신세…뒷짐 진 정부 기관
입력 2018-03-03 20:13 | 수정 2018-03-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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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요즘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생각해 봤습니다.

    폭로를 하고 난 뒤 피해자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기관에 어떻게 신고를 하시겠습니까.

    직장 내 성폭력을 당한 뒤 수사기관과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의 문을 차례로 두드렸던 한 피해자가 겪은 일을 저희가 따라가 봤습니다.

    이 피해자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전혀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양효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지난 2015년 한 일본계 은행을 다니다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김 모 씨.

    일본 본사 간부가 방문할 때마다 한국인 여직원들이 '술시중'에 동원됐습니다.

    상사들은 '나이·외모 기준'을 따져 자리를 배치하고 술 따르는 방법까지 지시했습니다.

    결국 김 씨는 술자리 후 택시 안에서 상사에게 성추행까지 당했습니다.

    3년을 싸운 끝에 최근 회사와 가해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판결에서 승소한 김 씨.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김 모 씨/일본계 은행 성추행 피해자]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는 '아, 정말 이렇게 하다가 내가 무너질 것 같다'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시작부터 험난했습니다.

    김 씨가 원했던 건 상습적으로 당했던 회사의 성희롱 문화 자체를 뿌리뽑는 것.

    하지만 회사 측에 문제 제기를 한 순간 진술 내용은 고스란히 가해자였던 상사들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사업주가 거기서 징계위원회를 만들 텐데 결국에는 안에서 짜고 치는 그런 게 돼 버리는 거죠."

    어쩔 수 없이 외부의 도움을 청하기로 한 김 씨.

    고용노동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은 기대와 너무 달랐습니다.

    전용 상담실도 없어 사방이 트인 창구에서 성추행 피해 내용을 진술해야 했고 조사관은 처벌보다 '합의' 얘기부터 꺼냈습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2015년 조사 당시)]
    "결론적으로는 합의를 해요. (다른 사례는) 여행 권유를 하고 합의를 해서 충분한 여행 경비를 받아서…"

    '술시중' 등의 관행은 접수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신고 양식에 가해자와 피해자, 사건 발생 일시와 장소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조사 대상이 된다는 거였습니다.

    인권위원회는 더 심했습니다.

    진정 접수 2년 8개월 만에 돌아온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내용의 종이 한 장.

    김 씨가 요구했던 실태 조사는 하지도 않은 채 "피해자의 문제 제기로 회사 성희롱 문화가 개선된 걸로 보인다"는 답변만 내놓은 겁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2015년 조사 당시)]
    "인권위가 깊숙하게 개입해서 도와주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궁극적으로 이것에 대해 구제를 받으려면 민사 방법밖에 없겠다…"

    민·형사 소송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해도 무조건 거절부터 하기 일쑤였습니다.

    [김 모 씨/일본계 은행 성추행 피해자]
    "공무원들은 일단 안 하고 보는 거에요, 귀찮으니까. 피해 사실을 적발하고 처벌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그것부터 저는 너무 너무 실망했고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같은 직장 내 성범죄라도 성희롱은 고용노동부, 성차별은 인권위, 형사책임은 경찰산재신청은 근로복지공단으로 접수창구가 분산돼있다 보니 정작 제대로 책임지는 기관이 없습니다.

    피해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수십 번 되새겨 진술해야 합니다.

    담당자들의 전문성도 문제입니다.

    고용노동부의 경우 근로감독관 1명이 맡은 사업장이 1천3백여 곳.

    그나마 성폭력 전담이 아니라 부당노동행위 등 다른 사안들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인권위의 경우도 직장 내 성문제를 담당하던 '차별시정본부'가 지난 2009년 하나의 '과'로 강등됐고 지금의 '미투' 주무부서인 여성인권팀은 팀장까지 고작 3명입니다.

    김 씨는 지금의 '미투 운동'이 결실을 맺으려면 국가 기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국가기관을 통해 도움받는 과정이 너무 험난했어요. 바뀔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게 너무 힘들었어요."

    MBC뉴스 양효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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