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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명높던 '고문 현장'이 '인권 요람'으로 거듭나다

악명높던 '고문 현장'이 '인권 요람'으로 거듭나다
입력 2018-12-26 20:25 | 수정 2018-12-2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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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 바로 옆에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은 민주화 인사를 잡아다가 고문했던 곳으로 악명이 높죠.

    경찰이 관리하던 이곳을 오늘 행정안전부가 넘겨받았습니다.

    대공분실은 앞으로 시민을 위한 공간, 민주 인권기념관으로 거듭날 예정인데요.

    현장에 장인수 기자가 나가 있습니다.

    장 기자! 지금 있는 곳이 고문이 자행된 조사실이죠?

    ◀ 기자 ▶

    네 저는 지금 대공분실 5층에 있습니다.

    좁은 복도 양 쪽에는 16개의 조사실이 있는데요.

    먼저 9호실부터 보시겠습니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 숨진 곳입니다.

    이 조사실은 87년 당시 그대로 원형이 보존돼 있는데요.

    물고문이 자행됐던 욕조가 보이고요.

    고문의 고통을 못이겨 주변 물건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도록 책상과 의자는 바닥에 완전히 고정돼 있습니다.

    당시 검찰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대해 책상을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 라는 거짓 발표를 합니다.

    이 발표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87년 6월 항쟁이 시작됐습니다.

    이 비상구에 계단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원형계단이 있는데요.

    이 계단은 1층에서 조사실이 있는 이곳 5층으로 곧바로 연결됩니다.

    다른 층으로 나가는 출입문은 없습니다.

    민주화 인사들은 눈이 가려진 채 이곳으로 잡혀와 원형계단을 빙빙 돌아 올라왔습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어디로 잡혀왔는지 건물 몇 층에 있는 건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조사실들은 이곳의 정체가 세상에 폭로된 뒤 고문의 증거와 흔적을 없애기 위해 리모델링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15호실로 가보시겠습니다.

    이곳은 1985년 고 김근태 전 장관이 민청련 사건으로 잡혀와 고문을 받았던 곳입니다.

    지금은 그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은 이곳에서 23일 동안 8번의 전기고문과 2번의 물고문을 당했습니다.

    이 노란 수건을 한번 보실까요.

    7~80년대 고문에 사용됐던 도구들은 모두 치우고 버려서 현재는 이 수건 한 장만 남아 있습니다.

    이 수건을 김근태 장관 얼굴에 덮고 주전자로 물을 들이붓는 고문을 했었습니다.

    이 수건을 빠는데 썼던 비누 냄새를 맡으면 끔찍했던 고문의 기억이 떠올라 김 전 장관은 그 회사의 비누를 평생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후유증으로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콧물을 흘렸고 몸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관식 행사에는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던 많은 인사들이 참가했습니다.

    당시 끔찍한 고문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 이웃의 몸에 뚜렷이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망각을 보호막 삼아 고문을 자행했던 사람들이 편히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MBC뉴스 장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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