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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위안소 연 '밀정' 어찌 이 곳에…호국영령들 '통탄'

엄지인 기사입력 2019-04-29 20:12 최종수정 2019-04-29 20:26
상하이 일본군 위안소 조선인 극동 댄스홀 송세호 친일 독립유공자 밀정 국가보훈처
◀ 앵커 ▶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받고 일제를 돕기 위한 밀정, 즉 정보원이라는 기록이 발견된 인물이 오히려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이 인물이 어떻게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는지, 또 과거 행적은 어떤지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엄지인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 리포트 ▶

1930년대 일본 해군사령부가 자리잡았던 중국 상하이.

일본군이 사용했던 위안소 건물 등 역사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주심휘 연구원/상하이 사범대학교]
"당시에 표를 팔던 곳이에요. 위안소 이용 규정이 상세하게 나와 있고, 금액이나 시간도 정해져 있었습니다. (위안소를) 이용할 때 표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도요."

상하이에 들어선 일본군 위안소 170여곳 가운데 스무 곳은 조선인 사업가가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극동 댄스홀'도 조선인이 업주였던 위안소로 지목된 곳입니다.

[소지량 교수/상하이 사범대학교]
"(일부는 위안소라는 이름 대신) 댄스홀, 식당, 클럽의 이름을 썼는데 모두 위안소였습니다. '극동 댄스홀' 은 위안소입니다."

극동 댄스홀을 경영한 조선인은 '송세호'씨.

일본은 신원이 검증된 사람에게만 민간 위안소 운영을 맡겼다는 점에서 친일행위 의혹이 제기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송세호 씨는 뜻밖에도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습니다.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댔다는 주장 등을 근거로 정부가 지난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기 때문입니다.

송 씨의 친일 행적은 다른 문건에서도 확인됩니다.

1939년 일본 검사가 작성한 수사 기록에도 '밀정행위에 종사한 친일 조선인'으로 송세호 씨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학교]
"(송세호 씨는 일본의) 밀정, 독립운동가들의 정보를 (일본에) 제공하는 사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송 씨의 유족은 "극동 댄스홀은 직원용 숙소와 무대가 있는 술집이었을 뿐 위안소는 아니었다" 며 다만 이를 입증할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고 말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검증 단계에서 검토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송 씨의 행적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독립유공자 1만 5천여명 가운데 초기에 훈장을 받은 5백여 명을 우선 검증해, 7월쯤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MBC뉴스 엄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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