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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남아 슬프다"…한 맺힌 70년 전 '징용 노동자'의 눈물

박민주 기사입력 2018-10-30 21:48 최종수정 2018-10-30 21:55
강제징용 전범기업 일본 배상책임 기마이시 제철소
◀ 앵커 ▶

사실 국내 재판만 13년 걸렸지 첫 소송은 1997년, 일본에서 시작합니다.

1,2심 그리고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내리 패소 판결합니다.

이에 피해자들은 2005년 우리 법원에 도움을 호소하지만 우리 법원의 1, 2심 역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유효하다"며 패소 판결합니다.

반전은 2012년 대법원에서 일어납니다.

"일제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고 있는 우리 헌법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면서 기존 판결을 뒤집어서 고법으로 돌려보낸 겁니다.

이에 고법은 2013년 "일본 제철의 반인도적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 배상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제철이 곧바로 재상고했고 그로부터 5년,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긴 잠에 빠집니다.

원고 4명으로 시작한 소송은 그 사이 3명이 숨져 오늘(30일) 대법정에는 유일한 생존자인 98살 이춘식 옹만 나왔습니다.

특히 이춘식 옹은 다른 동료 3명의 죽음을 오늘에야 알았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박민주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생전엔 듣지 못할 것 같았던 승소 판결 소식에 100살을 눈앞에 둔 노인은 북받치는 감정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특히 소송을 낸 동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혼자만 남았단 사실을 변호사로부터 전해들은 뒤, 기쁨에 벅찬 표정은 얼마 가지 않아 서러움으로 변했습니다.

[이춘식/징용 피해자(97살)]
"오늘 나 혼자 나와서 내가 많이 슬프고 눈물이 많이 나오고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고…"

17살이던 1941년, 이춘식 씨는 일본 기마이시 제철소로 징집돼 고된 노역에 시달렸지만 임금은 단 한 차례도 받지 못했습니다.

"월급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고 밥 주고 도시락 주고 그러면 공장에 시간 나면 출근하고…"

아픈 상처만 안고 살아가다 이미 노인이 된 지난 2005년, 3명의 동지들과 함께 소송을 냈고 13년 뒤에야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21년 전, 현지에서의 멸시와 비웃음을 뚫고 일본 법원으로 달려가 소송을 냈던 여운택, 신천수 씨.

그리고 오늘의 판결이 나오기 불과 넉 달 전에 세상을 떠난 김규수 씨.

[최정호/故 김규수 씨 부인]
"본인이 그렇게 한이 됐었는데… 조금만 일찍 판결 났으면 가시기 전에 이런 좋은 소식을 맞았을 텐데 마음이 아픕니다."

당연한 것 같았던 판결이 5년 넘게 지연되는 동안 이들 3명 모두 마지막 소망이라던 승소 판결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MBC뉴스 박민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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