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이호찬 기자
이호찬 기자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우고?'…참극의 '워킹 홀리데이'
'돈도 벌고 영어도 배우고?'…참극의 '워킹 홀리데이'
입력
2013-12-23 09:39
|
수정 2013-12-2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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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경험, 돈 세 가지 토끼를 잡는다던 '워킹 홀리데이'가 불안합니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인이 한 달 새 두 명이나 살해됐습니다.
한 명은 이른 새벽 청소일을 하러 나가다 낯선 호주인에게 살해됐고, 또 한 명은 귀국을 앞두고 2년간 모은 돈을 환전하러 나갔다가 같은 한국인 '워홀러(워킹 홀리데이 참가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현지 취재 결과, 워홀러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이거나 농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는 것으로 영어와는 거의 무관한 일이었고, 청소 등의 일을 할 경우 근무시간도 한밤중이나 새벽으로 치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도전과 낭만으로 인식돼온 워킹 홀리데이를 현지 진단했습니다.
=============================
◀SYN▶ 호주 현지 방송
“경찰이 실종됐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찾았습니다.”
◀SYN▶ 주민
“이 조용한 동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충격이에요.”
◀SYN▶주민
“대체 이런 일이.. 정말 충격이에요.”
지난 19일, 호주 브리즈번의 한 주택가뒷마당에서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28살 한국인 김모 씨.
◀SYN▶ 로드 캠프/호주 퀸즐랜드주 경찰
“그는 상당한 돈을 모았고, 다음 달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환전을 하려 했다는(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지 2년이 된 김 씨는 다음달 귀국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농장과 육가공 공장 등에서 일하며 힘들게 모아놨던 호주 돈 1만 5천 달러.
김 씨는 1,500만 원 가량의 이 돈을 한국 돈으로 환전하기 위해 호주 한국인 사이트 등 여러 곳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글을 남겼습니다.
환전 수수료라도 아껴보겠단 마음이었습니다.
◀SYN▶ 故 김00 친구
“여기서 하면 환율을 쳐주고 수수료를 안 떼니까 사람끼리 하면 수수료를 안 떼거든요. 그래서 아마 했던 것 같아요.”
지난 16일 낮, 이 광고를 보고 한 남성이 김 씨의 집을 찾아왔고, 이 남성을 만나러 나간 김 씨는 그날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SYN▶ 故 김00 친구
“(환전하러 온) 이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가자고 한다. 어떻게 해야 되냐. 그래가지고 이상하다 가지 마라 (라고 했더니) 알겠어요. 나가서 안 한다고 얘기 할게요 하고 나가서 그대로 없어진 거죠.”
결국 김 씨는 실종 사흘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용의자는 28살 한국인 황모 씨.
황 씨 역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8개월 전 호주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황 씨는 환전을 해주겠다며 김 씨를 차에 태운 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집 뒷마당으로 데리고 가 살해했습니다.
황 씨의 현지 지인은 황 씨가 평소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며, 도박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SYN▶ 황 00(용의자) 지인/브리즈번
“돈이 없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일하고 있는 게 없으니까 돈이 없죠. (도박 이런 거에 빠져 있었나요?) 옛날에 카지노는 자주 갔다고 들었어요. 같이 밥 먹을 때도 맨날 카드 가져와서 카드 막 보고...”
◀SYN▶ 조강원/주 시드니총영사관 경찰영사
“일단은 금품을 목적으로 한 것은 전달받았고요. 단독범행으로 자백도 했고..”
영국 음악학교 진학을 꿈꾸며, 호주에서의 힘든 노동을 견뎌냈던 김 씨.
그의 방 한 구석엔 애지중지하던 기타 한 대가 놓여 있고, 그의 페이스북에는, 석 달 전 미리 끊어 놓은 한국행 비행기 표 사진이 담겨 있었습니다.
불과 3주 사이 호주 브리즈번에서만 킹홀리데이에 참가했던 한국인 남녀 젊은이 2명이 잇따라 피살됐습니다.
청년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해외 취업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워킹홀리데이 제도가 그 안전망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세 번 로 큰 도시인 퀸즐랜드주의 주도, 브리즈번.
시내 곳곳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자축하는 대형 트리와 각종 장식들이 만들어졌고, 북적이는 사람들 속으로 산타 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이 시내 중심가와 바로 맞닿아 있는 공원 안에서 얼마전 한국인 여대생 반모 양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반 양은 지난달 24일 새벽, 청소 일을 위해 혼자 집을 나서 길을 걷던 중, 괴한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숨졌습니다.
반 양이 처음 범인을 맞닥뜨리고 폭행을 당했던 공원 건너편 인도.
사건 당시의 상황을 표시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SYN▶ 김권철/브리즈번 교민
“(반 양이 청소하러)호텔을 가기 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이 길을 지나가야 되는데 여기서 사고가 있고, 지나가는 보행자가 일단 사건 현장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충격과 불안감이 남아 있습니다.
◀SYN▶ 이메진/인근 주민
“정말 무섭고 끔찍한 일이에요. 정말 슬프고요.”
◀SYN▶ 캐슬린/인근 주민
“여기 근처 살아서 굉장히 충격적이고 슬펐어요. 밤에도 안전은 하지만 저는 항상 제 남편과 같이 다녀요.”
사건 현장에서 불과 몇 백미터 떨어진 반 양의 아파트.
시내와 가까워 한국인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SYN▶ 인근 주민
“(워킹홀리데이로 온)한국 분들이 꽤 있으세요. 청소뿐이 아니고 스시 숍에서 일하는 분들은 일찍 출근하시니까. 많이 다니세요. 새벽에 일하시는 분들..”
한가로운 주택가의 모습.
사건이 벌어졌던 이른 새벽 시간엔 어떨까?
2580은 이른 새벽 이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금 시각이 이 곳 시각으로 새벽 4시입니다. 반 양은 새벽 청소를 위해 이 시각에 집을 나와 길을 나섰습니다.
아파트의 불은 대부분 꺼져 있는 새벽.
해가 일찍 뜨는 탓에 아주 깜깜하진 않지만, 사건 장소까지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SYN▶ 인근 주민
“밤에 약간 솔직히 저녁에 좀 어둡긴 해요. 여자분들이 다니기에는 약간 위험하지 않나.”..
◀SYN▶ 故 반00 친구
“제가 밤에 안 무섭냐고 그랬더니 생각보다 새벽에 밝고 괜찮다고 하더라고요...항상 웃는 모습이고 힘들다고 내색하는 것도 전혀 없고..”
반 양이 새벽 청소일을 했던 호텔.
호주 규정상 이름은 호텔로 돼 있지만, 한국의 대형 호프집 같은 곳입니다.
지난 10월 호주에 온 반 양은 이 곳에서 새벽 청소일을 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출근 도중 변을 당한 겁니다.
◀SYN▶ 故 반00 친구
“처음에는 식당일 구하는데 잘 안 구해지고, 그 다음에 청소일 구하게 된 거거든요. 생각보다 생활비도 많이 들고 하니까 워킹 온 사람들이 다 그런 게 일정금액 이상이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하잖아요.”
◀SYN▶청소 용역업체 관계자
“00 양이 집이 가깝다 보니까 자기가 했으면 좋겠다. 차를 안 몰아도 되고 .. 여기는 사람이 있을 때 청소를 하게 되면 업장에서 원치를 않아요. (그래서 새벽에 하는 거죠)”
피의자는 19살 호주 청년.
어릴 적부터 자신이 커서 '살인자'가 될 것이라 믿어왔다던 이 청년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 만나는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SYN▶ 톰 아미트/호주 퀸즐랜드주 경찰
“그녀가 잘못된 시각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혼자 였고, 왜소했고,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범행을 저지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혐오 범죄가 아니냐는 질문에 현지 경찰은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SYN▶ 톰 아미트/호주 퀸즐랜드주 경찰
“동기를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인종 차별에 대해 물었을 때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
며칠 전 법원은 이 청년에 대한 형사 재판을 중단하고, 3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해 먼저 정신 감정을 받도록 명령했습니다.
◀SYN▶ 이종일 변호사/호주 브리즈번
“(변호인측이) 그 (사건) 당시에 정신질환으로 인해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걸 시사하는 거죠. 정신질환 감정을 신청했기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는 19살부터 30살까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외국에서 일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관광 취업비자' 제도입니다.
지난 1995년부터 시행됐지만, 워킹홀리데이 참가자가 현지에서 피살된 건 이번 두 사례가 처음입니다.
그러나 폭행이나 절도, 사기, 각종 안전사고 등은 정부가 파악한 걸로만 해마다 100여 건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비자 발급이나 참가 인원에 대한 제한이 없는 호주에 사건사고가 몰리고 있습니다.
이곳 시드니를 포함해 호주를 찾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은 매년 3만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호주 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지난달 호주에 온 24살 박모 양.
영어가 서툰 박 양은 오자마자 한인 식당에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바로 그만두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처음에는 (실습 기간에도) 돈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야, 너 트라이얼(실습) 기간이었어. 그만 나와. 그럼 돈 못 받는 거예요. 일을 구한 줄 알고 일을 했는데 시간 날리는 거죠.”
다른 일자리를 찾던 박 양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하우스키핑이요. 호텔 청소거든요. 시간도 너무 늦은 시간까지 안 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많이 하려고 해요.”
이 역시 사기였습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그 사람이 500불을 불렀어요 저는 반을 먼저 주기로 했어요. 반을 먼저 줬는데, 제 돈 반을 먹고 다른 사람들 돈 다 먹고 간 거죠.”
실제 각종 현지 사이트에선 돈을 받고 일자리를 넘겨주겠다는 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특히 숨진 김 씨의 사례처럼 직접 달러 등의 환전 거래를 하자는 글들도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SYN▶ 현지 유학원 관계자
“(직거래라는 게) 아무래도 현금을 가지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보니까 실제로도 현금만 갈취하는 문제가 생겼던 경우들도 종종 보이기도 하고요...”
하는 일도 한국에서의 기대와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가 달리면 현지업체에 취직이 안되고, 결국 한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러면 영어를 배울 기회는 더더욱 없어지고 근로조건도 나빠집니다.
호주 최저임금인 16달러 이하인 경우가 태반인 겁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저는 10 불이고, (일 구하려는) 애들 넘쳐나요. 저 면접 볼 때도 여자만 8명 면접 봤거든요. 10불이라고 해서 왜 최저임금 안 해줘요? 하면 너 그럼 하지마.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러다보니 영어 실력을 크게 따지지 않으면서도 시급은 높은 3D 업종의 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SYN▶ 권남호/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소위 말하는 3D 업종에서 몸 쓰는 일이죠. 농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소고기 공장이나 양고기 공장 이런데 가서 보닝이라고 뼈를 발라내거나..”
일주일에 6,70시간 노동은 물론, 휴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SYN▶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학교 청소, 오피스 청소, 퍼브(호프집) 청소.. 대부분 80%가 주 7일제로 일해요.”
남들이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취약시간대에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SYN▶ 김민지/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주말에는 (새벽) 12시 반 정도에 나가고요. 아니면 (새벽) 1시 정도? (무섭고 그러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번에 사건이 터졌잖아요. 그리고 나서부터는 조금 무서워요.”
현지 취업을 통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즐기면서 경험을 쌓는다는 워킹 홀리데이의 본래 취지대로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합니다.
◀SYN▶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일자리 구하다가 자기 생활비 다 까먹고 가는 친구들도 많았고 거의 일만 하다 가죠. 워킹홀리데이에서 '홀리데이'가 빠진 그런 일만 계속하다가(가는 거죠)”
인력이 부족한 호주에서, 현지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3D 업종의 일을 대신 해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는 자조도 나오고 있습니다.
◀SYN▶ 김석민 소장/호주 워킹홀리데이 서포팅센터
“여기는 35도인가 올라가면 밖에서 일 못하게 해요. (호주인들은) 다 들여보내요. 한국 애들은 그 정도의 더위까지도 참아줘요. 한국 젊은 친구들이 고기 공장이나 농장에 가서 일한다는 그 자체는 호주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필요한 인력들이죠.”
영어와 취업. 여행
세 가지 목표를 성취한다는 워킹홀리데이는 분명 매력적인 유혹입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지원이 없다면, 낭패에 빠질 수 있다는게 경험자들의 충고입니다.
◀SYN▶ 강태호/워킹홀리데이 경험자
“준비가 안 되어있는 학생들이 가요. 한국에서는 3D로 이야기했던 게 왜 호주가면 낭만이 되냐 이거죠. 호주에 가서 파를 뽑고 양파를 뽑고 딸기를 뽑고.. 그게 경험은 아니겠죠.”
외교부는 이번 사건 이후 전 세계 워킹홀리데이 참가자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안전망에 대한 점검 뿐 아니라 워킹홀리데이의 애초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국인이 한 달 새 두 명이나 살해됐습니다.
한 명은 이른 새벽 청소일을 하러 나가다 낯선 호주인에게 살해됐고, 또 한 명은 귀국을 앞두고 2년간 모은 돈을 환전하러 나갔다가 같은 한국인 '워홀러(워킹 홀리데이 참가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현지 취재 결과, 워홀러들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는 업체이거나 농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는 것으로 영어와는 거의 무관한 일이었고, 청소 등의 일을 할 경우 근무시간도 한밤중이나 새벽으로 치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도전과 낭만으로 인식돼온 워킹 홀리데이를 현지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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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N▶ 호주 현지 방송
“경찰이 실종됐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체를 찾았습니다.”
◀SYN▶ 주민
“이 조용한 동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충격이에요.”
◀SYN▶주민
“대체 이런 일이.. 정말 충격이에요.”
지난 19일, 호주 브리즈번의 한 주택가뒷마당에서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숨진 남성은 28살 한국인 김모 씨.
◀SYN▶ 로드 캠프/호주 퀸즐랜드주 경찰
“그는 상당한 돈을 모았고, 다음 달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환전을 하려 했다는(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온 지 2년이 된 김 씨는 다음달 귀국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농장과 육가공 공장 등에서 일하며 힘들게 모아놨던 호주 돈 1만 5천 달러.
김 씨는 1,500만 원 가량의 이 돈을 한국 돈으로 환전하기 위해 호주 한국인 사이트 등 여러 곳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글을 남겼습니다.
환전 수수료라도 아껴보겠단 마음이었습니다.
◀SYN▶ 故 김00 친구
“여기서 하면 환율을 쳐주고 수수료를 안 떼니까 사람끼리 하면 수수료를 안 떼거든요. 그래서 아마 했던 것 같아요.”
지난 16일 낮, 이 광고를 보고 한 남성이 김 씨의 집을 찾아왔고, 이 남성을 만나러 나간 김 씨는 그날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SYN▶ 故 김00 친구
“(환전하러 온) 이 사람들이 자기 집에 가자고 한다. 어떻게 해야 되냐. 그래가지고 이상하다 가지 마라 (라고 했더니) 알겠어요. 나가서 안 한다고 얘기 할게요 하고 나가서 그대로 없어진 거죠.”
결국 김 씨는 실종 사흘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습니다.
용의자는 28살 한국인 황모 씨.
황 씨 역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8개월 전 호주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황 씨는 환전을 해주겠다며 김 씨를 차에 태운 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집 뒷마당으로 데리고 가 살해했습니다.
황 씨의 현지 지인은 황 씨가 평소에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다며, 도박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SYN▶ 황 00(용의자) 지인/브리즈번
“돈이 없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일하고 있는 게 없으니까 돈이 없죠. (도박 이런 거에 빠져 있었나요?) 옛날에 카지노는 자주 갔다고 들었어요. 같이 밥 먹을 때도 맨날 카드 가져와서 카드 막 보고...”
◀SYN▶ 조강원/주 시드니총영사관 경찰영사
“일단은 금품을 목적으로 한 것은 전달받았고요. 단독범행으로 자백도 했고..”
영국 음악학교 진학을 꿈꾸며, 호주에서의 힘든 노동을 견뎌냈던 김 씨.
그의 방 한 구석엔 애지중지하던 기타 한 대가 놓여 있고, 그의 페이스북에는, 석 달 전 미리 끊어 놓은 한국행 비행기 표 사진이 담겨 있었습니다.
불과 3주 사이 호주 브리즈번에서만 킹홀리데이에 참가했던 한국인 남녀 젊은이 2명이 잇따라 피살됐습니다.
청년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해외 취업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워킹홀리데이 제도가 그 안전망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세 번 로 큰 도시인 퀸즐랜드주의 주도, 브리즈번.
시내 곳곳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자축하는 대형 트리와 각종 장식들이 만들어졌고, 북적이는 사람들 속으로 산타 차림의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이 시내 중심가와 바로 맞닿아 있는 공원 안에서 얼마전 한국인 여대생 반모 양이 끔찍하게 살해된 채 발견됐습니다.
반 양은 지난달 24일 새벽, 청소 일을 위해 혼자 집을 나서 길을 걷던 중, 괴한에게 심한 폭행을 당한 뒤 숨졌습니다.
반 양이 처음 범인을 맞닥뜨리고 폭행을 당했던 공원 건너편 인도.
사건 당시의 상황을 표시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SYN▶ 김권철/브리즈번 교민
“(반 양이 청소하러)호텔을 가기 위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이 길을 지나가야 되는데 여기서 사고가 있고, 지나가는 보행자가 일단 사건 현장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한 것으로..”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충격과 불안감이 남아 있습니다.
◀SYN▶ 이메진/인근 주민
“정말 무섭고 끔찍한 일이에요. 정말 슬프고요.”
◀SYN▶ 캐슬린/인근 주민
“여기 근처 살아서 굉장히 충격적이고 슬펐어요. 밤에도 안전은 하지만 저는 항상 제 남편과 같이 다녀요.”
사건 현장에서 불과 몇 백미터 떨어진 반 양의 아파트.
시내와 가까워 한국인 젊은이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SYN▶ 인근 주민
“(워킹홀리데이로 온)한국 분들이 꽤 있으세요. 청소뿐이 아니고 스시 숍에서 일하는 분들은 일찍 출근하시니까. 많이 다니세요. 새벽에 일하시는 분들..”
한가로운 주택가의 모습.
사건이 벌어졌던 이른 새벽 시간엔 어떨까?
2580은 이른 새벽 이 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지금 시각이 이 곳 시각으로 새벽 4시입니다. 반 양은 새벽 청소를 위해 이 시각에 집을 나와 길을 나섰습니다.
아파트의 불은 대부분 꺼져 있는 새벽.
해가 일찍 뜨는 탓에 아주 깜깜하진 않지만, 사건 장소까지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SYN▶ 인근 주민
“밤에 약간 솔직히 저녁에 좀 어둡긴 해요. 여자분들이 다니기에는 약간 위험하지 않나.”..
◀SYN▶ 故 반00 친구
“제가 밤에 안 무섭냐고 그랬더니 생각보다 새벽에 밝고 괜찮다고 하더라고요...항상 웃는 모습이고 힘들다고 내색하는 것도 전혀 없고..”
반 양이 새벽 청소일을 했던 호텔.
호주 규정상 이름은 호텔로 돼 있지만, 한국의 대형 호프집 같은 곳입니다.
지난 10월 호주에 온 반 양은 이 곳에서 새벽 청소일을 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출근 도중 변을 당한 겁니다.
◀SYN▶ 故 반00 친구
“처음에는 식당일 구하는데 잘 안 구해지고, 그 다음에 청소일 구하게 된 거거든요. 생각보다 생활비도 많이 들고 하니까 워킹 온 사람들이 다 그런 게 일정금액 이상이 떨어지면 마음이 불안하잖아요.”
◀SYN▶청소 용역업체 관계자
“00 양이 집이 가깝다 보니까 자기가 했으면 좋겠다. 차를 안 몰아도 되고 .. 여기는 사람이 있을 때 청소를 하게 되면 업장에서 원치를 않아요. (그래서 새벽에 하는 거죠)”
피의자는 19살 호주 청년.
어릴 적부터 자신이 커서 '살인자'가 될 것이라 믿어왔다던 이 청년은 경찰 조사에서, "처음 만나는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SYN▶ 톰 아미트/호주 퀸즐랜드주 경찰
“그녀가 잘못된 시각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가 혼자 였고, 왜소했고,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범행을 저지르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 혐오 범죄가 아니냐는 질문에 현지 경찰은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SYN▶ 톰 아미트/호주 퀸즐랜드주 경찰
“동기를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인종 차별에 대해 물었을 때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
며칠 전 법원은 이 청년에 대한 형사 재판을 중단하고, 3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해 먼저 정신 감정을 받도록 명령했습니다.
◀SYN▶ 이종일 변호사/호주 브리즈번
“(변호인측이) 그 (사건) 당시에 정신질환으로 인해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걸 시사하는 거죠. 정신질환 감정을 신청했기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는 19살부터 30살까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외국에서 일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관광 취업비자' 제도입니다.
지난 1995년부터 시행됐지만, 워킹홀리데이 참가자가 현지에서 피살된 건 이번 두 사례가 처음입니다.
그러나 폭행이나 절도, 사기, 각종 안전사고 등은 정부가 파악한 걸로만 해마다 100여 건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비자 발급이나 참가 인원에 대한 제한이 없는 호주에 사건사고가 몰리고 있습니다.
이곳 시드니를 포함해 호주를 찾는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참가자들은 매년 3만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호주 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지난달 호주에 온 24살 박모 양.
영어가 서툰 박 양은 오자마자 한인 식당에 취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바로 그만두란 통보를 받았습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처음에는 (실습 기간에도) 돈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야, 너 트라이얼(실습) 기간이었어. 그만 나와. 그럼 돈 못 받는 거예요. 일을 구한 줄 알고 일을 했는데 시간 날리는 거죠.”
다른 일자리를 찾던 박 양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일자리를 넘겨주겠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하우스키핑이요. 호텔 청소거든요. 시간도 너무 늦은 시간까지 안 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많이 하려고 해요.”
이 역시 사기였습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그 사람이 500불을 불렀어요 저는 반을 먼저 주기로 했어요. 반을 먼저 줬는데, 제 돈 반을 먹고 다른 사람들 돈 다 먹고 간 거죠.”
실제 각종 현지 사이트에선 돈을 받고 일자리를 넘겨주겠다는 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특히 숨진 김 씨의 사례처럼 직접 달러 등의 환전 거래를 하자는 글들도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SYN▶ 현지 유학원 관계자
“(직거래라는 게) 아무래도 현금을 가지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보니까 실제로도 현금만 갈취하는 문제가 생겼던 경우들도 종종 보이기도 하고요...”
하는 일도 한국에서의 기대와는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영어가 달리면 현지업체에 취직이 안되고, 결국 한인이 운영하는 곳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러면 영어를 배울 기회는 더더욱 없어지고 근로조건도 나빠집니다.
호주 최저임금인 16달러 이하인 경우가 태반인 겁니다.
◀SYN▶ 박00/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저는 10 불이고, (일 구하려는) 애들 넘쳐나요. 저 면접 볼 때도 여자만 8명 면접 봤거든요. 10불이라고 해서 왜 최저임금 안 해줘요? 하면 너 그럼 하지마. 그렇게 되는 거예요.”
이러다보니 영어 실력을 크게 따지지 않으면서도 시급은 높은 3D 업종의 일로 학생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SYN▶ 권남호/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소위 말하는 3D 업종에서 몸 쓰는 일이죠. 농장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고, 소고기 공장이나 양고기 공장 이런데 가서 보닝이라고 뼈를 발라내거나..”
일주일에 6,70시간 노동은 물론, 휴일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SYN▶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학교 청소, 오피스 청소, 퍼브(호프집) 청소.. 대부분 80%가 주 7일제로 일해요.”
남들이 위험하다고 기피하는 취약시간대에 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SYN▶ 김민지/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주말에는 (새벽) 12시 반 정도에 나가고요. 아니면 (새벽) 1시 정도? (무섭고 그러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이번에 사건이 터졌잖아요. 그리고 나서부터는 조금 무서워요.”
현지 취업을 통해 영어를 배우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여행을 즐기면서 경험을 쌓는다는 워킹 홀리데이의 본래 취지대로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합니다.
◀SYN▶ 워킹홀리데이 참가자
“일자리 구하다가 자기 생활비 다 까먹고 가는 친구들도 많았고 거의 일만 하다 가죠. 워킹홀리데이에서 '홀리데이'가 빠진 그런 일만 계속하다가(가는 거죠)”
인력이 부족한 호주에서, 현지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3D 업종의 일을 대신 해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는 자조도 나오고 있습니다.
◀SYN▶ 김석민 소장/호주 워킹홀리데이 서포팅센터
“여기는 35도인가 올라가면 밖에서 일 못하게 해요. (호주인들은) 다 들여보내요. 한국 애들은 그 정도의 더위까지도 참아줘요. 한국 젊은 친구들이 고기 공장이나 농장에 가서 일한다는 그 자체는 호주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필요한 인력들이죠.”
영어와 취업. 여행
세 가지 목표를 성취한다는 워킹홀리데이는 분명 매력적인 유혹입니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와 지원이 없다면, 낭패에 빠질 수 있다는게 경험자들의 충고입니다.
◀SYN▶ 강태호/워킹홀리데이 경험자
“준비가 안 되어있는 학생들이 가요. 한국에서는 3D로 이야기했던 게 왜 호주가면 낭만이 되냐 이거죠. 호주에 가서 파를 뽑고 양파를 뽑고 딸기를 뽑고.. 그게 경험은 아니겠죠.”
외교부는 이번 사건 이후 전 세계 워킹홀리데이 참가자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안전망에 대한 점검 뿐 아니라 워킹홀리데이의 애초 취지를 살릴 수 있는 체계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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