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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을 안고 사는 사람들…여전한 전쟁의 고통

상흔을 안고 사는 사람들…여전한 전쟁의 고통
입력 2018-06-04 20:40 | 수정 2018-06-0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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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

    좁은 지역에 막대한 병력과 화력이 집중된 만큼 전쟁이 남긴 상처는 크고 깊었습니다.

    전쟁을 멈춘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과 공간 속에서 그날의 상흔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데요.

    임경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 리포트 ▶

    저 뒤로 보이는 곳이 이곳 중부전선의 DMZ 구역입니다.

    이곳은 남쪽이 북쪽보다 지형이 더 높아 경계와 방어에 유리하다 보니 6·25전쟁 당시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지금도 북측 DMZ에서 목격되는 '저격 능선'.

    적군 저격에 최적의 지형이라 해서 붙은 이름만큼 42일 동안 고지 주인이 12번 바뀔 정도의 요충지였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이 지역의 험난한 산세로 숨어들어온 이병학 할아버지.

    [이병학/한국전쟁 당시 DMZ 거주]
    "밤에는 인민군, 중공군이고 낮에는 유엔군이고 한국군이고. 그렇게 들어왔다 나갔다."

    인근 산자락에선 지금도 유해를 발굴하는데 재작년 106구, 지난해 29구가 발견됐습니다.

    전쟁 땐 DMZ 한복판에 살았고 지금은 DMZ 경계선으로 나와사는 이들에게 전쟁은 어제 일처럼 또렷합니다.

    [이병학/한국전쟁 당시 DMZ 거주]
    "총소리, 대포 소리,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 죽은 거 내가 눈으로 보고 그 비참한 것은…"

    전쟁의 잔재는 지금도 무고한 희생을 낳고 있습니다.

    바로 지뢰입니다.

    DMZ와 맞닿은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마을.

    마을 입구엔 '지뢰' 표시로 옆 산 출입을 막아놨습니다.

    1967년 정부가 대북 선전용 마을을 조성했으니 들어와 살라고 했을 땐 몰랐습니다.

    유철훈 씨가 학교 터를 닦다 처음 지뢰를 밟고 나서야 땅 밑의 실체가 확인된 겁니다.

    [유철훈/지뢰 피해자]
    "폭풍지뢰 밟았지. 귀도 떨어져 나가고 눈도 빠져나가고 다리 다쳤다고. (지뢰 밟은 뒤로) 50년 동안 고생 무진장 많이 했지."

    2001년까지 마을주민 23명이 지뢰사고를 당했고 10명이 숨졌습니다.

    지뢰로 남편을 잃은 김선임 할머니.

    [김선임/지뢰 사고로 남편 사망]
    "(들에서) 일하는데 '뻥' 소리가 나는 거야. 그래서 '아이고, 저기 또 누가 지뢰가 터졌구나'하고서는 나는 우리 신랑인 줄도 모르고…"

    '땅과 집을 줄 테니 죽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탓에 보상도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

    [김선임/지뢰 사고로 남편 사망]
    "(정부가 준다던) 논도 임자가 와서는 다 달라 그래서 다 주고. 애들은 넷이나 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야. 살아남은 걸 어떻게 말을 다 해 내가…"

    DMZ는 파악이 불가능할 규모라 제외하고 국내 지뢰매설 밀도는 1제곱미터당 2.3개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지뢰사고도 정전 이후 매년 일어나 작년만 해도 강원과 경기 북부에서 민간인 4명이 발목 절단 등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쟁은 이렇게 진행형입니다.

    MBC뉴스 임경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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