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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식욕억제제의 함정

식욕억제제의 함정
입력 2013-06-10 09:37 | 수정 2013-06-1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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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이미선 씨.

    10분 뒤,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꾸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납니다.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워도 보고, 천정을 향해 팔을 흔들어도 보고, 침대를 360도 뱅뱅 돌며 불면과의 사투를 벌이길 8시간,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아침이 밝았습니다.

    ◀SYN▶ 이미선(가명)
    "제가 3일 동안 못 잤거든요. 사람이 잠을 못 자면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게 없거든요. 이것 먹으면 진짜로 못 자요."

    사흘 동안이나 이미선 씨를 잠들지 못하게 만든 건, 바로 이 작은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몇 알의 약입니다.

    대체 어떤 약이길래 이토록 미선 씨를 괴롭히는 걸까요.

    ◀SYN▶ 이경선(가명)
    "거의 아침까지 그냥 뜬 눈으로 지샌다고 봐야해요. 그렇다고 또 낮에 잠이 오나? 낮에도 잠이 안 와요."

    이경선 씨의 불면증도 바로 이 '약'을 먹고 난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씨가 약을 받았다는 동네 병원.

    ◀SYN▶ 의사/00신경정신과
    "이것저것 다 쓰고 있거든? 왜 이렇게 약발이 안 좋아? 왜 이렇게 식욕이 좋아?"

    건네준 처방전엔 펜더정과 푸링정이라는 이름이 눈에 띕니다.

    비만치료에 쓰이는 '식욕억제제', 일명 다이어트 약입니다.

    이 씨는 인터넷에서 이 약을 처음 접했습니다.

    ◀SYN▶ 이경선(가명)
    "둘째 낳고 몸무게가 거의 한 80kg까지 나갔는데 어떤 방법이 있냐고 (물어보니) 엄마들이 댓글을 다는 거예요. 거의 약을 먹고 많이 뺐더라고요."

    효과는 탁월했습니다.

    ◀SYN▶
    "한 10-11kg가 빠졌어요. 두 달 만에 와…. 신세계예요. 완전 저한테는"

    하지만, 1년 만에 약을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SYN▶
    (그런데 왜 약을 그만 먹어야 되겠다 생각하신 거예요?)
    "몸이 너무 이상해졌으니까."

    약을 끊은 지 두 달 뒤, 몸무게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습니다.

    ◀SYN▶
    "안 먹었던 거의 두 배로 막 (식욕이...) 오늘 몸무게를 쟀더니 76, 77kg 나가는 거예요."

    이 씨가 먹은 식욕억제제는 '펜터민'이나 '펜디메트라진' 등 향정신성 물질.

    특정한 신경전달물질을 뇌로 보내 배가 고프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하는 원리로 식욕을 조절합니다.

    ◀INT▶ 신용문/대한약사회 교육전문위원
    식욕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있어요. 그게 세로토닌이라는 건데, 세로토닌이 우리 뇌에 많이 머물게 또는 오래 머물게 하는 그런 작용을 통해서 식욕이 억제되는 거예요."

    이런 신경전달물질이 뇌를 자극하면 기분이 들뜨면서 포만감은 물론이고 각성효과가 생겨 잠이 잘 오지 않는 등의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취재진은 다이어트 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다른 부작용들에 대해 더 들을 수 있었습니다.

    ◀SYN▶ 김00(41) 식욕억제제 복용자
    "맥이 빠지고, 의욕이 없고, 손발이 떨리고 몸이 붓기 시작하는 거예요"

    ◀SYN▶ 박00(39) 식욕억제제 복용자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에요.헛구역질 같은 거 막 하고 그래요. 식은땀도 나고…."

    그런데 여러 가지 부작용에도, 하나같이 약을 끊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SYN▶ 김00(41)식욕억제제 복용자
    "그걸 먹었을 때 기분이 너무 좋고 에너지가 막 솟는 거예요. /그게 사람이 죽는 길인지 모르고 말하자면 알게 모르게 중독이 된 거죠."

    ◀SYN▶ 이미선(40) 식욕억제제 복용자
    "그 약이 없으면 제가 못 견디니까 그냥 빚을 내서라도 그 약은 꼭 구해놓고
    진짜 이 약을 끊고 싶은데…."

    앞서 불면증에 고생하고 있다고 소개한 이미선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물을 잘 못 따를 정도로 떨리는 손.

    가게에서 물건을 사 돌아오는 잠깐의 움직임에도 거친 숨을 몰아쉽니다.

    ◀SYN▶ 이미선
    (괜찮으세요?)
    "원래 한 번에 못 올라가요. 힘들어서 가서 자야 돼요. 아후 답답해"

    식욕이 돌 땐 폭식을 한 뒤

    ◀SYN▶
    "그냥 당겨서 막 먹어요. 그러고 나서 후회하고 또 다 토하고 바로 약을 먹고..."

    ◀SYN▶
    "(약을)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하는데 저는 밥을 좀 많이 먹었다. 그러면 세 개, 네 개 먹어요"

    자기 전엔 배에 복대를 겹겹이 두르는 강박증세까지 보였습니다.

    더 심각한 건 충동이 잘 조절되지 않는 것입니다.

    ◀SYN▶
    "어느 초등학생 제 앞에 내렸는데 그 애가 우산을 잘못해서 제가 넘어졌어요. 다른 때 같으면 아 아파 조심해야지 이러고 말건데 순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최근에는 다이어트 약을 먹고 생긴 수면장애와 우울증으로 항우울제와 수면제까지 먹고 있습니다.

    이 씨가 다이어트 약을 먹기 시작한 건 8년 전,

    외모를 중시하는 회사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던 중 한 후배로부터 약을 처방해준다는 병원을 소개받았습니다.

    ◀SYN▶
    "15일 만에 봤는데 살이 갑자기 빠진 거예요. 너 어디 아팠어? 그랬더니 그런 데가 있다고...제가 63kg 나갔거든요. 사람들이 나중에 한 달 반 되니까 저를 못 알아보는 거예요."

    키 154cm에 몸무게 45kg.

    이젠 누가 봐도 날씬하지만 요즘도 병원에서, 심지어 퀵서비스로 약을 받아먹는다고 합니다.

    ◀SYN▶
    "제가 (병원에) 전화해놓죠. 저는 누구누구인데 지금 퀵 아저씨 갈 거니까 처방전 해서 약국에 좀 갖다줘라."

    이 씨의 정확한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검사를 받아봤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먼저 뇌파검사.


    ◀SYN▶ 조성남 원장/강남을지병원 중독연구소
    "파랗게 나와야 정상인데 빨갛게 나왔다는 건 (뇌가) 과활성화가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각성제를 과다복용하게 되면 정신분열병하고 똑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심리검사에선 가장 심각한 우울증이나 충동증보다 2배 이상 높은 점수가 나왔고,

    '식이장애'에다 약물의존도가 심해 당장 입원을 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SYN▶ 조성남 원장
    "10점 이상이면 심각한 약물중독인데 이 사람은 11점이 나왔어요. 약물 중독이 심한 상태에서 약물의 영향으로 인해서 불안과 공포 우울감이 최대치에 달한 그런 상태입니다"

    펜터민 등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사용설명서.

    중독성이 높아 식약처에선 마약류로 관리하고 있다고 돼 있습니다.

    장기간 과량 투약할 경우 앞서 본 부작용들이 생길 수 있다고도 적혀있습니다.

    때문에 체지방지수 BMI가 30을 넘는 '고도 비만환자'에 한해 단기간 4주 이내 처방하고,

    다른 식욕억제제나 항우울제와는 같이 투약하지 말라고 명시해놨습니다.

    ◀INT▶ 조성남/강남을지병원 중독연구소
    "같이 먹으면 안 되죠. 왜냐면 도파민하고 세로토닌을 높여주거든요. 위험한 게 폐동맥 고혈압이거든요. 심장 이상이 오고 급사할 수 있거든요"

    지난 2009년에는 서울 용산에서 펜터민 등 식욕억제제를 과량 복용한 30대 여성이 폐동맥고혈압으로 숨지면서 이런 위험성이 입증되기도 했습니다.

    ◀SYN▶ 서울 용산경찰서 관계자
    "부검결과 펜터민 중독으로...사인이 그렇게 나왔어요. 계속 주기적으로 먹다 보니 중독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약을 처방해주는 병원에선 이런 주의사항을 잘 지키고 있을까.

    올 8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예비부부 이재원 씨와 오수미 씨.

    지난달, 웨딩촬영을 앞두고 수미 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모든 게 수포가 됐습니다.

    ◀SYN▶ 이재원
    "뭐 벽지에 물이 흐르니 그런 식으로 하고 방바닥에 보면 자국이 몇 군데 있거든요. 그게 막 벌레가 움직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재원 씨는 이런 수미 씨의 행동이 부산의 한 병원에서 1년 넘게 처방받은 다이어트 약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언제부턴가 이상하게도 감정 조절을 못 하던 수미 씨는 석 달 전엔 자해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재원 씨는 병원에 약을 그만 주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SYN▶ 이재원
    "이 약을 끊게끔 도와달라 지어주지 마라. 근데 5월 초에 병원에서 또 5일치를 지어줬대요"

    수미 씨가 1년 넘게 먹은 약은 10여 가지.

    향정신성 식욕억제제가 2가지에 이뇨제, 변비약, 감기약과 수면제, 여기에 병용하지 말라는 항우울제까지 하루에 많게는 10여 개의 약을 먹었습니다.

    처방전을 본 전문가들은 수미 씨에게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INT▶ 유경숙/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일단 이 용량 자체가 상식적으로 사실은 생각하기 어려운 용량이에요. 사용설명서에 들어 있는 건 (아침저녁) 1정씩. 근데 이거는 네 알씩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8알을 먹는 거예요.

    ◀INT▶ 윤세창/서울삼성병원 정신가정의학과
    "권고사용기간이라는 건, 그 정도 사용됐을 때 안전하지만 그 이상 사용했을 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거든요. 그냥 모험을 하는 겁니다. 나를 걸고 생체 실험을 하는 거나 똑같은..."

    병원 측에 처방에 관해 묻고자 접촉했지만, 답변을 들을 순 없었습니다.

    2580 제작진 4명은 각자 체지방지수를 재고 나서, 다이어트 약을 처방해준다는 병원들을 방문해 식욕억제제를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병원을 방문할 4명의 체지방지수는 20에서 24. 모두 정상 범위였습니다.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

    진료실로 들어가자 일단 감량하고 싶은 몸무게를 물어봅니다.

    ◀SYN▶
    "몇 키로까지 빼고 싶으세요?
    (한 10kg 정도.)
    "이게 지방 1kg이에요. 본인 10킬로 빼고 싶다 그랬죠? 몇 개 빼는 거예요?"
    (10개요)

    그러더니 몸무게를 재지도 않고 약을 처방해줍니다.

    ◀SYN▶ 의사
    "식욕이 좀 왕성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식욕억제제를 한 알 반, 두 알로 늘릴 수가 있어요. 원하시면. 좀 세게 드릴까요? 지금 쓸데없는 지방이 열 개나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 달 굶어도 안 쓰러질 거예요"

    간호사는 본인이 원하면 약을 장기간 먹어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SYN▶
    "계속 드셔도 상관은 없어요."
    (아 괜찮아요? 원할 때까지?)
    "네 그건 본인이 알아서 하시는 거예요."

    몇몇 병원에선 여러 종류의 약과 지방주사를 함께 권했습니다.

    ◀SYN▶ 의사
    "여러 개가 좋으면 여러 개도 드리고"

    ◀SYN▶ 의사
    "잠깐만 여기가 있으시네요. 주사를 맞을 수 있어서 그래요. 녹일 수 있거든요. 5kg까지 뺄 수 있고"

    약을 처방받으러 온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부작용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SYN▶ 환자
    "부작용 같은 거 없대요. 그 의사분이 직접 아는 분이어서 물어봤는데"

    17개의 병원 가운데 11곳이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물론 간질약 등 식욕억제 효과가 있는 다른 약물과 중복처방을 해줬습니다.

    한 의사는 체지방지수 BMI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취재진에게 약을 처방해주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합니다.

    ◀SYN▶ 의사
    "의사 입장에서 이건 불법이야. 체중 미달인 사람한테 나는 모른 척하고 줘도 되는데 의사 양심상 주면 안 된다고"

    지난 2009년 식약처의 대외비 문건에 따르면,

    영국과 독일 등 주요 5개국에서 이런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는 부작용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판매가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비만치료를 받은 788명의 80%가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았고 이중 37%는 정부의 권고 기간인 한 달을 넘게 약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무분별한 처방을 막을 수 없는 건 약이 모두 비급여이기 때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전산 자료가 남지 않고 식약처도 유통만을 관리해 누가 누구에게 얼만큼을 처방했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SYN▶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
    "처방에 대한 문제는 분명히 중간에 껴 있는 거지 않습니까? 그 부분까지 저희가 컨트롤 하다가 못한 부분 있는 거를 좀.."

    이러다 보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나 식욕억제제를 구할 수 있는 상황.

    심지어 인터넷에선 시중에 판매가 금지된 비만치료제도 버젓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SYN▶
    (약을 좀 구매하고 싶어서요.)
    "사이트 들어오셔서 제품 클릭하시고 주문서 꾸며주시면..."
    (사이버 경찰청이 뜨더라고요.)
    "아, 그게 떠요? 그럼 그쪽으로 들어오지 마시고..."

    좀 더 날씬해지고 싶은 욕구.

    ◀SYN▶
    "저는 솔직히 원망도 많이 돼요. 우리나라 자체가. 살 찌고 뚱뚱하고 소위 과체중이다. 이런 여자는 인간 취급 안 해요"

    ◀SYN▶
    "제가 다이어트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봤거든요. 스스로 단식원까지도 가봤어요. 결국 안 되니까 식욕억제제를 찾아서"

    이런 욕구를 이용해 돈을 버는 일부 병원들.

    ◀INT▶
    "사실 사회적 욕구, 개인적 욕구를 만들어낸 것이죠. 그 욕구를 제약회사가 잘 이용해서 약으로 만들어낸 거고요. 그다음에 환자를 늘리려는 병원의 욕망 이런 게 다 결합돼서..."

    하지만, 먹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무엇보다 먼저 생각 해야 할 건,

    사람의 건강과 목숨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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