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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유령' 30년…"주민번호 듣지도 않아"

살아있는 '유령' 30년…"주민번호 듣지도 않아"
입력 2019-05-06 20:01 | 수정 2019-05-0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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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행려 환자 중에 지문이든 주민번호든 개인 정보를 확인만 해도 바로 가족을 찾을 수 있지만 수십 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분통 터지는 사연들 얼마전 보도해 드렸는데요.

    이 보도 이후 유사한 사례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름과 주민번호를 똑똑히 알고 있었지만 그저 정신병자 취급을 당해 30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60대 남성의 사연을 최유찬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올해 64살인 김모씨는 1987년 32살 때 일을 구하러 집을 나왔습니다.

    관악산과 거리를 전전하던 김씨를 경찰은 행려환자라면서 용인의 한 정신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김 모 씨]
    "주민등록증을 분실했거든요. 잃어버려 가지고 (경찰이) 그거하러 간다고 했는데…"

    김씨는 이름과 주민번호를 댔습니다.

    하지만 병원측은 주민번호도 모르는 행려환자로 구청에 신고한 뒤 김씨를 입원시켰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정신병원 생활은 지난 2016년 9월까지, 무려 28년 9개월 동안 이어졌습니다.

    병원은 행려환자 김씨에게 지원되는 의료급여 월 120여만원을 받아왔습니다.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얘기 안 해보셨어요?)
    "말 안 했어요."
    (왜요?)
    "보내주지 않을 거니까. 보호자가 와야 퇴원시켜준대요."

    그럼 병원은 왜 신원 확인을 안했을까.

    명확한 답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해당 정신병원 관계자]
    "저희 병원 거(자료)는 오래돼서 소각되고 없어요. 87년부터 2000년은 소각돼서 없는 거고…"

    담당 구청은 병원에 책임을 돌렸습니다.

    [해당구청 관계자]
    "현장 가서 (환자) 확인까지는 안하죠. 그쪽(병원)에서 의뢰할 때는 거기서 자기네들이 책임지고 의뢰를 하는 거잖아요. 의뢰가 오니까 해줄 수밖에 없잖아요."

    영원할 것 같았던 행려환자의 삶, 그런데 2016년 병원으로부터 김씨를 인계받은 한 노숙인 센터는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행려환자 번호도 주민번호처럼 생년월일로 시작하는데 32로 시작된 것, 사실이라면 84세라는 얘깁니다.

    [이진명/노숙인센터 팀장]
    "본인 주민등록번호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셨어요. 제공 받은 주민번호하고 너무 달랐고…"

    주민센터에서 확인해보니 가족이 실종 신고를 해 이미 1997년 사망자 처리가 돼 있었습니다.

    경찰이나 병원 그리고 구청에서 한번이라도 확인해봤다면 금세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나주봉/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회장]
    "(신상 정보가 바뀌면) 찾을 수가 없죠… 무연고자 연고자 이것도 시설에서 내놓기 전에는 (알 수가 없어요.) 이 많은 인구도 아닌 나라에서 실종 사각지대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지만 김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돼 몸과 마음이 망가진 김씨를 돌볼 입장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보고 싶죠. 집에서 일도 하고 말 잘 듣고 있을 테니까, 집에서 받아만 주면…"

    수십년의 세월을 빼앗긴 이유가, 아무도 간단한 확인을 하지 않아서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미안하다, 앞으로 바로 잡겠다, 이런 말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MBC뉴스 최유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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