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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은 꺼졌지만…마음은 더 타들어간다

불은 꺼졌지만…마음은 더 타들어간다
입력 2019-04-06 20:14 | 수정 2019-04-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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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이재민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장례비에 쓰려고 한푼 두푼 모아둔 쌈짓돈이 모두 타버린 분도 있었고, 자식들 주려고 애써 아까둔 쌀을 전부 잃은 분도 있었습니다.

    이어서 김민찬 기자입니다.

    ◀ 리포트 ▶

    2년 전부터 틈틈이 자신의 장례비를 모아 온 김용하 할아버지.

    순식간에 불어닥친 불길에 미처 챙겨 나오지 못한 비상금은 검은 종이뭉치로 변했습니다.

    잿더미가 된 비상금은 4천 5백만 원.

    국과수까지 출동했지만 보상받을 길은 막막합니다.

    [김용하]
    "내가 폐가 망가졌어. 지금 죽게 됐어. 2년이면 죽는대. 아들 넘겨주려고 그래서 찾아 놓은 거지."

    폐허로 변한 창고를 속절없이 쳐다보는 할아버지.

    80년, 한평생을 함께해 온 집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아들 내외와 나눠 먹기 위해 고이 간직해 둔 쌀 16가마도 모조리 불에 타 버렸습니다.

    [엄기만]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쌀 하나도 못 꺼냈고 다 태우고. 올해 농사고 뭐고 다 타버려서 어떻게 해요."

    여기에 손과 발이 되어 준 경운기 2대도 고철로 변했습니다.

    불길은 모두 잡혔지만,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은 그대로입니다.

    여기처럼 집이 폭삭 내려앉은 곳만 이 마을에서 20곳이 넘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그리워 도시 생활을 접고 돌아온 고향집.

    부모님을 추억할 사진 한장 남지 않았다는 게, 더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재민]
    "60년 역사가 이 속에서 그냥 사라졌죠. 뭐 아무것도 (남은 게) 없으니까요."

    가족처럼 키우던 가축들을 보내는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

    2주 전 태어난 송아지에, 곧 새끼를 낳을 어미 소까지 소 5마리가 화염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이명재]
    "애지중지 아침에 일어나면 밥 주고, 저녁에는 우리 아들하고 놀면서 사료 주면서 정이 좀 들었죠."

    타들어 가는 집 앞에서 털이 타는 줄도 모르고 밤새 주인을 기다린 진돗개도 있습니다.

    그래로 살아남아 다행이지만, 새까맣게 타버린 털은 주인을 안쓰럽게 합니다.

    [이재민]
    "이 앞에서 우리 나올 때까지 밤새도록 얘가 기다린 거예요."

    순식간에 마을을 삼켜버린 불길은 이재민들의 추억도, 삶의 터전도 모두 삼켰습니다.

    MBC뉴스 김민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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