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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숨 '분노'에 실어…"끝까지 싸워달라"

마지막 날숨 '분노'에 실어…"끝까지 싸워달라"
입력 2019-01-29 20:04 | 수정 2019-01-2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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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일본의 정식사과를 받기 전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어젯밤 별세했습니다.

    평생 고통스런 기억을 안고 살았지만, 피해자로 머무르지 않고 여성인권운동가로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울림을 주었습니다.

    투병중에도 휠체어를 타고 매번 수요집회 앞자리를 지키던 그 모습도 기억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당부했습니다.

    양효걸 기자입니다.

    ◀ 리포트 ▶

    열 네살이던 1940년,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군에 끌려갔습니다.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같은 낯선 이국 땅을 떠돌며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채 8년간 고통받았습니다.

    떠올리기조차 끔찍한 평생의 악몽, 하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섰습니다.

    지난 1992년 3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스스로 공개하며 시작한 '수요시위'는 27년간, 1천 3백 번이 넘는 수요일마다 일제의 만행을 잊지 말라고 시민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김 할머니가 요구한 것은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위안부 피해자]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여태까지 싸웠나?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1천억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할머니는 나라 밖에서도 전쟁 피해자들을 위해 힘썼습니다.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등을 매년 수차례 방문해, 전쟁 중 성범죄에 희생된 이들을 위로했습니다.

    2012년엔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나비 기금'을 설립했고, 장학재단을 세워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동포 학생들을 도왔습니다.

    [윤미향/정의기억연대 대표]
    "(저는) 그렇게 강인하고, 그렇게 용감한 여성을 만난 적이 없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쉼 없이 27년 동안, 수요일마다 거리에 섰고…"

    어젯밤 눈을 감기 직전 김복동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끝까지 해달라'는 절규였습니다.

    27년간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일본으로부터의 진심어린 사죄는 끝내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는 건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우리가) 죽고 없어져도 이 문제는 없어지지 않아요. 해결지어야 하는 거죠."

    평생 모은 돈을 모두 남에게 기부한 김복동 할머니는 통장 잔고 160만 원을 남긴 채 한많은 아흔 세 해를 마감했습니다.

    MBC뉴스 양효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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