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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간다] "숨 쉴 틈도 없다"…'죽음'의 택배 물류센터 체험기

[바로간다] "숨 쉴 틈도 없다"…'죽음'의 택배 물류센터 체험기
입력 2018-09-27 20:31 | 수정 2019-10-0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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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

    이슈의 현장을 찾아가는 '바로간다'.

    인권사회팀 윤수한 기자입니다.

    한 달 전이었죠.

    50대 일용직 노동자가 택배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쓰러져 숨졌는데요.

    택배 노조는 '죽음의 알바'로 불릴 정도의 가혹한 노동이 비극을 불러왔다고 주장합니다.

    대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기에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걸까요?

    사망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물류센터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을 해보겠습니다.

    인터넷으로 야간 근무에 지원했더니 오후 4시까지 지하철역 앞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통근버스를 타고 2시간 반 걸려 CJ 옥천 물류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
    (여기서 기다리면 돼요?)
    "네. 여기서 기다리면 돼요. 이름 불러줘요."

    먼저 얼굴 인식 프로그램에 등록한 뒤,

    [하청업체 직원]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말고. 눈 깜빡거리지 말고."

    시키는 대로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재촉하는 통에 계약서에 뭐라고 돼 있는지 제대로 확인할 순 없었습니다.

    [하청업체 직원]
    "네 장씩 다 쓰신 거죠? 다 쓰셨어요? 네 장씩?"

    더구나 계약서 한 부는 반드시 노동자에게 줘야 하는데도 전부 가져가 버렸습니다.

    일 시작하기도 전에 목격한 첫 번째 불법행위였습니다.

    아픈 데 없는지 문진표도 적으라고 했는데 이게 있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었습니다.

    일부러 손목과 허리가 아프다고 적어냈지만 한번 쓱 보지도 않고 걷어갔습니다.

    일할 때 뭘 주의해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바로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처음 맡은 건 레일이 멈추지 않도록 작은 택배를 골라내는 일.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레일 돌아가는 속도가 엄청났습니다.

    지금 이 장면, 일부러 화면을 빨리 돌린 게 아닙니다.

    실제 속도가 이 정도입니다.

    잡으려다 놓치고, 잡으려다 놓치고.

    집중해도 실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일에 택배가 쌓여가자, 관리 직원이 달려와서 직접 빼내기도 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일용직들도 비슷했습니다.

    무시무시한 속도에 맞추려고 뛰어다니고, 사다리를 타고 레일 사이를 넘나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눈총을 받기 일쑤입니다.

    [하청업체 직원]
    "뭐해요. 빨리빨리 해야죠!"

    여기만 이렇게 빠른가 싶어 물어보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일용직 노동자]
    (레일이 너무 빨라요)
    "아, 이거. 이거는 별로예요. 여기는 덜 한데…"

    이렇게 두 시간을 일한 뒤, 스티로폼 상자를 레일에 올리는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쌀이나 김치 같이 20kg 넘는 물건을 쉴 새 없이 옮기다 보니 손목이 시큰거렸습니다.

    1~2분 간격으로 계속 상자 더미가 밀려들어 숨 돌릴 틈도 없었습니다.

    빗자루로 작업장을 쓸고 트럭에 남은 물건까지 다 내렸더니 그제야 밤참을 겸해 1시간 휴식을 줍니다.

    [일용직 노동자]
    (지금 시간 말고는 따로 쉬는 시간이 없어요?)
    "요령껏 쉬셔야 해요. 그냥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시면 돼요."

    밥과 국, 반찬 3개인 조촐한 야식을 먹고 나니 잠시라도 편히 쉬고 싶었습니다.

    딱 하나뿐인 컨테이너 휴게실로 갔더니, "환자만 쓸 수 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
    (휴게실은 따로 없어요?)
    "휴게실이 없어요."
    (저 컨테이너가?)
    "환자들. 다치시거나 더위 먹었다든가."

    다들 땅바닥에 앉거나 레일에 기대서 쉬고, 어떤 분은 포장 박스에서 한숨 돌립니다.

    그나마 한 시간 다 채워서 쉴 수도 없었습니다.

    휴식 시간 끝나기 5분 전부터 레일이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일용직 노동자]
    "레일은 먼저 돌아가… 30분 (되기) 전에 가셔야 돼요. 딱 맞춰 가면 또 그러니까."

    이후부턴 상차 작업을 했습니다.

    사방이 막힌 화물차 안에서 상자를 들어 올려 쌓는 일입니다.

    한 달 전 사망한 50대 노동자가 바로 이 일을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가을 새벽이라 꽤 쌀쌀한데도 턱턱 숨이 막혀 옷 벗고 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일용직 노동자]
    "택배 와서는 좋은 걸 바라면 안 돼요. 좋은 거를 바라면 안 된다고…"
    (몸 괜찮으세요?)
    "몸 아프죠. 햇볕을 못 보니까. 끝나고 가면 잠깐 햇볕 봤다가 자야 되니까…"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며 일하다 보니 어느덧 해가 떴습니다.

    언제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날 배당된 물량을 다 처리하고 오전 8시 반에 퇴근할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따져보니, 이날 하루 저는 총 12시간 35분을 일했습니다.

    4시간 일하면 30분 휴식을 주도록 돼 있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최소한 1시간 30분은 쉬어야 했는데 실제론 55분밖에 못 쉬었습니다.

    역시 명백한 법 위반입니다.

    사망 사고 난 지 대체 얼마나 지났다고 이렇게 대놓고 법을 무시하나 싶었습니다.

    [김가람/노무사]
    "4시간에 30분, 부여하도록 돼있는데. 그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았다면, 그 부분은 법적인 조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판단됩니다."

    옥천 물류센터에서 숨진 50대 노동자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경찰 조사가 다 끝나야 밝혀질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그가 숨지기 직전까지 얼마나 힘들게 일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한 번이라도 여기서 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혹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주간 최저임금에 연장근로와 야근수당까지 합쳐 13만 원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만난 한 일용직 노동자.

    그는 저에게 "다시는 여기 오지 말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
    "너 만약에 여기 계속 온다고 생각해봐. 너 3일하면 너 죽어. 3~4일 하면…"

    바로 간다 윤수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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