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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영원할 것 같나…타이타닉처럼 침몰하리라"

"일제 영원할 것 같나…타이타닉처럼 침몰하리라"
입력 2019-04-11 21:32 | 수정 2019-04-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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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이번에는 임시 정부에서 외교를 담당했던 여운형 선생의 얘깁니다.

    일본 정부의 초청을 받아서 당시 일본 수상과 장관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을 향해 호통치듯 던진 일성이 일본 현지에서 기록으로 발견됐는데요.

    여운형 선생은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얕잡아보다 침몰했다"면서 "3.1운동이 바로 빙산의 일각"이라면서 거침없이 사자후를 토했다고 합니다.

    도쿄에서 고현승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 리포트 ▶

    3.1운동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된 일본은 임시정부 외무차장인 여운형 선생을 도쿄로 초청합니다.

    밖으론 일본의 포용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안으론 조선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일본에 이용될 수도 있고, 위험하다는 우려도 많았지만, 여운형 선생은 1919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2.8선언을 주도한 도쿄 유학생들과 함께 하라 수상을 비롯한 각 부처 대신들을 잇따라 만났습니다.

    이때 매파였던 다나카 육군대신은 무시무시한 위협을 합니다.

    "2천만 조선인을 없애버릴 수 있다"

    그렇지만 여운형 선생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타이타닉호는 빙산을 얕잡아봐 침몰했다. 3.1운동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당당하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어 여운형 선생은 도쿄 한복판에 있는 이곳 제국호텔에서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짧지만 강렬한 연설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일본 보도에 따르면 선생은, "조선 독립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이 민주공화국은 대한민족의 절대적 요구"라고 선언했습니다.

    일본에선 큰 파장이 일었고, 하라 내각은 이듬해 실각했습니다.

    임정의 기관지 독립신문은 "독립운동사의 유례없는 성과"라며 여러차례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부영/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한국독립운동의 나아갈 길 이런 것을 정리해준 굉장히 의미있는 몽양 여운형의 연설이었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던 일본 유학생들은 출범 때부터 임정의 주축으로 참여했습니다.

    조소앙 신익희 선생을 시작으로 윤현진 최근우 등 2.8선언 주역들도 상해로 건너갔고, 1921년 워싱턴에서 2차 독립선언을 한 유학생들은 선언문을 상해 임정까지 직접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배영미/일본 오타니대 교수]
    "조선 청년들에게 임정이라는 위상, 존재가치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쿄에서 당대의 국제 정세와 사조를 접한 유학생들은 잇따라 임시정부에 참여했고 민주공화제 등 대한민국 정치 체제의 기초를 다지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도쿄에서 MBC뉴스 고현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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