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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물] 최초 '1백만' 관객…'거장' 발걸음마다 새 역사

[문화인물] 최초 '1백만' 관객…'거장' 발걸음마다 새 역사
입력 2019-10-26 20:30 | 수정 2020-01-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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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커 ▶

    10월 27일, 내일은 한국 영화가 탄생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입니다.

    조선인의 자본으로 조선인 배우가 모여서 만든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상영된 날을 기준으로 하는데요.

    MBC는 오늘부터 이틀간 한국 영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보는 연속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오늘은 박소희 기자가 한국 영화계의 전설 임권택 감독을 만났습니다.

    ◀ 리포트 ▶

    태평소 가락에 실린 속사포 랩.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가 대중 음악계를 강타한 1993년.

    영화계에선 <서편제>가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영화사 최장 6개월 장기 상영, 최초 100만 관객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1988년 외화 수입 규제가 풀리면서 외화가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던 당시 우리의 소리와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서편제의 성공은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역사를 이뤄낸 거장 임권택.

    [임권택/영화감독]
    "제 영화 인생 최고의 해를 서편제가 선물해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출발은 미미했습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임권택/영화감독]
    "(영화 제작부에) 밥은 먹여주겠지 하는 그런 걸로 입문을 한 거죠. 잡일을 하면서…"

    전후 60~70년대 한국 영화계는 척박했습니다.

    [임권택/영화감독]
    "(한두 개 회사 빼고) 전부 뜨내기들이에요. 주문이 오는 대로 찍어서 흥행이 되면 되고 말면 말고…시나리오고 뭐고 없는 거예요."

    검열도 심해 오락물 위주로 양산됐습니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10년간 50여 편.

    회의감이 밀려왔습니다.

    [임권택/영화감독]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영화로 세월을 이렇게 쓰면 되겠는가…그럴 바에는 한국 영화를 만들자. 한국 사람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한국 영화…"

    그의 뜻은 우리네 삶을 담은 작품들로 이어졌고, 1981년 <만다라>와 1986년 <길소뜸>이 잇따라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한국 영화의 세계 진출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취화선>으로 최초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합니다.

    그렇게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습니다.

    [임권택/영화감독]
    "임권택 영화가 나가는 게 아니고 한국 영화가 밖으로 돌면서 세계인과 만나는 거예요. 너무 좋은일이지. 너무."

    그는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임권택/영화감독]
    "거짓 없는 삶을 담아서 그 삶 자체를 관객들한테 보여줌으로써 사람 사는 것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영화에 담아내서 가치를 높여가자…"

    한국 영화 100년, 그의 영화 인생 60년.

    그가 찍은 102편의 영화는 우리의 지난 역사를 정직하게 담은 그릇이었습니다.

    [임권택/영화감독]
    "그래도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무척이나 애썼구나 하는 정도 그런 감독 아닐까. 그런 것을 좀 알아채 줬으면 하는 거지 뭐…"

    MBC뉴스 박소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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