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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맺힌 절규…"빨갱이 낙인 떼고 죽고 싶어요"

피맺힌 절규…"빨갱이 낙인 떼고 죽고 싶어요"
입력 2019-04-03 19:40 | 수정 2019-04-03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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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4.3으로 제주는 당시 인구의 10%인 3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 남았다해도 군사 재판에서 빨갱이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도 많습니다.

    이들을 '4.3 수형인'이라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숨졌고 이제 서른 명 정도 생존해 있는데 8, 90대 고령입니다.

    눈을 감기 전, 빨갱이 딱지를 떼고 싶다는 이들의 사연을 김찬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올해 여든아홉인 김경인 할머니.

    1949년,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뭍으로 끌려가 형무소에 수감됐습니다.

    제주 곳곳에서 벌어진 학살을 피해 산에 숨었던 게 전부인데, 군사재판에서 폭도로 몰려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형무소에서 끔찍한 피부병에 옮아 10개월 만에 석방됐지만, 얼굴에 남은 흉터는 평생을 쫓아 다녔습니다.

    [김경인/4.3 수형인(89살)]
    "지금도 속상하지. (얼굴에 흉터 때문에) 지금도 창피해서 어디를 가지도 못해. 죽기 전에는 못 잊지. 평생 잊어집니까? 죽기 전에는 못 잊어."

    모진 고문에 허위자백을 하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故 현창용 할아버지.

    지난 1월 재심을 통해 평생의 한이던 빨갱이 딱지는 뗐지만, 소원이던 선고가 난 지 불과 보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딸이 공무원 시험에 붙고도 합격이 취소되는 등, 그의 전과는 일생토록 온가족을 괴롭혔습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한 건 한시도 잊을 수 없는 고문의 악몽이었습니다.

    [故 현창용/4.3 수형인(작년 3월, 당시 88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체포 당시에 그 고문 받은 거… 그것이 머릿속에서 다 사라지도록 어떻게 하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빨갱이, 폭도, 전과자.

    주홍글씨를 단 채 평생을 숨죽이며 살아온 이들은 지난 2017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그리고 2년만인 지난 1월 법원은 무죄 취지인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자의적인 체포와 고문 등에 기반했던 군사재판의 불법성을 인정한 겁니다.

    [오희춘/4.3수형인(89살)]
    "나는 이제 죄가 없다. 마음으로라도 용기를 내서 살아야지. 무죄 판결도 받고 하니까. 명예 회복도 되고 하니까. 이제는 용기를 내서 살아보려고 해, 하루라도."

    하지만, 이렇게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 수형인은 18명뿐.

    4.3군사재판으로 형을 산 2천530명 대부분이 억울함을 벗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이제 30여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도 8,90대의 고령이라, 어느 세월에 추가 재심을 청구하고 배상까지 받아낼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당시 군사재판 자체를 무효화하는 4.3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장완익/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장]
    "똑같이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방법은 '판결 자체가 무효다. 재판이 무효다'라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거고, 법제화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군사정권 시절,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제주 4.3.

    그 아픈 역사를, 몰라서, 혹은 불편해서 외면하고 있기에는, 생존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MBC뉴스 김찬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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