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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조국을"…'진격' 명령만 기다렸던 그들

"내 손으로 조국을"…'진격' 명령만 기다렸던 그들
입력 2019-03-29 20:15 | 수정 2019-03-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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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작전명 독수리.

    일제가 패망으로 치닫던 1945년 수립된 비밀 군사 작전입니다.

    미군의 훈련을 받은 특수 부대원을 한반도로 투입시켜 일제를 교란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작전을 위해 한국의 청년들이 비밀리에 선발돼 연합군의 혹독한 훈련을 받았지만 실행 직전,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이 청년들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인 한국 광복군입니다.

    해방 후 한동안 잊혀지면서 철거 위기에 몰렸던 중국 충칭의 광복군 총사령부가 당시 원형 그대로 복원됐습니다.

    현지에서 김수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인구 3천만 명의 거대도시 충칭.

    그중 가장 번화한 위중구 쩌우룽루 한복판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었던 광복군 총사령부가 1940년 창설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됐습니다.

    [이낙연/국무총리]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군대였던 광복군이 전개한 독립투쟁의 기반 위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국민은 그 엄연한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음식점과 의류판매점, 창고로 이용되며 광복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건물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합의한 지 1년여 만에 지상 4층 건물로 복원됐습니다.

    [이소심 여사/광복군 이달 선생 장녀]
    "충칭의 금싸라기 땅이었던 곳이 오늘날 많은 분들 도움으로 복원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1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연화지 청사도 최근 리모델링을 마쳤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 직전 마지막 사진을 찍었던 계단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유수동/광복군 군의관 유진동 선생 3남]
    "아버지가 한국 독립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이 장면을 보시면 매우 위로를 받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창설됐습니다.

    서른 아홉 명, 초라한 모습으로 시작했지만 1945년에는 1천 명 규모로 커졌습니다.

    일본군에 강제 징집됐다 탈출한 학도병과 만주 지역의 청년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합류했습니다.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고, 국내 진격 명령을 기다리던 광복군은 원폭 투하 뒤 들려온 일본의 항복 소식에 분루를 삼켜야 했습니다.

    당당한 전승국이 되길 원했지만 광복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임시정부와 광복군 무장투쟁이 광복의 밑바탕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복원식이 진행된 광복군 총사령부는 중국 측과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일반 관람객에게도 무료로 공개됩니다.

    중국 충칭에서 MBC뉴스 김수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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