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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타격'이 교훈?…"국민들 간담 서늘하게"

'무자비한 타격'이 교훈?…"국민들 간담 서늘하게"
입력 2019-04-22 19:41 | 수정 2019-04-2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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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당시 상황을 시간표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0월 20일 부마 항쟁이 진압되고 6일 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됩니다.

    그 틈을 노려 전두환이 앞장선 신군부가 12월 12일 군사 반란으로 권력을 차지합니다.

    바로 이때, 전두환은 부마 항쟁 진압 경험을 문건으로 만들어서 신군부에 전파합니다.

    민주화 시위가 거세질 것이 예상되니, 그에 대비해 '무자비하게 타격하라'고 돼 있습니다.

    물론 그 대상은 시민들이었습니다.

    이어서 윤파란 기자입니다.

    ◀ 리포트 ▶

    79년 말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던 시절.

    보안사령부 정보처가 작성한 문건입니다.

    이른바 '부마학생소요사태의 교훈'.

    부마진압을 실패로 규정해놨습니다.

    단 이틀 만에 진압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동단계의 무력동원이 미흡했다고 평가한 겁니다.

    그러면서, 무자비할 정도로 데모대를 타격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해서, 군대만 보면 겁이 나 데모의지를 상실하도록 위력을 보여야 한다고 기술했습니다.

    또 이를 위해 평상시 폭동진압훈련을 실시해야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조사위원]
    "대개 시위를 진압하는 쪽에 포커스가 맞춰졌던 것이죠. 그런데 부마(항쟁)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추격해서, 끝까지 추격해서 색출을 하는 겁니다."

    전두환 신군부가 이렇게까지 초동 강경 진압에 목을 맨 이유는 뭘까.

    신군부의 정권장악 과정을 기술한 5공 전사는 부마항쟁이 72년 유신 이후 가장 격렬한 소요사태로서 특히 전국으로 확산 된 점에 주목합니다.

    주한 미 대사관이 국무부로 보낸 비밀문서는, 부산·마산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대구와 서울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했고, 광주에선 5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부마항쟁에 동조하자는 서신을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박유순/당시 전남대 2학년]
    "박정희의 끝장이 이제 부마(항쟁)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막 일어나겠구나…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가슴이 막 뛰고.. 이런 감정을 느꼈던…"

    10.26 직전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을 진압한 뒤에도, 심상치 않은 시위 확산세를 감지하고, 수도권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주형/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주변 부대한테 공포탄을 주고서 비상대기시키고, 휴가나 이런 것들 전부 다 금지시키고 대기시켰습니다. 이거는 이제 비상시 이제 (수도권) 계엄령이 선포될 경우를 대비해서 내린 조치였지요."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전개됐을지 모를 민주화 요구 움직임.

    초강경 진압에도 전국으로 확산 되던 반정부 시위.

    이를 목도한 전두환 신군부는 부마항쟁에서 '무자비한 진압'을 교훈이라는 이름으로 전파했습니다.

    MBC뉴스 윤파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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