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강나림 기자
강나림 기자
'외국인 여성 알몸 검사 합니다'…19살 자스민의 눈물
'외국인 여성 알몸 검사 합니다'…19살 자스민의 눈물
입력
2014-01-27 08:45
|
수정 2014-01-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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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인지 알아본다며 국제결혼 중개업자가 동남아 이주여성의 옷을 벗겨 이른바 '알몸 검사'를 했습니다.
한국 여성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는 한국남성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0년이 넘은 동남아 국제결혼,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국제결혼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남성중심적 사고 속에서 이같은 인권침해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
충청도의 한 시골마을.
김정훈 씨(가명) 부부가 장을 보러 나왔습니다.
과일 가게에 들러 귤 한 봉지를 사고, 꽈배기 한 접시도 사이좋게 나눠 먹습니다.
"맛있어?“
"맛없어"
정훈 씨의 아내 자스민 씨는 필리핀 여성입니다.
3년 전, 한국의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정훈 씨와 맞선을 본 뒤,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여느 한국인 부부처럼 지내던 이들은 결혼한 지 1년 만인 작년 4월.
자신들의 결혼을 성사시켜준 한국인 중개업자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중개업자가 결혼식을 전후해 수차례 자스민 씨를 성추행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 김정훈(가명)/이주여성 남편 ▶
"(결혼식날) 아침에 임신 테스트 하고 신체검사, 알몸 검사를 중개업자 방에서 받았다는 거예요. 옷을 다 벗기고 돌아봐라. 그러고서 몸을 만졌다고 그래요"
고향 필리핀의 많은 여성들처럼 자스민 씨도 행복한 한국 생활을 꿈꿨지만 시작해보기도 전에 한국인 중개업자에게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많은 이주 여성들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나라 여성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2011년 4월, 필리핀 마닐라의 한 숙소.
정훈 씨는 국제결혼중개업자 송 모 씨에게 1천 3백만 원을 주고 이곳에 와서 필리핀 여성들과 맞선을 봤습니다.
일주일 동안 자스민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짧은 신혼여행까지 마친 뒤.
정훈 씨는 먼저 한국으로 가고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자스민 씨만 필리핀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뒤, 전화 통화에서 자스민 씨가 이상한 얘기를 했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중개업자를) 보씽이라 그래요. 거기는. 보스라는 뜻이죠. 보씽 나뻐. 그래서 제가 또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보씽 미 터치’그러는 거예요"
통역을 구해서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송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거였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중개업자가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다가 이불을 당겨서 덮은 거예요 우리 와이프 배를. 그렇게 하고 손이 밑으로 내려간 거예요. 배 밑으로"
그 길로 정훈 씨가 송씨에게 따져 묻자 성추행이 아니라 신체 검사를 한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이런 일이 있었다는데 얘기해봐라 그랬더니 자기가 알몸 검사를 했다는 거예요. 알몸검사를 한 걸 '네 와이프가 (하는 말을) 네가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까 와이프 말을 이해를 못한 것일 거다' 이렇게 변명을 하는 거예요"
송 씨가 했다는 검사는 알고 보니 노골적인 성추행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스민을 처음 만나 국제결혼에 필요한 인터뷰를 한 날부터 옷을 벗기고 몸을 살펴봤다는 겁니다.
◀ 자스민(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윗도리 옷을 다 벗고 그 다음에 밑에로 다 벗고, 그 다음에 거기 보고나서 뒤로 엉덩이를.."
이른바 알몸 검사는 심지어 결혼식 날 아침에도,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위도 아래도 다 알몸 상태로 만들어놓고 ‘가까이 와봐’그렇게 하고 모유수유를 한 적이 있는지 체크한다는 명목으로 가슴도 만지고 뒤로 돌아서 튼살 있는지 보는 거죠. 이거 뭐 마루타도 아니고.."
당시 19살의 어린 신부였던 자스민 씨는 한국에 시집가려면 이렇게 해야하나보다, 하고 중개업자가 시키는대로 따랐습니다.
◀ 자스민(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한국사람 결혼하고 싶으니까. 그냥 생각이 ‘어쩔 수 없구나’그런거 생각이 들었어요.”
필리핀 현지에 남아있는 다른 신부감 후보들 역시 송 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 필리핀 피해여성 ▶
"당연히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죠. 하지만 그쪽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을 도울 수 있는 기회라고 유도해서 송 씨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한국을 가기 위해서요."
이런 식으로 송 씨에게 몹쓸 짓을 당한 필리핀 여성은 한국에만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2012년 결혼해 한국에 온 에리카 씨도 국제결혼을 위해 인터뷰를 하던 날 알몸 검사를 받았습니다.
◀ 에리카(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바로 그 자리에서 송 씨가 저의 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열어 속옷과 같이 벗겼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랫배를 쿡쿡 누르면서 만졌고.."
경찰 조사 결과 송 씨가 자스민 씨를 세 차례 성추행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송 씨는 작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몸 검사를 한 것 자체에 대해선 법원은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알몸검사는 분명 비난받을 일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피해 여성이 검사에 동의했고, 중개업자 송 씨가 피해 여성을 제압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강제추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아마 우리나라 여성이었다면 그렇게 법정에서도 그렇게까지 안 했을거에요. 제가 저 같이 이렇게 무지한 사람도, 이게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이 드는데.."
법원 판결대로라면, 여성 본인이 싫다고 하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당사자들의 얘기입니다.
한국에 오고 싶은 여성들 입장에서 중개업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김춘경/대전긴급이주여성지원센터 ▶
"중개업자들의 힘이라는 게, 다시 말씀드리면 위력이라는 건 그 여성들한테는 거의 절대적이죠. 그냥 눈 딱 감고(알몸검사도) 감내를 해야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는 원한다면 외국 신부감의 신체검사를 해줄 수 있다고 내세우며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는 5백여 개.
2580 취재진이 전국 각지의 업체 20여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상당수는 여성을 산부인과에 데려가 궁금한 걸 알아봐주겠다고 말합니다.
◀ A중개업체 ▶
"제가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거죠. 데리고 가서 애를 낳았는지 안낳았는지 검사를 시키는 거예요. (고객이) 동행하신다 그러면 같이 동행하게끔 해드려요"
무리한 요구라도 고객이 꼭 원한다면 어떻게든 맞춰준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 B중개업체 ▶
"베트남 같은 경우는 저희가 해보면 숫쳐녀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 쪽에 꼭 원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찾아가지고 해드려요"
송 씨가 했던 것처럼 중개업자가 직접 여성들의 몸을 살펴본다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곳도 있었습니다.
◀ C중개업체 ▶
"저는 내가 가면 그래요. ‘가슴 예쁜지 보자’하고 이렇게 보거든요. 나는 내가 검사를 해요 ,나는 여자니까 관계가 없잖아. 나는 그것까지 검사를 해요 아기를 낳았던 경험이 있던 사람은 (소개) 안 해줄 자신이 있는 거야 나는. 그런 것도 내가 검사를 다 하고.."
◀ D중개업체 ▶
"배는, 배까지는 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 자리에서 미팅할 때, 배에 스크래치가 있거나 임신한 사람은 티가 납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면"
업체를 찾는 남성들 역시 신체검사를 인권침해가 아닌 당연한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국제결혼을 위해 남자가 업체에 내는 돈은 평균 1천 2-3백만 원.
큰 돈을 들여 결혼하고도 신부가 도망가거나, 현지에서 아이를 낳고도 숨기는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업체에서 확실하게 해주면 좋지 않냐는 겁니다.
◀ 정소연 변호사/법무법인 '보다' ▶
"한 마디로 말하면 정숙한 상등급의 여성을 사고 싶다, 그러니까 중개업자인 네가, 내가 너한테 돈을 줄 테니까 이걸 확인해라. 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즉 수요자가 마치 상품을 구매하듯이"
신체검사는 인권 침해라며 펄쩍 뛰는 중개업체도 있지만, 이들 업체라고 이주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나은 건 아닙니다.
◀ E중개업체 ▶
"정말 남은 인생을 가져다가 나한테 보필 잘하고 와서 행복하게 끝까지 살아줄 여성을 원하시잖아요? 아무래도 그냥 부모 밑에서 농사짓고, 가사일 도움을 줘서 때 묻지 않은 여성. 그게 오리지날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F중개업체 ▶
"빨리 가방 싸들고 갔다 오면 20대 초반 싱싱한 아가씨들 얼마든지 골라올 수가 있단 말이에요"
이주 여성을 대하는 한국 중개업체의 행태는 국제적 망신 거리가 된지 오랩니다.
베트남과 필리핀, 캄보디아의 경우, 남녀가 직접 연애해 국제결혼하는 것이 아닌. 중개업체가 결혼을 주선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입니다.
2010년 캄보디아 정부는 국제결혼이 인신매매 양상으로 이뤄진다며 한때 한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했고, 베트남에선 2007년과 2009년 한국인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들을 줄 세워 놓고 '알몸 검사'를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혀 현지 언론이 대서특필하기도 했습니다.
◀ 김미진/베트남 이주 여성 ▶
"한국인이랑 선보고 있고 여기는 한 명 한 명 여성들이 다 수건 벗고 한국 남성들이 선택.."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지난 10여년 사이 이들 국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주여성이 사람 대접 못 받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 김미진/베트남 이주 여성 ▶
"전에는 진짜 한국 사람이 좋다고, 정도 많고 그렇게 믿고 다 여성들이 다 믿고 왔는데, 근데 이 사건 발생 때부터 베트남 사람이나 외국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은 정이 든 거보다 너무 무섭다하고 나쁘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중개업체의 행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난해 6월에도 필리핀에서 맞선을 보러 온 한국인 남성과 중개업자가 함께 현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필리핀 외교부는 바로 지난주에도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해 엄중히 처벌하겠다며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 라울 에르난데스/필리핀 외교부 대변인 ▶
"국제결혼 중개는 필리핀에서 불법입니다. 누구든 이 법을 위반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 돈 내고 하는 결혼인데 신붓감을 살펴보고 고르는 게 그렇게 못할 일이냐는 한국 남성들,
이런 요구에 맞춰 이주 여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업체들.
비난과 망신을 당하면서도 계속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업체들도, 한국인 남편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 F중개업체 ▶
"너 이 신랑하고 (결혼)하려면 (검사) 해야지, 안 그러면 너 한국 못 간다 그러면 자기가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자존심은 상하지만"
◀ 이주 여성 남편 ▶
"외국인이고 못 사는 나라니까 무시해갖고 그렇게 하는 거지. 한국사람 같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그렇게 하면 한국사람 또 가만히 있지도 않고"
이주여성에게 이른바 '한국적'인 아내, '한국 며느리'처럼 살아주길 바란다면서 왜 한국사람처럼 대하진 않는지, 한국인이라면 가만있지 않을 법한 일들을 왜 자신들은 당하고 있는 건지 이주여성들은 묻고 있습니다.
◀ 자스민(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필리핀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이랑 결혼 하고 싶어도 우리 사람이잖아요.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한국 여성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는 한국남성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20년이 넘은 동남아 국제결혼,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국제결혼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남성중심적 사고 속에서 이같은 인권침해는 여전히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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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의 한 시골마을.
김정훈 씨(가명) 부부가 장을 보러 나왔습니다.
과일 가게에 들러 귤 한 봉지를 사고, 꽈배기 한 접시도 사이좋게 나눠 먹습니다.
"맛있어?“
"맛없어"
정훈 씨의 아내 자스민 씨는 필리핀 여성입니다.
3년 전, 한국의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정훈 씨와 맞선을 본 뒤,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왔습니다.
여느 한국인 부부처럼 지내던 이들은 결혼한 지 1년 만인 작년 4월.
자신들의 결혼을 성사시켜준 한국인 중개업자를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중개업자가 결혼식을 전후해 수차례 자스민 씨를 성추행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 김정훈(가명)/이주여성 남편 ▶
"(결혼식날) 아침에 임신 테스트 하고 신체검사, 알몸 검사를 중개업자 방에서 받았다는 거예요. 옷을 다 벗기고 돌아봐라. 그러고서 몸을 만졌다고 그래요"
고향 필리핀의 많은 여성들처럼 자스민 씨도 행복한 한국 생활을 꿈꿨지만 시작해보기도 전에 한국인 중개업자에게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많은 이주 여성들이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나라 여성이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모를 당하기도 합니다.
2011년 4월, 필리핀 마닐라의 한 숙소.
정훈 씨는 국제결혼중개업자 송 모 씨에게 1천 3백만 원을 주고 이곳에 와서 필리핀 여성들과 맞선을 봤습니다.
일주일 동안 자스민 씨와 결혼식을 올리고 짧은 신혼여행까지 마친 뒤.
정훈 씨는 먼저 한국으로 가고 입국 절차를 밟기 위해 자스민 씨만 필리핀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뒤, 전화 통화에서 자스민 씨가 이상한 얘기를 했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중개업자를) 보씽이라 그래요. 거기는. 보스라는 뜻이죠. 보씽 나뻐. 그래서 제가 또 왜 그러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보씽 미 터치’그러는 거예요"
통역을 구해서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송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거였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중개업자가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다가 이불을 당겨서 덮은 거예요 우리 와이프 배를. 그렇게 하고 손이 밑으로 내려간 거예요. 배 밑으로"
그 길로 정훈 씨가 송씨에게 따져 묻자 성추행이 아니라 신체 검사를 한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이런 일이 있었다는데 얘기해봐라 그랬더니 자기가 알몸 검사를 했다는 거예요. 알몸검사를 한 걸 '네 와이프가 (하는 말을) 네가 말을 잘 못 알아들으니까 와이프 말을 이해를 못한 것일 거다' 이렇게 변명을 하는 거예요"
송 씨가 했다는 검사는 알고 보니 노골적인 성추행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스민을 처음 만나 국제결혼에 필요한 인터뷰를 한 날부터 옷을 벗기고 몸을 살펴봤다는 겁니다.
◀ 자스민(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윗도리 옷을 다 벗고 그 다음에 밑에로 다 벗고, 그 다음에 거기 보고나서 뒤로 엉덩이를.."
이른바 알몸 검사는 심지어 결혼식 날 아침에도,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위도 아래도 다 알몸 상태로 만들어놓고 ‘가까이 와봐’그렇게 하고 모유수유를 한 적이 있는지 체크한다는 명목으로 가슴도 만지고 뒤로 돌아서 튼살 있는지 보는 거죠. 이거 뭐 마루타도 아니고.."
당시 19살의 어린 신부였던 자스민 씨는 한국에 시집가려면 이렇게 해야하나보다, 하고 중개업자가 시키는대로 따랐습니다.
◀ 자스민(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한국사람 결혼하고 싶으니까. 그냥 생각이 ‘어쩔 수 없구나’그런거 생각이 들었어요.”
필리핀 현지에 남아있는 다른 신부감 후보들 역시 송 씨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 필리핀 피해여성 ▶
"당연히 수치스럽고 부끄러웠죠. 하지만 그쪽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을 도울 수 있는 기회라고 유도해서 송 씨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한국을 가기 위해서요."
이런 식으로 송 씨에게 몹쓸 짓을 당한 필리핀 여성은 한국에만 세 명이 더 있었습니다.
2012년 결혼해 한국에 온 에리카 씨도 국제결혼을 위해 인터뷰를 하던 날 알몸 검사를 받았습니다.
◀ 에리카(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바로 그 자리에서 송 씨가 저의 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열어 속옷과 같이 벗겼습니다. 그리고 저의 아랫배를 쿡쿡 누르면서 만졌고.."
경찰 조사 결과 송 씨가 자스민 씨를 세 차례 성추행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송 씨는 작년 11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몸 검사를 한 것 자체에 대해선 법원은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알몸검사는 분명 비난받을 일이지만, 이 사건의 경우 피해 여성이 검사에 동의했고, 중개업자 송 씨가 피해 여성을 제압할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강제추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 김정훈(가명)/이주 여성 남편 ▶
"아마 우리나라 여성이었다면 그렇게 법정에서도 그렇게까지 안 했을거에요. 제가 저 같이 이렇게 무지한 사람도, 이게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이 드는데.."
법원 판결대로라면, 여성 본인이 싫다고 하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당사자들의 얘기입니다.
한국에 오고 싶은 여성들 입장에서 중개업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김춘경/대전긴급이주여성지원센터 ▶
"중개업자들의 힘이라는 게, 다시 말씀드리면 위력이라는 건 그 여성들한테는 거의 절대적이죠. 그냥 눈 딱 감고(알몸검사도) 감내를 해야되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지금도 전국 곳곳에는 원한다면 외국 신부감의 신체검사를 해줄 수 있다고 내세우며 영업을 하는 업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국내에 있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는 5백여 개.
2580 취재진이 전국 각지의 업체 20여 곳을 찾아가봤습니다.
상당수는 여성을 산부인과에 데려가 궁금한 걸 알아봐주겠다고 말합니다.
◀ A중개업체 ▶
"제가 병원에 데리고 가는 거죠. 데리고 가서 애를 낳았는지 안낳았는지 검사를 시키는 거예요. (고객이) 동행하신다 그러면 같이 동행하게끔 해드려요"
무리한 요구라도 고객이 꼭 원한다면 어떻게든 맞춰준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 B중개업체 ▶
"베트남 같은 경우는 저희가 해보면 숫쳐녀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 쪽에 꼭 원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찾아가지고 해드려요"
송 씨가 했던 것처럼 중개업자가 직접 여성들의 몸을 살펴본다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곳도 있었습니다.
◀ C중개업체 ▶
"저는 내가 가면 그래요. ‘가슴 예쁜지 보자’하고 이렇게 보거든요. 나는 내가 검사를 해요 ,나는 여자니까 관계가 없잖아. 나는 그것까지 검사를 해요 아기를 낳았던 경험이 있던 사람은 (소개) 안 해줄 자신이 있는 거야 나는. 그런 것도 내가 검사를 다 하고.."
◀ D중개업체 ▶
"배는, 배까지는 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그 자리에서 미팅할 때, 배에 스크래치가 있거나 임신한 사람은 티가 납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면"
업체를 찾는 남성들 역시 신체검사를 인권침해가 아닌 당연한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국제결혼을 위해 남자가 업체에 내는 돈은 평균 1천 2-3백만 원.
큰 돈을 들여 결혼하고도 신부가 도망가거나, 현지에서 아이를 낳고도 숨기는 등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업체에서 확실하게 해주면 좋지 않냐는 겁니다.
◀ 정소연 변호사/법무법인 '보다' ▶
"한 마디로 말하면 정숙한 상등급의 여성을 사고 싶다, 그러니까 중개업자인 네가, 내가 너한테 돈을 줄 테니까 이걸 확인해라. 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즉 수요자가 마치 상품을 구매하듯이"
신체검사는 인권 침해라며 펄쩍 뛰는 중개업체도 있지만, 이들 업체라고 이주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나은 건 아닙니다.
◀ E중개업체 ▶
"정말 남은 인생을 가져다가 나한테 보필 잘하고 와서 행복하게 끝까지 살아줄 여성을 원하시잖아요? 아무래도 그냥 부모 밑에서 농사짓고, 가사일 도움을 줘서 때 묻지 않은 여성. 그게 오리지날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F중개업체 ▶
"빨리 가방 싸들고 갔다 오면 20대 초반 싱싱한 아가씨들 얼마든지 골라올 수가 있단 말이에요"
이주 여성을 대하는 한국 중개업체의 행태는 국제적 망신 거리가 된지 오랩니다.
베트남과 필리핀, 캄보디아의 경우, 남녀가 직접 연애해 국제결혼하는 것이 아닌. 중개업체가 결혼을 주선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입니다.
2010년 캄보디아 정부는 국제결혼이 인신매매 양상으로 이뤄진다며 한때 한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했고, 베트남에선 2007년과 2009년 한국인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들을 줄 세워 놓고 '알몸 검사'를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혀 현지 언론이 대서특필하기도 했습니다.
◀ 김미진/베트남 이주 여성 ▶
"한국인이랑 선보고 있고 여기는 한 명 한 명 여성들이 다 수건 벗고 한국 남성들이 선택.."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지난 10여년 사이 이들 국가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주여성이 사람 대접 못 받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 김미진/베트남 이주 여성 ▶
"전에는 진짜 한국 사람이 좋다고, 정도 많고 그렇게 믿고 다 여성들이 다 믿고 왔는데, 근데 이 사건 발생 때부터 베트남 사람이나 외국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은 정이 든 거보다 너무 무섭다하고 나쁘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 중개업체의 행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난해 6월에도 필리핀에서 맞선을 보러 온 한국인 남성과 중개업자가 함께 현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필리핀 외교부는 바로 지난주에도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대해 엄중히 처벌하겠다며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 라울 에르난데스/필리핀 외교부 대변인 ▶
"국제결혼 중개는 필리핀에서 불법입니다. 누구든 이 법을 위반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 돈 내고 하는 결혼인데 신붓감을 살펴보고 고르는 게 그렇게 못할 일이냐는 한국 남성들,
이런 요구에 맞춰 이주 여성을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는 업체들.
비난과 망신을 당하면서도 계속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업체들도, 한국인 남편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 F중개업체 ▶
"너 이 신랑하고 (결혼)하려면 (검사) 해야지, 안 그러면 너 한국 못 간다 그러면 자기가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요. 자존심은 상하지만"
◀ 이주 여성 남편 ▶
"외국인이고 못 사는 나라니까 무시해갖고 그렇게 하는 거지. 한국사람 같으면 그렇게 했겠어요? 그렇게 하면 한국사람 또 가만히 있지도 않고"
이주여성에게 이른바 '한국적'인 아내, '한국 며느리'처럼 살아주길 바란다면서 왜 한국사람처럼 대하진 않는지, 한국인이라면 가만있지 않을 법한 일들을 왜 자신들은 당하고 있는 건지 이주여성들은 묻고 있습니다.
◀ 자스민(가명)/필리핀 이주 여성 ▶
"필리핀 사람이라도 한국 사람이랑 결혼 하고 싶어도 우리 사람이잖아요.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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