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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오희영을 아십니까?

'광복군' 오희영을 아십니까?
입력 2019-01-01 20:18 | 수정 2019-01-0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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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이 역사적 사진과 사진 속 인물들의 행로는 이렇게 우리 현대사의 곡절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저희는 수많은 사연을 지닌 사진 속 인물 가운데 특히 뒷줄 왼쪽 세 번째 이 젊은 여성과 그 가족의 삶에 주목했습니다.

    김효엽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오희영.

    광복군 징모제6분처 소속.

    사진 촬영 당시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여동생, 남동생과 함께 삼 남매가 임시정부에 헌신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됐고 삼 남매의 인생을 증언해줄 마지막 인물인 막내 여동생은 9달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투병 중입니다.

    [오희옥/92세, 오희영 지사 여동생]
    (어머니, 성함?) "오…희…"

    오희영 지사 집안이 살던 곳은 경기도 용인, 의병장이었던 할아버지가 8년간 옥고를 치른 뒤 온 가족이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체포한 토벌대를 이끈 건 대표적 친일파 송병준의 아들이었습니다.

    [오수환/해주 오씨 종친회장]
    "송병준의 아들 송종헌이 이끌고 온 토벌대에 체포된 후 온갖 고문과 악행을…"

    아버지 오광선은 광복군을 지휘했고 어머니 정현숙은 만주의 어머니라 불렸습니다.

    맏딸인 오희영은 열여섯 나이로 광복군에 지원했습니다.

    [신영신/오희영 지사 딸]
    "'나라 없는 백성이라 이렇다'고 욕을 했대요. 그래서 중국인 선생한테 책상 집어던지면서 '너 같은 놈한테 공부 안 배운다, 왜 우리나라가 나라가 없냐'고…그러고선 (광복군으로) 곧장 뛰어들어가셨다고 해요"

    송병준 일가가 조선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오희영 지사 삼대는 이역만리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다 찾아온 광복.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고국에서의 삶은 기대와 많이 달랐습니다.

    그냥 내던져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습니다.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

    오희영 지사는 두 아들을 잃었고 총상까지 입었습니다.

    [신영신/오희영 지사 딸]
    "어렸을 때 엄마하고 목욕을 하면 다리 한쪽이 이만큼 푹 파였어요."

    결국, 6남매를 남긴 채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다른 가족들 역시 말을 아끼고 살아왔습니다.

    [오정근/해주 오씨 종친회]
    "그 양반들이 집 하나 내 집에서 못 살아봤어, 어머니가…남의 집 방 하나 얻어 사셨지."

    대가를 바라고 독립운동한 게 아니었고 그래서 서운할 것도 없었지만 친일파들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허탈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를 잡아갔던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훗날 한국은행 총재가 되고 나중에는 땅 찾겠다고 소송까지 한다는 소식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오희옥/지사(지사 여동생-2005년 인터뷰)]
    "(친일파들이)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니…그거 듣고선 아휴, 속에서 불이 나요."

    가문의 역사는 사진 몇 장, 신문기사 몇 개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서랍에서 뭐 하나 꺼내시고, '이런 자료도 있고, 이런 자료도 있고'…그 집안을 조명할 책도 하나 없는 거예요. 메리야스 상자 같은 데서 사진 낱장 하나 주시고."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던 그들을 잊지 않는 게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 지를 깨닫는 출발이 된다는 것.

    흑백사진 속에서 흐려져 가는 스무 살 독립투사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MBC뉴스 김효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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