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반달곰의 운명은?
반달곰의 운명은?
입력
2013-08-19 09:32
|
수정 2013-08-19 16:39
재생목록
지난 3일, 경기도 용인의 주택가.
어둠 속에서 시커먼 물체가 가까이 접근합니다.
손전등을 비추자 성큼성큼 달아나는 짐승의 정체는 다름아닌 한 살배기 새끼 곰.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그물을 펼치고 포위망을 좁혀나가자 이리 저리 날뛰며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난데없이 민가에 출몰한 이 곰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현장에서 2km 떨어진 한 농장.
반달가슴곰 수십 마리가 우리 안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소란을 피웠던 새끼곰도 이곳에 갇혀 있다가, 한밤 중에 창살을 잡아 뜯고 탈출했던 겁니다.
◀SYN▶ 김무응/농장주
"나는 그냥 얘가 나간 줄은 몰랐죠. 몰랐는데 저 보니까 저기는 상상 외로 그게 굉장히 탄탄하게 용접돼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자린데.."
사람과 악수를 하며 장난을 칠 정도로 영리하고 순한 녀석이지만 앞으로 열 살이 되면 즉시 도살당할 운명입니다.
뱃속의 쓸개, 즉 웅담을 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멸종 위기종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귀한 동물 반달가슴곰.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비좁은 철장에 갇혀 살아가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걸까요.
1980년대 초, 정부는 농가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라며 곰 사육을 권장했습니다.
◀SYN▶ 대한뉴스(1985년)
"특히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 관리에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키울 수가 있습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 등은 국내 수요뿐 아니라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 동물입니다."
정부는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새끼곰 500마리를 수입해 새끼를 쳐서 재수출하기 위한 증식용 동물로 농가에 보급했습니다.
이곳 농장주 역시 정부의 말을 믿고 곰 사육에 뛰어들었다고 말합니다.
◀SYN▶ 김무응/농장주
"이걸 하게 되면 여기서 부가가치 창출되면 할 수 있다고 하는 걸 갖다가, 돈 좀 있었던 걸 (다른 데) 하나도 못 하고 곰에 다 갖다 집어넣었어."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정책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993년 희귀 야생동물의 거래를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원래 계획이었던 해외 수출은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습니다.
농가들이 곰을 들여올 당시만 해도 사육곰은 사슴, 오리와 같은 특수가축으로 분류됐지만, 우리나라가 동물보호 협약에 가입하면서 사육곰의 법적 신분이 야생동물로 바뀌었고, 관할 책임도 농림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됐습니다.
법적으로 야생동물이니 도살을 해서도 안 되고 농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게 된 겁니다.
사육 농가들이 반발하자 절충안으로 약재인 웅담은 팔 수 있다는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지만,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10년 이상 키워야만 도살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사실상 소득이 없어진 사육곰 농가들은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SYN▶ 김무응/농장주
"속은 거죠. 속아서 산 거죠. 정부에 속아서 들러리만 한 거야. 2005년에 110농가가, 곰이 2800마리가 있었어요. 지금 현재 1천 마리가 안 돼요. 9백 몇십 마리 밖에 안 돼요. 다 죽었어. 오십 농가도 안 돼. 돈을 주고 죽였나? 천만에, 하다가 다 쓰러질 때까지 놔 둔거야."
낡고 녹슨 김 씨의 사육장에선 지난 2년 동안에만 곰 탈출 사고가 네 차례나 일어났지만 사료값도 모자라는 형편이라 우리를 고칠 생각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사료값만 해도 1800만 원인데 그렇게 큰 돈을 주고 웅담을 살 사람도 없고, 비싼 가격 때문에 한의사들마저 외면하는 실정입니다.
◀SYN▶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과대학
"세간에서는 웅담이 비싸기 때문에, 아주 고가죠. 그래서 웅담을 먹으면 몸을 보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농가 입장에선 그야말로 밥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된 사육곰.
하지만 말이 야생동물이지 주인이 있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돌봐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충남 당진의 곰 농장.
비좁은 우리 안에 네댓마리 씩 웅크려 있는 반달곰들.
곰 200마리를 세 명이 관리하다보니 먹이는 이틀에 한 번밖에 못 주고 있습니다.
굶주림에 사나워진 곰들은 철장 안에서 서로를 물어뜯으며 싸웁니다.
한쪽 팔이 잘린 놈도 있고 어떤 녀석은 귀가 뜯겨나가는 등 끔찍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쪽 앞발을 잃은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매달린 채 울기 시작합니다.
인근의 다른 소규모 사육장엔 햇볕을 피할 가림막조차 없습니다.
더위에 지쳐 쓰러진 곰이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다른 곰들은 계속해서 고개만 가로젓거나 앞뒤로 움직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나는 이상 행동인데, 사육곰 열 마리 중 한 마리가 이런 상태입니다.
농가들은 키워야 할 이유도 없고 키울 여건도 안 되니, 차라리 곰을 인수해 가라고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SYN▶ 김광수
"정부 정책에 따르겠다. 우리가 이걸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야생동물이고 보호동물인데 멸종위기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걸 좁은 공간에다 놓고 이걸 고통 속에서 쟤들을 키우는 걸 우리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번엔 환경부가 난색을 표했습니다.
곰이 희귀 야생동물이긴 하지만 사육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겁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공원 종복원센터.
지난 2004년부터 10년 째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정착시키기 위한 방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 스물 일곱 마리의 반달곰들이 지리산에 터를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던 우리나라 토종 곰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게 됐다는 겁니다.
센터 뒷편 훈련장엔 자연에 나갈 준비를 하거나, 적응이 힘들어진 곰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는 열 살배기 반달가슴곰의 이름은 재석이.
2005년 지리산에 방사됐다가 밀렵꾼의 올무에 걸려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순 없는 몸이 됐지만, 올해 태어난 새끼들은 두 달 뒤 아비 대신 지리산에 방사될 예정입니다.
반면 장가도 못간 채 혼자 사는 놈도 있습니다.
2001년 최초로 시험 방사돼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반돌이.
적응에 실패해 결국 이곳에 돌아온 반돌이는 한번도 짝짓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순수 토종 혈통이 아니라 사육곰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달가슴곰은 서식지에 따라 7가지 종으로 나뉘는데 이중 우리나라를 비롯해 만주와 연해주 지방에 서식하는 토종은 우수리 종.
생김새는 다들 비슷하지만 반돌이 같은 사육곰 출신은 토종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대접을 받을 순 없다는 겁니다.
◀SYN▶ 이배근/국립공원관리공단
"야생 자연 적응 방사 룰이 있는데 실제 그 지역의 고유 혈통을 갖고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정말 얘가 우리 고유 혈통이냐 하니냐가 1차 판별 되어야 그런 애들을 우리가 원종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자연에 방사를 할 수 있는 거죠."
반달가슴곰 새끼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애지중지 소중히 관리하는 종복원 센터 측이 사육곰 천 마리를 준다 해도 마다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실 토종 곰이라고 해도 사육곰처럼 외국에서 들여온 건 마찬가지지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친자 확인 검사처럼 곰의 DNA를 하나 하나 분석해 족보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SYN▶ 장경희/국립공원관리공단
"외형적 분류 만으로는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정확하게 어떤 아종인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유전자 분석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뜻하지 않은 발견이 이뤄졌습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사육곰 실태조사 결과, 일부 사육곰에게서 토종 우수리곰과 같은 유전자 특성이 나타난 겁니다.
결국 환경부는 천 마리 사육곰 모두를 대상으로 유전자 조사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토존 반달곰 복원사업을 하고 있는 마당에, 사육곰 중에 토종 혈통이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진다면, 무조건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펼치기도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SYN▶김영식/환경부
"저희가 종 복원사업 하는 건 외래종보다도 현재 우리 토종이나 이런 우선 종이기 때문에 그런 종으로 우선가치가 있는 부분이 혹시 있는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 등급을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상황을 바꿔 놓은 주인공은 전남 담양의 곰 사육 농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철장 안에서 가축처럼 살아온 반달곰 보담이.
어미가 토종곰이었다는 사실이 유전자 검사 결과 드러나면서 한 순간에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었지만 열 살이 넘었기 때문에 내일 당장 도살당한다 해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웅담 채취를 위해 도살할 것인지, 아니면 천연기념물로 대우할 것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곰의 족보를 따져봐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
애초에 이렇게 모순적인 정책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SYN▶ 윤창훈/녹색연합
"지리산에 복원되는 반달가슴곰, 야생 곰이나 사육장에 있는 사육곰이나 똑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라는 그런 인식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얘들도 얘들 갈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웅담을 위한 곰 사육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뿐입니다.
우리 나라의 열 배인 1만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중국에서도 곰 사육 폐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 있는 곰 보호센터.
배에 고무관이 박혀 산채로 쓸개즙을 뽑혀 오던 곰들은 이곳에서 처음 맛보는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지방 정부와 동물보호단체가 힘을 합쳐 지금까지 모두 500여 마리의 학대받는 사육곰을 인수했습니다.
곰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잔혹한 동물학대의 흔적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취집니다.
반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우리나라엔 국제 환경단체와 동물보호 단체의 성토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습니다.
◀SYN▶ 루크 니콜슨/세계동물보호협회
"지금 국제사회는 잔인한 곰 사육을 종식시키는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음달 곰사육 폐지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입니다.
남아 있는 사육곰들에 대해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농가도 죽고, 곰도 죽게 만든 정책을 30년 넘게 끌어온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대가인지도 모릅니다.
어둠 속에서 시커먼 물체가 가까이 접근합니다.
손전등을 비추자 성큼성큼 달아나는 짐승의 정체는 다름아닌 한 살배기 새끼 곰.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그물을 펼치고 포위망을 좁혀나가자 이리 저리 날뛰며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난데없이 민가에 출몰한 이 곰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현장에서 2km 떨어진 한 농장.
반달가슴곰 수십 마리가 우리 안에서 사육되고 있습니다.
소란을 피웠던 새끼곰도 이곳에 갇혀 있다가, 한밤 중에 창살을 잡아 뜯고 탈출했던 겁니다.
◀SYN▶ 김무응/농장주
"나는 그냥 얘가 나간 줄은 몰랐죠. 몰랐는데 저 보니까 저기는 상상 외로 그게 굉장히 탄탄하게 용접돼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자린데.."
사람과 악수를 하며 장난을 칠 정도로 영리하고 순한 녀석이지만 앞으로 열 살이 되면 즉시 도살당할 운명입니다.
뱃속의 쓸개, 즉 웅담을 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제적인 멸종 위기종이자,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귀한 동물 반달가슴곰.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비좁은 철장에 갇혀 살아가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된 걸까요.
1980년대 초, 정부는 농가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라며 곰 사육을 권장했습니다.
◀SYN▶ 대한뉴스(1985년)
"특히 곰은 잡식성 동물로 안전 관리에만 유의하면 병 없이 쉽게 키울 수가 있습니다"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 등은 국내 수요뿐 아니라 수입 대체 효과도 얻을 수 있는 사육 가능한 야생 동물입니다."
정부는 일본과 동남아 등에서 새끼곰 500마리를 수입해 새끼를 쳐서 재수출하기 위한 증식용 동물로 농가에 보급했습니다.
이곳 농장주 역시 정부의 말을 믿고 곰 사육에 뛰어들었다고 말합니다.
◀SYN▶ 김무응/농장주
"이걸 하게 되면 여기서 부가가치 창출되면 할 수 있다고 하는 걸 갖다가, 돈 좀 있었던 걸 (다른 데) 하나도 못 하고 곰에 다 갖다 집어넣었어."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정책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993년 희귀 야생동물의 거래를 금지하는 국제 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원래 계획이었던 해외 수출은 불가능한 일이 돼 버렸습니다.
농가들이 곰을 들여올 당시만 해도 사육곰은 사슴, 오리와 같은 특수가축으로 분류됐지만, 우리나라가 동물보호 협약에 가입하면서 사육곰의 법적 신분이 야생동물로 바뀌었고, 관할 책임도 농림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됐습니다.
법적으로 야생동물이니 도살을 해서도 안 되고 농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게 된 겁니다.
사육 농가들이 반발하자 절충안으로 약재인 웅담은 팔 수 있다는 조항이 새로 만들어졌지만, 국내외 여론을 의식해 10년 이상 키워야만 도살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사실상 소득이 없어진 사육곰 농가들은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SYN▶ 김무응/농장주
"속은 거죠. 속아서 산 거죠. 정부에 속아서 들러리만 한 거야. 2005년에 110농가가, 곰이 2800마리가 있었어요. 지금 현재 1천 마리가 안 돼요. 9백 몇십 마리 밖에 안 돼요. 다 죽었어. 오십 농가도 안 돼. 돈을 주고 죽였나? 천만에, 하다가 다 쓰러질 때까지 놔 둔거야."
낡고 녹슨 김 씨의 사육장에선 지난 2년 동안에만 곰 탈출 사고가 네 차례나 일어났지만 사료값도 모자라는 형편이라 우리를 고칠 생각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이면 사료값만 해도 1800만 원인데 그렇게 큰 돈을 주고 웅담을 살 사람도 없고, 비싼 가격 때문에 한의사들마저 외면하는 실정입니다.
◀SYN▶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과대학
"세간에서는 웅담이 비싸기 때문에, 아주 고가죠. 그래서 웅담을 먹으면 몸을 보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농가 입장에선 그야말로 밥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된 사육곰.
하지만 말이 야생동물이지 주인이 있는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나라에서 돌봐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충남 당진의 곰 농장.
비좁은 우리 안에 네댓마리 씩 웅크려 있는 반달곰들.
곰 200마리를 세 명이 관리하다보니 먹이는 이틀에 한 번밖에 못 주고 있습니다.
굶주림에 사나워진 곰들은 철장 안에서 서로를 물어뜯으며 싸웁니다.
한쪽 팔이 잘린 놈도 있고 어떤 녀석은 귀가 뜯겨나가는 등 끔찍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한쪽 앞발을 잃은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매달린 채 울기 시작합니다.
인근의 다른 소규모 사육장엔 햇볕을 피할 가림막조차 없습니다.
더위에 지쳐 쓰러진 곰이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다른 곰들은 계속해서 고개만 가로젓거나 앞뒤로 움직이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나는 이상 행동인데, 사육곰 열 마리 중 한 마리가 이런 상태입니다.
농가들은 키워야 할 이유도 없고 키울 여건도 안 되니, 차라리 곰을 인수해 가라고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SYN▶ 김광수
"정부 정책에 따르겠다. 우리가 이걸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야생동물이고 보호동물인데 멸종위기 동물이라고 하는데, 이걸 좁은 공간에다 놓고 이걸 고통 속에서 쟤들을 키우는 걸 우리도 더 이상 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번엔 환경부가 난색을 표했습니다.
곰이 희귀 야생동물이긴 하지만 사육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는 겁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국립공원 종복원센터.
지난 2004년부터 10년 째 반달가슴곰을 지리산에 정착시키기 위한 방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현재 스물 일곱 마리의 반달곰들이 지리산에 터를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실상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던 우리나라 토종 곰의 명맥이 다시 이어지게 됐다는 겁니다.
센터 뒷편 훈련장엔 자연에 나갈 준비를 하거나, 적응이 힘들어진 곰들이 살고 있습니다.
고무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는 열 살배기 반달가슴곰의 이름은 재석이.
2005년 지리산에 방사됐다가 밀렵꾼의 올무에 걸려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순 없는 몸이 됐지만, 올해 태어난 새끼들은 두 달 뒤 아비 대신 지리산에 방사될 예정입니다.
반면 장가도 못간 채 혼자 사는 놈도 있습니다.
2001년 최초로 시험 방사돼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반돌이.
적응에 실패해 결국 이곳에 돌아온 반돌이는 한번도 짝짓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순수 토종 혈통이 아니라 사육곰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달가슴곰은 서식지에 따라 7가지 종으로 나뉘는데 이중 우리나라를 비롯해 만주와 연해주 지방에 서식하는 토종은 우수리 종.
생김새는 다들 비슷하지만 반돌이 같은 사육곰 출신은 토종 혈통이 아니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대접을 받을 순 없다는 겁니다.
◀SYN▶ 이배근/국립공원관리공단
"야생 자연 적응 방사 룰이 있는데 실제 그 지역의 고유 혈통을 갖고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정말 얘가 우리 고유 혈통이냐 하니냐가 1차 판별 되어야 그런 애들을 우리가 원종으로서 가치를 가지고 자연에 방사를 할 수 있는 거죠."
반달가슴곰 새끼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애지중지 소중히 관리하는 종복원 센터 측이 사육곰 천 마리를 준다 해도 마다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실 토종 곰이라고 해도 사육곰처럼 외국에서 들여온 건 마찬가지지만,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친자 확인 검사처럼 곰의 DNA를 하나 하나 분석해 족보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SYN▶ 장경희/국립공원관리공단
"외형적 분류 만으로는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 정확하게 어떤 아종인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유전자 분석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뜻하지 않은 발견이 이뤄졌습니다.
3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사육곰 실태조사 결과, 일부 사육곰에게서 토종 우수리곰과 같은 유전자 특성이 나타난 겁니다.
결국 환경부는 천 마리 사육곰 모두를 대상으로 유전자 조사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토존 반달곰 복원사업을 하고 있는 마당에, 사육곰 중에 토종 혈통이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진다면, 무조건 씨를 말리는 정책을 펼치기도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SYN▶김영식/환경부
"저희가 종 복원사업 하는 건 외래종보다도 현재 우리 토종이나 이런 우선 종이기 때문에 그런 종으로 우선가치가 있는 부분이 혹시 있는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 등급을 나눠볼 수 있겠습니다."
상황을 바꿔 놓은 주인공은 전남 담양의 곰 사육 농가에서 태어나 평생을 철장 안에서 가축처럼 살아온 반달곰 보담이.
어미가 토종곰이었다는 사실이 유전자 검사 결과 드러나면서 한 순간에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었지만 열 살이 넘었기 때문에 내일 당장 도살당한다 해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웅담 채취를 위해 도살할 것인지, 아니면 천연기념물로 대우할 것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곰의 족보를 따져봐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
애초에 이렇게 모순적인 정책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SYN▶ 윤창훈/녹색연합
"지리산에 복원되는 반달가슴곰, 야생 곰이나 사육장에 있는 사육곰이나 똑같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라는 그런 인식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얘들도 얘들 갈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웅담을 위한 곰 사육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 뿐입니다.
우리 나라의 열 배인 1만여 마리를 기르고 있는 중국에서도 곰 사육 폐지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에 있는 곰 보호센터.
배에 고무관이 박혀 산채로 쓸개즙을 뽑혀 오던 곰들은 이곳에서 처음 맛보는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지방 정부와 동물보호단체가 힘을 합쳐 지금까지 모두 500여 마리의 학대받는 사육곰을 인수했습니다.
곰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잔혹한 동물학대의 흔적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취집니다.
반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우리나라엔 국제 환경단체와 동물보호 단체의 성토가 잇따라 쏟아지고 있습니다.
◀SYN▶ 루크 니콜슨/세계동물보호협회
"지금 국제사회는 잔인한 곰 사육을 종식시키는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음달 곰사육 폐지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입니다.
남아 있는 사육곰들에 대해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지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농가도 죽고, 곰도 죽게 만든 정책을 30년 넘게 끌어온 데 따른 어쩔 수 없는 대가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