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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만의 귀향…지우지 못한 그때의 악몽

68년 만의 귀향…지우지 못한 그때의 악몽
입력 2018-03-31 20:23 | 수정 2018-03-3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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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당시에 만 명이 넘는 제주도민이 학살을 피해서 일본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오사카에는 제주 마을까지 생겼죠.

    소녀로 떠나서 할머니가 되어 돌아온 귀향길에 MBC취재진이 동행했습니다.

    이어서 박진주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일본 오사카에서 한 시간 반.

    멀리 제주도가 보이자 송복희 할머니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집니다.

    돌담과 동백꽃이 유난히 많았던 할머니의 고향 서귀포 서동네.

    1950년, 4·3 이후 2년 가까이 용케 죽음을 피했던 마을에서 학살이 시작됐습니다.

    [송복희/87살]
    "사람들의 목을 잘라 전봇대에 걸어놓은 게 제일 선명하게 기억이 나요."

    매년 제주도를 찾아오지만 정작 자신의 고향에 오는 데는 68년이 걸렸습니다.

    죽음으로 가득했던 그때의 공포가 발길을 잡았습니다.

    [송복희/87살]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 뒤져서 다 죽이고 다 죽임당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학살을 피해 일본으로 떠난 제주도민은 1만여 명, 오사카에는 제주 마을이 생겼습니다.

    한때는 제주말을 쓰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제주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 모인 고향사람들끼리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4·3은 금기어였습니다.

    [고춘자 79살/일본 오사카 거주]
    "산에 올라가니까 폭도 가족이 된 거예요. 우리가 '빨갱이'라고. 4.3도 사상 얘기니까 함부로 입 밖에 못 내놓거든요."

    [박영만/89살]
    "여기 산이 있었고, 앞에 농지, 목장지가 있었고."

    가족을 남기고 혼자 일본 밀항선에 올랐던 16살 중학생은 이제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지금도 골목길까지 그릴 수 있는 고향 마을은 온통 불에 타고 있는 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경찰에게 고문을 받던 끔찍한 기억은 아직도 흉터처럼 선명합니다.

    [박영만/89살]
    "손등에 갈고리 바늘을 걸어서 천장에 매달고 밑에서 잡아당기고 고문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70년, 이제는 말도 서툴러지고 고향의 노래만이 아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박영만/89살]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 무정…그런 노래를 불렀어요."

    MBC뉴스 박진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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