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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세금을 피해라!

세금을 피해라!
입력 2013-06-10 09:39 | 수정 2013-06-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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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 피난처 한국인들은 모두 245명..."
    "이수영 OCI 그룹 회장과 그의 부인 김경자..."
    "대한항공 부회장을 지낸 조중건 씨의 부인 이명학 씨도..."
    "SK 전직 임원이 소유한..."
    "그룹 차원에서 이뤄졌을 수 있다고 보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철저하게 비밀에 싸여있던 조세피난처. 그곳에 유령회사를 만든 사람들의 명단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조세피난처, 이곳을 이용해 이뤄지는 이른바 역외탈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쿠바 서쪽 아름다운 카리브해에 있는 케이만제도. 서울의 절반 면적에 4만 5천 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 작은 섬의 1인당 국민소득은 무려 4만 4천 달러. 우리나라의 2배가 넘습니다.

    다국적 기업과 세계적인 부호들에게 조세피난처를 제공하고, 대신 짭짤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입니다.

    이 섬의 수도에 있는 5층 짜리 이 허름한 건물의 이름은 어글랜드 하우스입니다.

    이 건물 한 곳에만 무려 1만8천8백 개의 법인이 주소지를 두고 있습니다.

    코카콜라, 인텔, 델몬트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이 섬에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 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미국 본토의 법인세율은 35%, 반면 케이먼 제도는 세금이 거의 없습니다.

    거대기업들은 이 조세피난처 유령 자회사들에 이익을 몰아주는 수법으로 세금을 줄였습니다.

    ◀SYN▶ 미국 시민단체 탈세반대 시위
    "1천만 달러, 5천만 달러, 1억 달러. 조세회피자들, 숨겨둔 돈을 조국에 돌려 놔라!"

    미국은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이런 거대기업들의 탈세를 정면 공격했습니다.

    ◀SYN▶오바마 미국 대통령
    "이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거나, 아니면 가장 큰 탈세 음모입니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무역대표로 지명한 마이클 프로먼이 이 어글랜드 하우스의 한 법인에 50만 달러를 묻어둔 사실이 폭로됐습니다.

    조세피난처 (Tax Shelter) 세금이 아주 낮거나 아예 없는 나라를 뜻합니다.

    세금도 세금이지만, 더 중요한 건, 돈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철저히 비밀이 보장된다는 점입니다.

    탈세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입니다.

    그 옛날 카리브해 해적들이 무인도에 아무도 모르게 묻은 보물을 소재로 한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처럼, 현대판 보물섬인 셈입니다.

    ◀INT▶ 이유영/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익명성 이런 믿음이 큰 거죠. 세계의 많은 조세피난처가 프로모션할 때 내세우는 것이 그겁니다."

    견고한 금융비밀 시스템이 흔들릴 수 없다.

    조세피난처는 전세계에 80여 곳.

    케이먼제도나 버진아일랜드 같은 작은 섬나라들이 많지만, 벨기에, 스위스, 아일랜드, 홍콩같은 나라들도 조세피난처로 분류됩니다.

    영국 BBC 취재진이 촬영한 몰래 카메라입니다.

    브로커, 이른바 택스 디자이너에게 조세피난처인 파나마에 유령 재단 설립을 의뢰했습니다.

    ◀SYN▶ 택스 디자이너
    "파나마 법에 따라 재단에 대한 모든 정보는 어떤 나라에게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걸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국세청이 다 추적할 힘이 없습니다.

    걸릴 확률이 로또 당첨과 비슷합니다.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SYN▶
    "아무 문제 없이 밤에 잠 잘 자고 싶다면 (자진신고하고) 세금 40% 내세요. 약간 벌칙도 받겠죠. 그게 싫다면 제가 하란대로 하세요.“

    개인 부자들만 고객은 아닙니다.

    애플이나 구글같은 거대기업들도 조세피난처를 이용합니다.

    먼저 애플. 2012년에 해외에서 41조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세금은 8천 억 원, 겨우 1.9%만 냈습니다.

    조세피난처인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 5개를 설립해 이익을 몰아주고 세금을 줄인 겁니다.

    구글은 2011년 한해에만 조세피난처인 버뮤다에 11조 원의 이익을 몰아줬습니다.

    실제 낸 세금은 이익의 2.4%에 불과했습니다.

    스타벅스와 페이스북도 영국에서 이런 수법을 써서 세금을 거의 안 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내부거래를 통해 이익을 조세피난처로 옮기는 수법을 '역외탈세'라고 부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런 식으로 조세회피처에 숨은 돈을 최대 11조 5천억 달러로 추정했습니다.

    미국의 GDP의 80%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역외탈세는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외환은행을 사고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 론스타, 제일은행을 사고 팔아 1조 원 넘게 번 뉴브리지캐피탈, 한미은행으로 이익을 본 칼라일.

    모두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로 이익을 몰아줘 탈세했다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 역시 이익을 해외법인으로 이전시킨 혐의가 드러나 지난해 사상 최대규모인 4,700억 원을 국세청에 추징당했습니다.

    지금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CJ그룹 역시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 2곳이 확인됐습니다.

    ◀INT▶ 황장수/미래경영연구소장
    "과연 그 재벌만 그럴 것인가. 거의 상당수 재벌들이 이런 행태를 해 왔고, 또 안 들키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여태까지 잘 빠져 나갔죠."

    실제로 관세청 집계 결과 2011년 수입대금으로 조세피난처로 나간 돈은 1,317억 달러인데, 실제로 수입 통관된 물품은 429억 달러에 불과합니다.

    889억 달러, 우리돈 103조 원이 조세피난처에서 실종된 겁니다.

    영국에 있는 조세정의네트워크가 1970년 이후 40년 간 전세계 해외도피 자산을 추정했는데, 1등은 1조1,890억 달러인 중국. 2등은 7,980억 달러의 러시아. 그리고 3등이 7,790억 달러의 한국입니다.

    870조원. 우리나라 1년 예산의 2.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반면 지난 5년 간 역외탈세로 추징한 세금은 연평균 5천억 원에 불과합니다.

    역외탈세는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역외탈세와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009년 그리스 재정위기, 2001년 아르헨티나 외환위기, 그리고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의 주범이 역외탈세라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다음주에 런던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의 최대 화두 역시 '역외탈세'입니다.

    ◀SYN▶ 캐머론 영국 총리
    "조세 정보를 공유하는 국제협력 문제를 G-8 회담의 첫번째 의제로 올릴 겁니다.“

    그러나 거대기업들은 '합법적 절세'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SYN▶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꼭 말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글로벌 조세제도입니다.“

    거대기업들이 역외탈세를 '금융기법'으로 포장할 정도로 이미 만연한 겁니다.

    그리고 지난 4월. 국제탐사보도기자협회의 폭로가 터져 나왔습니다.

    시작은 2년 전 호주 기자 제러드 라일이 받은 익명의 소포였습니다.

    내용물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260기가바이트, 500쪽 짜리 50만 권 분량의 문서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13만명이 세운 유령회사 12만개의 자료가 들어 있었습니다.

    다국적 취재진이 구성됐습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영국의 BBC와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일본 아사히신문 등 46개국 언론이 합류했습니다.

    취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대선캠프 재무담당자, 러시아 부총리 부인, 탁신 전 태국총리의 부인, 필리핀 독재자 마르코스의 딸,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 아들이 한꺼번에 폭로됐습니다.

    세계적 은행인 UBS, 도이치방크, 크레딧스위스 등이 연루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극히 일부지만, 절대 비밀의 세계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겁니다.

    ◀INT▶ 제러드 라일/최초 자료입수 기자
    "각국 국세청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습니다. 조세피난처의 세계는 누구도 찾아낼 수 없도록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이 공동취재에 참여했습니다.

    ◀INT▶ 김용진 대표/뉴스타파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 시기에 굉장히 설립이 늘어납니다. 서민들은 국내에서 굉장히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또 더 불리기 위해 이런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는 게 아닌가."

    조세피난처의 한국인들도 잇따라 폭로되면서, 국세청도 뒤늦게 나섰습니다.

    ◀SYN▶ 김영기/국세청 조사국장(5.29)
    "역외탈세를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분야로 지정해 세정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을 탈루한 탈세 혐의자 23명에 대해 일제히 세무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정부가 지하경제의 핵심을 대기업과 부자들의 역외탈세라고 못박은 겁니다.

    그러나 제도적 현실은 다릅니다.

    해외계좌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지만, 우리는 10% 미만의 과태료만 물립니다.

    복지가 화두인 지금, 이 역외탈세만 제대로 찾아내 과세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INT▶ 오건호/글로벌경제연구소
    "사람들이 세금 내는데 주저합니다. 왜냐면 지금 세금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과세정의를 구축하는데 정부당국이 진짜 강하게 나서야 합니다.“

    조세피난처 100년의 이면을 파헤친 '보물섬'의 저자 니콜라스 색슨은 지금의 세계경제를 역외체제라고 부릅니다.

    역외체제는 '민주주의 수준이 계속 떨어지는 과정'이라고 썼습니다.

    공평과세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겁니다.

    역외탈세와의 전쟁. 지금 세계 경제는 새 갈림길을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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