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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정은 기자

"국회라는 자부심으로 들어왔는데..." 청소아줌마들의 겨울

"국회라는 자부심으로 들어왔는데..." 청소아줌마들의 겨울
입력 2014-01-20 08:51 | 수정 2014-01-20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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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깜깜한 새벽 버스를 타고 출근해 하루종일 건물과 마당을 청소하는 사람들. 냄새나는 창고에서 밥을 먹고, 뒤돌아서면 또 빗자루를 들어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힘겨운 하루. 100만 원 안팎의 기본급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해마다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피켓을 드는 사람들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시죠.

    =============================

    아침 기온이 영하 7도로 뚝 떨어진 지난 수요일.

    아직 깜깜한 새벽 5시 반, 예순일곱살 황정례 할머니가 분주하게 출근길에 나섭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서울 시내의 한 대학교.

    8년째 이곳에서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SYN▶ 황정례
    (이렇게 일찍 나와야 되는 이유가 있어요?)
    "일찍 나와야 그 안에 9시 반 안에 청소를 다 해요. 교수님이 나오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건물 마당과 주차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한번 씩 쓸어내는 겁니다.

    ◀SYN▶ 황정례
    "(가장 힘든건) 추울 때요, 손이 이게 막, 지금도 이게 여기가 손끝이 시려요. 이게 그러면 이렇게 (장갑을) 빼고 또 해야 돼요. 그러면 조금 덜 시려요"

    다음엔 건물로 들어가 할머니가 맡은 구역, 7층과 8층 있는 교수연구실을 청소해야 합니다.

    쓰레기를 비워내고, 바닥을 닦고, 또 책상을 닦고. 한 층에 19개씩 두 층, 혼자 38개나 되는 연구실을 담당하다보니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인 오전엔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습니다.

    ◀SYN▶ 황정례
    (하루에 다 못하시겠는데요?)
    "그래도 해야 돼요. 왜 그러냐면 저런 창틀 같은 데는 이런 방학 때 청소하고..."

    이렇게 한 바퀴 돌고나면 오전 9시 반,

    건물 지하 창고에서 동료들과 만나 이 날 첫 식사를 합니다.

    하수관이 지나가 냄새가 나고 쓰다 남은 자재들도 잔뜩 쌓여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습니다.

    ◀SYN▶ 이종영
    "공사하면 여기에 다 쌓아요. 물건을. 그러니까 (학교 측이 식탁을) 치워달라고 그러는 걸 우리는 그대로 밥을 먹어야 되겠다. 밥이라도 먹게 해 달라“

    밥 먹고 잠시 쉬다 새벽에 못한 체육관 청소도 하고 7, 8층 복도와 화장실을 두 바퀴 더 돌면 퇴근할 시각이 됩니다.

    예순 일곱 나이에 꽤 고된 일, 용역회사를 통해 고용된 비정규직이라 서러운 일도 많지만 노후대책을 세워놓지 못해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SYN▶ 황정례
    "우리가 좀 그런 얘기하면 그만 둬라, 모가지 시킨다. 잘린다고 그래요. 그런 점이 힘들어요. (그래요?) 잘린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냥 힘들어도 참고 하는 거예요. 힘들어도 내가 여기서 나가면 아이고 뭐하나 싶어서..."

    100만원 남짓한 기본급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 신분, 궂은 일을 맡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들의 현실입니다.

    해마다 고용계약서를 다시 쓰는 연초만 되면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난 수요일 중앙대학교.

    교정 한켠에 차려진 천막 농성장에 청소 아주머니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청소량이 너무 많아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며 지난달부터 부분파업을 하고 있습니다.

    ◀SYN▶ 이경자/중앙대 청소노동자
    "우리가 외곽(청소하는 것이)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어서 못하겠다라고 하면 못하면 그만둬라 그런 식이니까 그러니까 핥으라면 핥는 시늉까지 그렇게 힘들게 했었어요."

    휴게공간이 열악해 제대로 쉴 수도 없고 다쳤을 때 산재처리를 받기도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SYN▶ 윤화자/중앙대 청소노동자
    "다른 대학 하는 것만큼 우리도 인간답게, 사람답게 대우를 해줘라 이거에요. 너무 노예처럼 일을 해 왔으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근무시간 중 콧노래를 불러선 안 되고 의자나 쇼파에 앉아서 쉴수도 없다는 내용의 도급계약서가 공개되면서 비난여론이 들끓었고, 파업 한 달 만에 학교 측이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며 나섰습니다.

    ◀SYN▶ 김태성/중앙대 홍보팀장
    "휴게소를 하나 더 신설하고 기존 휴게소를 개·보수하고요 그 다음에 말했듯이 외곽청소 관련된 인원은 별도로 뽑기로, 다음 계약 때 별도로 뽑으려고..."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씩 찾고 있지만 대학도, 아주머니들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대자보를 붙였던 것에 대해 대학 측이 학습권 침해와 업무방해를 이유로 배상금을 내도록 법원에 신청하는 등 양측이 서로를 고발하며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인천의 한 고용센터.

    윤희자 씨가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왔습니다.

    인천 영종도의 특급호텔에서 8년 동안 청소를 했던 윤 씨는 새해 첫 날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사흘 전 느닷없이 해고통보를 받은 겁니다.

    ◀SYN▶ 윤희자/호텔 청소노동자
    "무능력해졌어요. 일도 하기 싫고 잠도 안 오고 어제는 밤새 잠 못 잤어요. 눈이 뻑뻑해서"

    함께 일했던 동료 7명도 같은 처지입니다.

    야간 수당을 받기 위해 밤 9시까지 출근해 다음날 새벽 6시까지 일했던 올빼미 생활.

    하루 8시간씩 일을 했는데 용역업체와 작성한 근로계약서에는 6시간만 일한 걸로 돼 있는 걸 최근 발견해 밀린 임금을 달라고 요구하자 용역업체가 해고했다는 게 아주머니의 주장입니다.

    ◀SYN▶ 윤희자/호텔 청소노동자
    "6시간짜리라니까 우린 완전히 까무러친거지. 세상에 여기서 아침에 저녁에 해서 집에까지 들어갈 동안 13시간을 소비하는데 얼마나 황당해요. 우리가 이걸(근로계약서) 사인을, 무조건 이거 읽어보세요. 소리도 안하고요. 이걸 갖다가 사인을 하래요."

    원청업체인 호텔 측은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며칠 전 끝났다며 난감하다는 입장이고, 용역업체는 묵묵부답인 상태.

    노동청에 용역업체를 고발해놓은 아주머니들은 호텔이라도 나서서 해결해달라며 매주 찾아가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청소노동자 대부분은 용역업체 직원이지만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원청업체에 가서 일을 하는 간접고용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원청업체가 용역업체에 비용을 지불하면 용역업체도 마진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받는 임금은 직접 고용되는 형태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청업체 입장에선 청소업무를 외주화 하는 게 효율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에 청소노동자의 90% 이상이 간접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습니다.

    ◀SYN▶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첫 번째는 싸니까. 정규직에 비해서 값싸게 인건비를 줄이고 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인력활용으로서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거고 두 번째는 유연하게, 그러니까 간접 고용은 더더욱 쉽게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해지하거나 내지는 해고할 수 있는 그런 고용형태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용역업체와 원청업체, 양쪽의 눈치를 모두 봐야해 처우개선이나 임금인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 일자리를 잃은 윤 씨처럼 분쟁이 생겼을 때에도 원청업체와 용역업체가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면 해결이 쉽지 않습니다.

    ◀SYN▶ 이상숙/호텔 청소노동자
    "우리가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고 (용역)본사도 나 몰라라 하고 저렇게 내밀고 있고, 호텔에서도 저러고 있고 (호텔은) 체불임금 돼 있는 것도 몰랐다, 최저임금 안 준 것도 모른다."

    고용형태 자체가 열악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용역업체를 통하지 않고 원청업체에 직접 고용돼 고용불안을 해소해보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이 곳 국회 사무처가 그런 경우인데요.

    수십 년 동안 외주화된 청소업무를 전환하는 문제여서 논의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쓸고, 닦고, 비우고. 청소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야 어느 곳이나 비슷하겠지만 국회는 조금 특별합니다.

    국가기밀이 다뤄지는 곳이어서 신원조회를 통과하고 보증인을 3명이나 세워야 채용될 수 있습니다.

    ◀SYN▶ 조승교/국회 청소노동자
    "국회라는 브랜드 자체에 진짜 어깨에 힘이 들어갔었죠. 나름대로. 아무리 우리가 청소를 해도 그래도 국회 가서 청소하는 거 아니냐, 자부심을 가지고 들어왔었죠."

    건물 면적이 넓어 한 사람이 청소하는 공간은 1600제곱미터가 넘고 국회의원이 생활하는 곳이어서 행동에 조심해야 하는 점도 많습니다.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해 받는 돈이 한 달 107만 원, 높은 책임감이나 성실함이 요구되는데 비해 처우는 열악한 편입니다.

    ◀SYN▶ 장은숙/국회 청소노동자
    "학자나 학생이나 의원이나 그 누구보다도 그 사람들이 하지 않는 걸 우리가 하잖아요. 그럼 우리한테 고마워해서 우리를 대우해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안 그래요. 우리를 벌레 보듯이 해요. 그러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국회는 청소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1년 정규직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SYN▶ 박희태 前 국회의장
    "청소 용역을 용역회사에 주던 제도를 이제 그만두고 우리 국회에서 직접 청소 용역들을 고용해서 일반 정규직 공무원들과 똑같이 대우해서 신분과 처우를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계약완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SYN▶ 정진석/국회사무총장
    "모든 국가기관이 여전히 수십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해 온 이 간접고용을 우리 국회 사무처만 유독 직접고용으로 당장 성급하게 결정할 것이 아니라 직접 고용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좀 더 심도 있는 진지한 검토를 거쳐서..."

    국회가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했을때 다른 공공기관 뿐 아니라 민간기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겁니다.

    고용 안정성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제기되면서 청소 아주머니들을 정규직화하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청소 아주머니들을 작년 2월부터 직접 고용돼 무기계약직화 했습니다.

    용역업체에 지급하던 관리비용이 아주머니들의 임금에 반영돼 월급이 20만 원 정도 올랐고 정년은 업무 특수성을 감안해 만 65세로 정해졌습니다.

    ◀SYN▶ 이옥순/서울시청 청소노동자
    "예전에는 1년에 한번 씩 이력서를 다시 써야 되잖아요. 항상 불안감이 있잖아요. 정규직으로 발표난다고 했을 때 너무 날아갈 것 같이 좋았어요. 내가 그래서 애들한테 '야, 엄마 공무원 될 것 같아' 그랬죠."

    그렇다고 모든 사업장에서 수십 만 명의 고용형태를 갑자기 바꿀 수는 없는 일.

    현실적으로 비용이 너무 들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우선 청소 업무의 특수성을 반영해 이를 위한 표준 근로계약서를 마련하거나 대화의 장을 만들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SYN▶ 김종진 연구위원/한국 노동사회연구소
    "청소 용역 노동자들 같은 경우에는 이해 대변, 목소리를 대신 낼 수 있는 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자체 차원에서 열악한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협상 통로의 창구를 대신 마련해 주면 좋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또 지금까지는 부당한 일을 당해도 각자 소송을 제기해 문제를 해결해왔지만 간접고용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법을 만들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SYN▶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그동안은 판례를 통해서 사안 사안별로 사건이 됐을 때 사법부의 판단에 의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라, 함은 그 해당노동자들의 권익에 대처되는 형태가 되는데 그걸 피하려면 전체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그런 입법, 법이 만들어져야 된다는 거죠."

    청소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40만 명,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종사자가 많은 직업입니다.

    ◀SYN▶ 김영숙/국회 청소노동자
    "신분보장하고 저희들이 고용안정 불안해하지 않고 좀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70%가 55세 이상.

    젊은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벌이도 시원찮은 일을 취직하기 힘든 어르신들이 떠맡고 있는 실태입니다.

    그래서 청소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건 40만 명의 고용의 질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고령화 시대의 큰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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