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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간다] 곳곳 '위험천만'인데…"속도 내라" 경고방송

[바로 간다] 곳곳 '위험천만'인데…"속도 내라" 경고방송
입력 2018-10-01 20:30 | 수정 2019-10-0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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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바로간다, 인권사회팀 윤수한 기자입니다.

    지난주 두 차례에 걸쳐 택배 물류센터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열악한 처우에 대해 보도했는데요.

    사실 더 심각한 게 있습니다.

    바로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인데요, 어떤 상황인지 직접 일하면서 취재한 내용을 바로 전해드리겠습니다.

    ◀ 리포트 ▶

    자정 전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받아본다는 로켓 배송으로 유명한 택배회사 물류창고에 도착했습니다.

    건물로 들어가니 작업 시작하기 전에 휴대전화부터 내놓으라고 합니다.

    일할 때 보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관리 직원]
    "핸드폰 끄시고 신분증이랑 내주실게요."

    휴대전화까지 뺏는 걸 보니 안전을 꽤 중요하게 여기는구나 싶었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다른 물류센터와 마찬가지로 곳곳이 위험했습니다.

    지게차가 경고음 없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바람에 놀라기도 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에 걸려 넘어질 뻔했습니다.

    진열대에 물건을 대충 쌓아놔서 사람한테 떨어지면 크게 다치겠구나 싶었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창고 안에 스티로폼과 종이 박스가 가득한데 화재 대비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휴게 시간에 잠깐 돌아다녀 보니, 소화기 있다는 표시만 있고 실제론 없는 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창고 4층과 5층에는 아예 소화기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이 장면 한번 보시죠.

    여기는 불났을 때 방화벽이 내려오는 공간입니다.

    물건이나 화물운반대, 즉 팔레트를 절대 놔두지 말라고 써 붙여 놨는데, 그러면 뭐 합니까?

    상자 잔뜩 실은 팔레트를 저렇게 당당하게 놔뒀는데 말입니다.

    또 이 물류 창고 안에서만 최소 천 명이 일한다는데, 층과 층을 오고 가는 통로는 저 좁은 계단밖에 없었습니다.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러나 싶어서 나중에 물어봤더니, 회사에선 비상계단이 두 개 더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불났을 때 작업자들이 대체 어떻게 알고 빠져나가겠습니까?

    [일용직 노동자]
    "(혹시 다른 계단 있다고는 얘기 들으시거나…) 아니요. 없어요. 몇 달을 계속 가고 있긴 한데… 그 계단이 하나밖에 없어요. 출입문도 하나고."

    이런 작업 환경에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는데, 틈틈이 경고 방송까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이 방송 한번 귀 기울여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쿠팡 물류창고 방송]
    "본인이 아실 겁니다. 속도 올려주세요. 다시 한 번 명단에 올라오시는 분들은 관리자들이 조치하겠습니다. 사원님들 속도 좀 올려주세요."

    작업 속도 느리면 뭔가 조치를 하겠다는 경고인데, 이런 방송을 들으면 압박감이 상당합니다.

    흔히 속도와 안전은 반비례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여기가 그랬습니다.

    뭐든 빨리빨리 해야만 하니, 안전은 신경 쓸 틈이 없었습니다.

    안전교육만 해도 그렇습니다.

    법에는 사고 방지를 위해 일용직 노동자도 1시간 동안 교육을 받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물류창고에선 딱 5분간 교육 영상 보여주다가 끊어버리더니 그냥 알아서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안전교육 담당자]
    "딱히 제가 드릴 말씀은 없고, 레일에 머리가 빨려 들어가면 무조건 머리 다 잘라내는 경우 많았어요. 위험한 것들 보이면 그냥 다 피해 다니시면 돼요."

    물론 여기만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다녀본 물류센터 중에선 안전교육 자체를 안 한 곳도 있었습니다.

    [CJ 도봉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시급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 자체가. 위에서 (안전교육을) 인정을 안 하는 거죠. 그럼 작업해야지…(안전교육을) 하려면 30분 일찍 와서 해라…"

    이런 상황이니 물류센터에서 사람 안 다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일하러 간 곳마다 경험 있는 일용직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얘길 했습니다.

    크게 다칠 수 있으니 스스로 조심하라는 거였습니다.

    [CJ 옥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이러고 있잖아. 허리 다쳐가지고서…"

    저분 다리에 멍이 든 거 보이실 겁니다.

    이처럼 이 일을 오래한 분치고 몸이 성한 분은 없었습니다.

    레일에 머리카락 끼는 것도 그저 경고인 줄 알았더니,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CJ 도봉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레일에 껴가지고 손가락 여기가 이만큼 떨어진 사람 있었어. 분류하다가 레일 밑으로 손이 들어가서…"

    빨리 빨리만 강조하다 보니 심각한 사고도 비일비재하다고 했습니다.

    [CJ 옥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맨몸으로 뛰어내리다가 그냥 하반신 마비된 사람도 있고. (왜 뛰어내려요?) 화장실 가려고. 돌아가면 되는데 급하니까 뛰어내린 거야."

    더구나 일하다 다쳐도, 보험료 오르고 문제 사업장으로 지목될까 봐 회사에선 산재처리도 잘 안 해준다고 합니다.

    [CJ 도봉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
    "개인 의료보험으로 한 거예요. 그니까. 원래 사고사 같은 경우는 뭐 산재로 처리를 해야 하는데…"

    2년 전 고용노동부가 전국의 물류센터를 특별 점검 했지만, 이후에도 바뀐 건 전혀 없다는 게 노동자들의 얘깁니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한 해 몇 명이나 되고, 다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해서 노동부에 물었더니 택배 업종 전체 통계는 있어도 물류센터만 따로 잡은 통계가 없어서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노동부에서 단속이나 점검을 해도 사업장에서 언제 나오는지 미리 다 알고 대처한다고 했는데, 부디 이것만큼은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물류센터 운영하는 한 하청업체를 찾아가 왜 이렇게 안전에 소홀한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휴식시간 충분히 주고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면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가 없다고 합니다.

    [물류센터 운영 하청업체 직원]
    "단가 문제에요, 단가. 항상 돈하고 연결돼 있잖아요. 갑에서는 계속 깎는다고요. 거기에 대한 저희 수익률이 많이 떨어지는 그 부분이 참 가장 큰 애로지."

    목숨과 안전에 대해 물었는데 답변은 늘 '돈'이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물류센터 3곳에서 모두 나흘 동안 주간과 야간 합쳐서 총 마흔두 시간을 일하고 이 기사를 썼습니다.

    그 마흔두 시간 동안 저는 택배회사들이 자랑하는 로켓 배송이니 총알 배송이니 새벽 배송이니 하는 게 알고 보면 노동자의 피땀 어린 눈물로 가능했고 심지어 안전까지도 희생한 대가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택배 물류센터의 현실을 고발한 죽음의 알바 시리즈 기사에 대해 많은 시청자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요.

    그 중엔 이런 글도 있었습니다.

    “택배 늦게 받아도 됩니다. 이번 기사로 근로조건이 개선되길 바라며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MBC 인권사회팀 기자들은 이런 댓글과 제보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확인하고 귀 기울여서 듣겠습니다.

    또 인권사회팀 기자들은 앞으로도 현장으로 바로 뛰어들어가서 몸으로 부딪쳐가며 취재하려고 합니다.

    소중한 제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로간다 윤수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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