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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반가운 반딧불이

반가운 반딧불이
입력 2013-07-01 09:26 | 수정 2013-07-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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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만 비로소 찾아볼 수 있는 빛이 있습니다.

    가로등도 전깃불도 드물던 시절, 여름밤을 별처럼 수놓았던 희미한 불빛.

    바로 반딧불입니다.

    한때는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어 '개똥벌레'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환경오염으로 서식지가 망가지면서 언제부턴가 점점 눈에 띄지 않게 되더니 이제는 깊은 산속에서나 드물게 볼 수 있을 뿐, 우리 주변에서 거의 사라진 이름이 됐습니다.

    1990년대 초, 전국을 통틀어 열 마리도 채 발견되지 않아,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반딧불이.

    하지만 최근 들어 개체수가 많이 회복됐고, 볼 수 있는 곳도 하나 둘 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온 반딧불이는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요.

    전북 무주에 있는 반딧불이 연구소.

    온도와 습도 변화를 막기 위해 설치된 통제문을 열고 들어선 이곳은 반딧불이 유충을 기르는 사육실입니다.

    애지중지 유충들을 돌보는 사람은 반딧불이에 대해선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김하곤 박사.

    ◀INT▶ 김하곤 박사/무주 농업기술센터
    "고치를 잘 못 만들어가지고 기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자연 상태에서도 마찬가진데 기형이 나오면 기형이 된 반딧불이 애벌레는 다른 개미라든지 개구리 같은 것에게 쉽게 잡혀먹히겠지요"

    자연 상태에서는 무사히 살아남아 성충이 될 가능성이 열에 하나도 안 되지만, 거듭된 연구 끝에 생존율을 다섯 배 이상 높이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토종 반딧불이의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해가 진 뒤, 야생 서식지를 관찰하러 가는 김 박사를 따라나섰습니다.

    ◀SYN▶ 김하곤 박사
    (서식지 근처로 가시면 손전등도 잘 안 켜시나 봐요?)
    "네, 반딧불이는 불빛에 굉장히 민감해요. (달만 떠도) 달빛 아래에서 반딧불이를 관찰하기가 힘들거든요. 가급적이면 손전등을 쓰지 않는 것이 훨씬 더 관찰하기 좋습니다."

    덕유산 자락 계곡 초입에서 반딧불이 무리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반딧불이가 성충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보름 남짓.

    그 안에 다음 세대를 남기기 위해 반딧불이는 이슬 외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짝을 찾는 불빛의 대화에만 몰두합니다.

    이곳저곳에서 희미한 빛을 내뿜다가도, 카메라 조명만 켜지면 풀잎 뒤로 숨어버립니다.

    그래서 반딧불이를 관찰하는 일은 숨바꼭질이나 마찬가지지만,

    ◀SYN▶
    "아 여기 찾았다. 여기 있어요."

    숨죽여 기다리자 하나 둘씩 희미한 불빛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눈부신 빛을 순간적으로 뿜어내는 운문산 반딧불이,

    훨씬 차분하고 은은하게 깜빡거리는 건 애반딧불이의 불빛입니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종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내는 빛도 다릅니다.

    ◀INT▶ 김하곤 박사/무주 농업기술센터
    "어두운 밤에 자기 짝하고 신호를 가장 잘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이 빛이거든요. 빛의 색이라든지 빛을 내는 시간, 반짝거리는 강도라든지 그런 것을 통해서 반딧불이가 서로 자기 암수 간에 짝을 분간해내요."

    그동안 무주 곳곳에서 이렇게 새로 발견한 반딧불이 서식지가 60여 곳.

    서식지가 새로 발견되면 주변 농가의 농약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 보존에 힘쓴 덕에 반딧불이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탐방객이 찾는 무주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INT▶ 조창익 소장/무주 농업기술센터
    "처음엔 하나의 곤충을 살리기 위해서 내 농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그런 농약 사용 같은 것을 자제를 부탁했었습니다. 농가들도 좀 반발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농가들이 많이 협조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서울의 한 생태공원.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자, 수풀 이곳저곳에서 불빛이 새어나옵니다.

    서울 도심에서 반딧불이가 자연 서식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무주 연구소의 자문을 얻어, 9년 동안 노력한 끝에 반딧불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복원해내는 데 성공한 겁니다.

    풀숲에 숨은 반딧불을 찾을 때마다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쏟아집니다.

    ◀SYN▶
    "저 위에, 위에!"
    "보인다."
    "저쪽이야, 저쪽에!"

    부모들도 반딧불이가 낯설고 신기한 건 마찬가집니다.

    ◀INT▶ 박은영(41)
    "저는 태어나길 서울에서 태어나서 사실 얘기만 듣고 동화책에서만 봤지 실제 처음 봤거든요. 트리 반짝반짝이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너무 신기했어요. 예뻤고.."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반딧불이가 살기 적합한 한강변과 생태공원을 중심으로 반딧불이를 인공 방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남산과 도봉산, 여의도 샛강 등에 4천여 마리가 풀렸습니다.

    사람에겐 아름다운 불빛으로 인상을 남기는 반딧불이,

    드러나게 눈에 띄진 않지만 생태계에서도 나름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반딧불이 유충의 주식은 다슬기지만 다른 벌레의 유충이나 물속의 동물 사체도 먹어치움으로써 수질 오염을 막는 청소부 노릇을 하고 자신보다 큰 동물에겐 먹잇감이 됩니다.

    이처럼 생태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생물종이 바로 개구리, 도롱뇽 같은 양서류들.

    ◀SYN▶
    "(만져보니까 느낌이 어때?) 까칠까칠해"

    서울시는 올해 들어서만 올챙이 2만 마리 이상을 공원과 하천 곳곳에 방류하는 등, 반딧불이와 마찬가지로 양서류 복원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 들여, 돈 들여 애지중지 토종 생물들을 키워내는 건, 단순히 재미있고 신기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반딧불이의 빛도,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사라진 대도시 한복판에서, 얼마 전부터 예상할 수 없었던 생태 이변 현상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5년 전 무렵부터 밤마다 서울 강남 일대에 출몰하는 커다란 날벌레 떼.

    불빛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수백, 수천 마리가 떼를 지어 몰려드는 통에 지역 상가들이 장사를 포기할 정도입니다.

    이 날벌레의 정체는 동양하루살이.

    원래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종이었는데, 최근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된 겁니다.

    날파리처럼 작은 진딧물 떼도 갑자기 늘어나 대낮부터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기도 하고,

    야간 경기를 위해 불을 밝힌 야구장에 몰려들어 뜻하지 않게 경기를 방해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SYN▶ 중계 캐스터
    "하루살이들이 또 방해를 하고 있군요."
    "이 친구들(하루살이)이 상당히 사람을 좋아해요."

    치명적인 해를 입히지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벌레들의 습격.

    벌레들이 싫어하는 목초액도 뿌려보고 끈끈이 덫을 설치해보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INT▶ 이수동/성동구 보건소
    "한강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방역 작업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지역에 주로 출몰하는데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이 인체에 유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천 오염이 심각해 아무런 생명이 살 수 없었던 시절보다는 도시 환경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도 모릅니다.

    ◀INT▶ 이승환 교수/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
    "아가미 호흡을 하기 때문에 하루살이는 그 물 속에 용존산소량이 풍부한 상급수에서 살 수밖에 없는 곤충이죠. 좋은 의미로 한강이나 지천들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날벌레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보는 거죠."

    문제는 환경이 깨끗해지면서 생명이 살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됐지만, 생태계의 균형까지 회복된 건 아니었다는 것.

    결국 이렇다 할 천적이 없는 도시 속에서 날벌레들이 아무런 위협 없이 번식하면서,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게 됐다는 겁니다.

    ◀INT▶ 이승환 교수/서울대학교 농생명공학부
    "생태학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이 가해져 있는 거죠. 밸런스가 안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런 건데 곤충은 당연히 어떤 특정한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되게 되면 폭발적인 산란, 번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근본적인 해결책은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사람이 훼손하기 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방법 뿐.

    반딧불이, 개구리처럼 사라진 종들을 다시 우리 곁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개발에 밀려 사라졌던 동식물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불완전한 도시 속 생태계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이상 번식 같은 기현상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거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INT▶ 박병상 소장/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생태계는 수많은 생물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어요. 서로 (역할을) 존중받죠. 먹고 먹힌다고 얘기하는 건 짧은 순간만 바라보는 거고요. 결국은 그것이 생태계에 다양성을 주는 겁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당장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멀리 내다보면 가야할 길입니다.

    ◀INT▶ 오순환 소장/서울동부공원사업소
    "사람 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 식물, 동물을 포함한 생물과 같이 인간이 공존하는 개념이죠. 그런 곳이 보면 사실은 인간도 살기 좋은 곳이죠. 당연히."

    반딧불이가 빛을 내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도, 그 불빛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쌀알 만한 작은 벌레일지라도 제각기 자연의 균형을 지탱하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그 피해는 사람에게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딧불이는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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