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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일왕'에 폭탄…'유쾌 청년' 편지 나와

홍신영 기사입력 2019-04-11 21:28 최종수정 2019-04-11 21:55
이봉창 폭탄 일왕 항일투쟁 문화재
◀ 앵커 ▶

환한 웃음을 가진, 그래서 평소에는 '유쾌한 청년'으로 불렸던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1932년,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을 향해 수류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입니다.

이 의사가 일왕을 향한 의거를 앞두고 굳은 결의를 다진 선서문, 또 김구 선생에게 보낸 친필 편지의 원본이 정식 문화재로 등록돼서 내일부터 일반에 공개됩니다.

홍신영 기자가 미리 보여드립니다.

◀ 리포트 ▶

'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1931년 12월 13일, 이봉창 의사가 거사를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직전 상하이에서 선서식을 거행하며 쓴 글입니다.

그리고 12월 24일, 도쿄에서 김구 선생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는 당시 김구의 가명이었던 '백정선' 선생에게 부친 편지에서, '의거'를 '물품'에 비유하며 "물품은 확실히 다음 달 중에 팔리니 아무쪼록 안심하라"고 적었습니다.

이에 김구는 12월 28일 의거 자금으로 100엔을 보냅니다.

그리고 열흘 뒤인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은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이 탄 마차에 수류탄을 던집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청년 이봉창은 그해 9월 30일 사형을 선고받았고,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거사는 실패했지만, 이봉창의 도쿄 의거는 잇따른 윤봉길의 상하이 의거와 함께 한국 독립에 대한 여론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기현/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임시정부 활동이) 침체기를 겪던 상황에서 김구 선생님께서는 의열 투쟁이 이를 돌파할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고, 첫 번째 의열 투쟁을 한 것이 이봉창의 의거입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의거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이봉창이 항일 투쟁을 결심하고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건너가 의거를 시행하기까지…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세건의 유물이 문화재로 등록돼 내일부터 일반에 공개됩니다.

원본이 공개되는 건 처음입니다.

모진 고문에도 끝까지 미소를 띄우며,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었다는 청년 이봉창.

그가 잠들어있는 효창공원도 '독립운동 기념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될 예정입니다.

MBC뉴스 홍신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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