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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택시에 치여 나뒹굴었는데…아버지는 왜 현수막을 걸어야 했나?

택시에 치여 나뒹굴었는데…아버지는 왜 현수막을 걸어야 했나?
입력 2013-08-26 09:33 | 수정 2013-08-2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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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대학생 현수 씨가 여자친구와 함께 시내버스에서 내립니다.

    밤이 늦어 여자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려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SYN▶
    "저랑 여자친구랑 손잡고 초록 불인 걸 확인하자마자 뛰었어요. 뛰어가다가 거의 다 왔다 싶었는데…."

    바로 그때 택시 한 대가 달려오더니 두 사람을 한꺼번에 들이받았습니다.

    둘은 바닥에 나뒹굴었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현수 씨는 무릎과 골반 뼈에 금이 갔고, 뇌출혈에, 한때 단기 기억상실증까지 생겼습니다.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뇌의 전두엽 부위까지 손상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INT▶ 현수
    "사고 난 후로 화가 많이 나고 그런 게 조절이 많이 안 돼서 부모님들 이랑도 막 갑자기 화나고 그래서 싸우고 그런 일이 많아서요. 약 먹고 정신과 치료받고 있어요."

    여자친구는 얼굴에서 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INT▶ 현수
    "얼굴이...50바늘을 꿰맸다고 하더라고요. 이마랑 이런 데가 좀 흉터가 많이 남았더라고요."

    그러던 보름 뒤.

    가족들은 담당 경찰관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고 책임이 택시 기사가 아니라 현수 씨와 여자 친구에게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빨간 신호에 횡단보도가 아닌 곳으로 무단 횡단했다는 겁니다.

    경찰은 뜻밖에 목격자도 있다고 했습니다.

    ◀INT▶ 경찰
    "거기 앞에서 횡단보도 신호 기다리고 있었대요. 근데 학생 2명이 신호위반하고 이렇게 걸어오더래요. 왜 저러나. 그런 생각하고 있는데 사고가 확 났다는 거죠. 그게 다예요."

    횡단보도 위에서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던 택시기사도 목격자가 나타나자 말을 바꿨습니다.

    ◀INT▶ 택시기사
    "예 오해하진 마세요. 제가 횡단보도 상으로 얘기한 거는 그 반경을 저는 횡단보도로 봤어요. 저는 그 건너는 데 말고 그 주변을 다 횡단보도 상으로 본 거죠."

    경찰도 택시기사와 목격자의 진술을 믿고, 이미 결론을 낸 것 같은 태도를 보였습니다.

    ◀SYN▶ 경찰
    "XX씨도 다치고 그러셔서 아버님 심경은 알아요. 아는데, 제가 택시기사 편드는 게 아니고 목격자 없으면 이 택시기사도 억울할 뻔했어요."

    현수 씨 가족은 너무 억울해 뒤늦게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다행히 목격자를 여럿 찾아냈습니다.

    119에 처음 신고했던 여성 목격자는 학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신호등은 확실히 초록 불이었다고 증언합니다.

    ◀INT▶ 목격자 이지나
    "건널 때는 녹색불이었는데 그게 깜빡였는지 아니면 계속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사고 나서 깜빡깜빡 거리는 건 봤다는 거죠."
    (사고 난 다음에?)
    "네."
    (왜 봤어요? 신호등을?)
    "제가 여기서 바로 보여요. 저도 모르게 신호를 본 것 같아요."

    또 다른 목격자 진술도 같습니다.

    ◀INT▶ 목격자 이XX
    "그때 저는 반대편 횡단 보도 신호등을 보았는데 파란불이 깜빡이고 있었고, 누군가가 횡단 보도 중간쯤을 건너고 있었는데 택시가 아주 빨리 지나갔고…."

    파란 신호등이었다는 목격자가 3명이나 나왔지만, 경찰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INT▶ 현수씨
    "처음에 수사하던 경찰분도 굉장히 편파적으로 수사를 하셨어요. 보면 이런 일이 저희한테만 일어난 게 아니라 비일비재할 거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

    보다 못한 현수 씨의 아버지는 직접 증거를 찾아 나섰습니다.

    우선 사고 추정 시간에 사고현장에 나가 횡단 보도 신호가 바뀌는 시간을 매일 밤 측정하고, 캠코더로 일일이 촬영했습니다.

    빨간 불이 1분 40초, 파란불이 35초 동안 반복적으로 켜졌다 꺼졌습니다.

    ◀SYN▶ 현수 씨 아버지
    "보행자 신호는 정확히 11시 41분 54.5초에 들어오고요. 11시 42분 29.5초에 빨간 불로 바뀝니다. (매일 똑같나요?) 매일 똑같습니다. (그럼 사고 시각만 정확히 알면 그때 보행자 신호가 뭐였는지 확인할 수 있겠네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현수 씨 아버지는 사고 발생 시각도 정확히 알아냈다고 말합니다.

    사고 택시엔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었지만 택시기사는 메모리 카드가 없었다고 진술했고, 사고 현장엔 CCTV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 CCTV를 찾아냈습니다.

    다행히 이 영상엔 사고 직전 택시의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CCTV에 찍힌 시각은 밤 11시 53분 13초.

    그런데 CCTV는 실제 시각보다 10분 48초 더 이른 시각으로 설정돼 있었고, 따라서 택시가 CCTV에 찍힌 시각은 밤 11시 42분 25초.

    ◀SYN▶
    "CCTV 시간은 자체적으로 RTC가 돌아갑니다. RTC는 리얼 타임 클락이라고 해서 CCTV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 있거든요."

    이 택시는 CCTV에 찍힌 뒤 27미터 앞 횡단보도 부근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만약 택시의 속도가 시속 60km 일 때 횡단 보도까지 1.5초가 걸리고, 시속 30km였다면 3초가 걸립니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들어온 건 택시가 CCTV에 찍힌 뒤 4.5초 뒤니까 택시가 시속 20km 이하로 천천히 달리지만 않았다면, 사고 당시 횡당보도 신호등은 초록불이 맞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현수 씨 아버지는 실제 사고 택시 속도가 시속 6~70km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우선 CCTV에 찍힌 버스의 속도를 계산해 냈는데, 시속 18km였습니다.

    ◀INT▶ 현수 씨 아버지
    "택시가 지나가기 바로 전에 버스가 지나갑니다. 버스의 길이도 알고 있고 느리게 지나갔기 때문에 1초에 몇 장이 찍혔는지도 다 구할 수 있거든요."

    이 버스는 모두 4프레임이 CCTV에 찍혔는데, 사고 택시는 단 1프레임만 찍혔습니다.

    버스보다 택시가 4배 빨랐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택시의 속도는 시속 72km.

    실제로 사고 당시 택시는 앞유리가 깨졌는데, 보행자가 유리에 부딪쳤다는 건 시속 50km가 넘을 때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INT ▶ 이계두 원장/교통사고 감정사
    "보통 실험에 의하든지 아니면 국내외 보행자교통사고 보면 50km 이상은 좀 넘는다고 보거든요. 앞 유리창 두부 충격은."

    그렇다면, 무단횡단이라고 했던 목격자는 어떻게 된 걸까?

    현수 씨 아버지는 아파트 CCTV에서 사고 직전 이 여성 목격자의 모습을 찾아내 걷는 속도를 계산했습니다.

    초당 1.04미터.

    이 속도로는 횡단보도에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횡단보도에 서서 사고를 목격했다는 진술이 허위진술일 수 있다는 겁니다.

    ◀INT▶ 현수 씨 아버지
    "그런데 본인이 (걸어) 가시고 있는 상황하고 서서 기다리면서 빨간 불 보고 있는 상황하고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 상황을 착각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 여성 바로 뒤에 있던 남성 목격자도 현수 씨 아버지의 계산이 맞다고 진술했습니다.

    ◀SYN▶ 목격자
    "아파트 샛문을 통해 인도로 내려섰을 때 당시 옆에 가로수 정도를 지나고 있었고, 그 아주머니는 저보다 3~4미터 앞서 버스 정류장 표지판 옆 정도를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현수 씨 아버지는 한 달 동안 스스로 조사한 결과를 100페이지가 넘는 책자로 만들어, 경찰에 보냈습니다.

    경찰이 할 일을 사고 당사자 가족이 대신할 수 있었던 건 현수 씨 아버지가 교통사고 분석에 조예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전자공학과 교수인 현수 씨 아버지는 최근 국방 과학 연구소의 의뢰를 받아 교통흐름을 이용한 블랙박스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INT▶ 현수 씨 아버지
    "그냥 블랙박스가 아니라 사고 판정 알고리즘이 들어 있는 블랙박스였거든요. 사고에 대한 메카니즘을 상당부분 이해를 하고 있었죠."

    현수 씨 아버지는 조사한 내용을 근거로, 담당 경찰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고, 현재 재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만약 이런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INT▶ 변동섭 본부장/교통사고 감정사
    "경찰의 조사가 공정성을 100% 기대하는 건 당사자로서는 위험합니다. 경찰은 우선 처벌할 사람에 대한 근거만 어느 정도 확보하고 처벌하는 관점이기 때문에 전체 교통사고를 이해하는 관점에서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할 때 도로교통공단에 사고 감정을 맡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감정 결과는 믿을 만할까요?

    작년 12월. 서울 동부간선도로.

    나란히 가던 5톤 트럭과 승용차가 서로 부딪칩니다.

    이 충격으로 승용차는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멈췄지만, 트럭은 중앙분리대를 뚫고 반대편 도로를 넘어가 마주 오던 또 다른 트럭과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반대쪽에서 달려오던 트럭의 운전자가 숨졌습니다.

    사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릴 때 가장 중요한 건 충돌 지점을 찾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타이어 자국에 주목합니다.

    승용차 타이어가 1차로에서 오른쪽 2차로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왼쪽으로 꺾이는 곳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변곡점.

    사고 충격 때문에 차량 방향이 급격히 꺾이는 점, 즉 충돌이 발생한 곳입니다.

    ◀INT▶ 교통사고 감정사
    "(이 정도면 사람이 그냥 꺾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거는 못 꺾습니다. 진하기도 하고 넓어지면서 진한 건 하중이 작용했다는 거거든요. 충돌할 때나."

    승용차가 차선을 무리하게 바꾸다 사고를 냈다는 뜻입니다.

    ◀INT▶ 교통사고 감정사
    "저 충격지점만 나오면 1차로에서 3차로로 대각으로 왔기 때문에 다툼이 되지 않는 사고입니다. 한 마디로."

    하지만, 이 사고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는 승용차가 진로를 이탈해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했지만, 도로교통공단 본부는 오히려 트럭의 잘못으로 감정한 겁니다.

    한 사건을 놓고, 그것도 같은 공단 내에서 감정 결과가 오락가락하면서, 사고 감정에 대한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어이없는 감정들은 더 있습니다.

    지방의 한 한적한 시골길.

    멀리서 커브길에 진입하던 승용차와 마주 오던 트럭이 충돌합니다.

    이 사고로 승용차 운전자가 숨졌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

    CCTV를 자세히 보면 트럭의 오른쪽 바퀴는 바깥쪽 차선을 밟으면서 운행합니다.

    ◀SYN▶ 사고 트럭 차주
    "처음엔 CCTV 확인하고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유족에겐 죄송하지만, 저희 입장에선 다행이었죠."

    도로폭은 2.5미터.

    트럭의 차 폭은 그보다 좁습니다.

    타이어 흔적으로 본 실제 충돌 위치도 중앙선에서 95cm나 안쪽에 있습니다.

    트럭이 중앙선 근처에도 안 간 겁니다.

    그런데도 도로교통공단은 트럭이 중앙선을 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INT▶ 교통사고 감정사
    "도로교통공단은 가장 중요한 충돌 순간 차량의 바퀴 위치가 가장 중요하고 정확한 위치인데, 그 타이어 흔적이 명확히 나와 있음에도. 이 사고는 참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재판부는 사흘 전 열린 항소심에서 공단의 감정에 오류가 있다며 트럭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뒤늦게 혐의를 벗긴 했지만, 이 운전자는 잘못된 공단의 감정 때문에 1년 넘게 피해를 봐야 했습니다.

    ◀INT▶ 사고 트럭 차주
    "저희야 물증이라도 있으니까 억울한 누명이라도 벗었지. 물증 없는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경찰의 교통 사고 조사는 과학적인 감정보다 목격자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의 사고 감정도 100% 완벽할 순 없습니다.

    경찰 조사가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땐 각 지방경찰청 감사 담당관실에 이의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를 뒤집을 만한 명확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결국, 사고 당사자가 스스로 경찰 대신 증거를 찾아나서야 하는 현실….

    누구도 교통사고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뒤바뀌어, 억울한 누명과 책임을 떠안고,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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