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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박종욱 기자

천덕꾸러기의 하소연

천덕꾸러기의 하소연
입력 2014-04-07 08:50 | 수정 2014-04-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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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벌이기도 하고,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일도 다반사.

    도로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교통사고를 유발한다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오토바이들.

    사고율은 일반 자동차에 비해 높지 않지만 가볍고, 안전장비가 부족한 특성 때문에 치사율은 월등히 높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이런 부정적인 인식에 대해 "우리도 할 말이 많다"고 말합니다.

    황당하게 설정돼 있는 자동차전용도로, 의무와 규제만 있고 운행을 위한 권리는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라이더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

    평일 오후, 서울 퇴계로.

    빽빽하게 이어진 자동차 사이로 이륜차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띕니다.

    좁은 틈새를 곡예하듯 달리고, 횡단보도는 물론, 인도까지 누비는 이륜차들.

    신호나 차선은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헬멧을 쓰지 않은 것은 다반사고.

    중앙선 침범에

    불법 유턴,

    역주행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한근삼/택시기사▶
    "겁나지. 그래서 피해 다녀요 우리는. 살짝만 부딪히면 그냥 나자빠지잖아."

    ◀송윤지▶
    "치고서 가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사고 나면 그냥 꼼짝없이 당하는 상황이에요."

    쇼핑타운이 밀집한 동대문 인근.

    각종 물품을 나르는 오토바이들이 사람들과 섞여 위태롭게 내달립니다.

    대기 중인 수백 대의 오토바이는 버스전용차로를 장악했고, 사람들이 오가는 인도 역시 오토바이 주차장이 돼 버렸습니다.

    ◀조귀연▶
    "너무 많이 다니고 그냥 무분별하게 막 달리고 할 때 좀 위험한 거 같아요. 옆에 사람들은 별로 의식도 하지 않고."

    늦은 밤.

    갖가지 야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도로를 누비는 시간입니다.

    차도, 인도할 것 없이 이어지는 아찔한 질주.

    이들에게 교통법규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갑자기 끼어들다

    도로를 가로지르다

    때로는 홀로 넘어져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2012년 한 해 발생한 이륜차 사고는 1만 6천여 건.

    목숨을 잃은 사람만 655명에 달합니다.

    이륜차 사고의 치사율은 전체 자동차 사고보다 70%나 높습니다.

    ◀명묘희/교통과학연구원▶
    "이륜차 교통사고는 전체 사고에서 약 7%밖에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망비율이 12% 정도가 된다는 건데요. 즉 이륜차 교통사고의 치사율, 사고가 났을 때 사망하는 비율이 높다는 부분이고요."

    "퀵서비스나 음식배달, 그리고 폭주족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륜차는 무질서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천덕꾸러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이런 부정적 인식에 때로는 억울하다, 우리도 할 말이 많다고들 합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15년차 퀵서비스 기사 임도준씨.

    간만에 콜을 받고 급히 출발합니다.

    꽉 막힌 시내.

    차 사이를 이리 저리 비집고, 때로는 중앙선도 넘나듭니다.

    ◀임도준/경력 15년▶
    "저희가 시간이 돈이지 않습니까. 시간이 돈이다 보니까 어떨 때는 인도 주행도 하고, 중앙선도 이제 침범하고..."

    40여 분만에 배송을 마치고 받은 돈은 1만원.

    업체 수수료에, 기름 값 등을 빼면 이 중 절반 정도만 손에 들어 옵니다.

    ◀임도준/경력 15년▶
    "(하루에) 12, 13만원 현금 들어오면 거기서 수수료 23% 떼고, 그 다음 밥값, 기름 값 그런 거 떼면 한 7만원."

    다음 콜을 받기까지 또 다시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임씨에게 오토바이는 생계의 수단인 동시에 사무실이고 쉼터입니다.

    ◀임도준/경력 15년▶
    "운이 안 좋으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고, 운이 좋으면 5분, 10분 만에 잡기도 하고, 평균적으로 한 30분 대기하죠. 일할 때는 오토바이가 아니라 안방입니다, 안방."

    하루 10시간 이상 도로 위를 달리는 퀵서비스 기사들.

    남들은 오토바이가 위협적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자동차들이 무섭다고 말합니다.

    ◀임도준/경력 15년▶
    "제일 위험한 게 사실 차에요. 밤에 음주운전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전화통화하시는 분들.."

    ◀조정선/경력 20년▶
    "싹 꺾어버리고 그래요. 고의로 겁주려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다치거나 말거나. 돈을 못 벌었으면 야간에도 해야 되는데 박아버리고 도망가 버리면 개죽음이에요, 진짜. 그런 경우가 상당히 많았고.."

    서울에만 3천여 개의 퀵서비스 업체가 출혈경쟁을 하다 보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빨리 달려 콜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정선/경력 20년▶
    "감가 계산 이런 거 다 해보면 얼마 안 되거든요. 그렇게 해가지고 절대 먹고 살지도 못하고 교통 신호 다 지키면 어떻게 가느냐고."

    ◀양용민/경력 15년▶
    "도로에서 그런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고서도 하루 수입이 보장이 되면 상관이 없는데 요금이나 이런 게 하락돼 있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복잡한 골목, 골목을 능숙하게 다니는 동환 군.

    올해로 배달 6년차, 이 동네에선 알아주는 베테랑입니다.

    하루 6시간 일하는 동안 처리해야할 주문은 평균 70여건.

    얼마나 신속하게 배달하느냐가 배달원의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오동환▶
    "저희는 그냥 무조건 빨리 갖다 주는 방식으로. 신호 있으면 신호위반 다 하고. 왜냐면 빨라야 쓰니까. 느린 애들은 배달하면서 실용성이 떨어지잖아요."

    이렇다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아찔한 순간을 경험합니다.

    ◀오동환▶
    "저희가 갑자기 공간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을 때 경적 울리거나 급브레이크 잡는다거나 안 그러면 창문 열고 욕을 하죠. 택시가 손님 태우려고 갑자기 들어와서 박을 뻔한 적도 있고. 하루에도 2~3번 죽을 뻔 하는데 요령껏 알아서.."

    온갖 위험 감수하면서 배달한 대가는 시간당 7천원.

    배달을 많이 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지만, 천천히 다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오동환▶
    "10분 늦으면 왜 안 갖다주느냐, 환불하겠다. 안 먹겠다.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저희도 목숨 걸고 따뜻하게 드시라고 빨라 갖다드리는 건데 솔직히 이렇게 막 달리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가끔은 야속하기도 합니다.

    ◀박민우▶
    "억울하죠. 천천히 신호 다 지키고 다니면 늦게 온다고 뭐라 하고, 신호 안 지키고 그러면 사람들이 뭐라 하고."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도로 정책이 위험한 질주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면허도 있고, 보험도 드는 엄연한 교통수단의 하나지만 모든 도로정책은 자동차 위주여서 오토바이는 홀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경남 김해에서 창원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윤성국 씨.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싶지만, 창원터널 4.7km 구간이 자동차전용도로로 지정돼 있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직장까지의 거리는 17km.

    터널을 통과하면 30분이면 충분하지만, 오토바이로 갈 수 있는 길로 우회하면 그 세배인 한 시간 반 이상 걸립니다.

    ◀윤성국/직장인▶
    "이 밑에 안민터널이 있습니다. 이륜차가 통과할 수 있습니다. 왜 굳이 창원터널은 안 될까? 양쪽 다 터널인데. 나는 그게 아직까지 좀 의문스럽습니다."

    할 수 없이 자동차를 이용하지만, 몇 배나 드는 기름 값 등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윤성국/직장인▶
    "식사를 하러 간다든지 하면 주차공간이 없어 차를 못 가지고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륜차는) 주차장도 해결 가능하고, 어떻게 보면 자동차보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한 교통수단입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 마포와 영등포를 잇는 성산대교.

    오토바이를 타고 북단에서 남단으로 건너면 왼쪽은 올림픽대로, 오른쪽은 노들길로 연결되고 직진하면 서부간선도로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들 도로는 모두 오토바이 진입이 금지된 자동차전용도로.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어느 쪽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황당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SYN▶
    "112에 전화해서 '오토바이 나갈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답변이 이렇게 옵니다. '적당히 나가세요.' 적당히 가다가 사고 나면 과실이 100% 아닙니까. 자동차전용도로 들어갔기 때문에."

    서울 남쪽을 동서로 잇는 남부순환도로.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는 일반 도로가 계속되다가 느닷없이 자동차전용도로로 바뀝니다.

    빠져 나갈 출구도 없습니다.

    ◀김필수 교수/대림대 자동차학과▶
    "가다가 끊어지게 되면 이륜차 입장에서 갈 데가 없어지는 거예요. 방황을 하는 거죠. 이런 세상에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있거든요. 그냥 희한하게 막아놔서 몇 십 년 동안 누적된 부분이거든요."

    고속도로나 주요간선도로에서 오토바이가 못 다니도록 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단 세 곳.

    OECD 국가 중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차량 흐름에 방해가 되고, 사고 위험이 높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조우현 계장/경찰청 교통운영과▶
    "외국에서 다 하니까 무조건 다 해야 된다는 건 아니죠. 고속으로 주행하기 때문에 아주 안 좋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요. 아직까지도 이륜차의 운행, 운전문화가 외국에 비해서 성숙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토바이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 오토바이 1만 대당 사고 건수는 78건으로, 1만대 당 99건인 자동차보다 적습니다.

    또 오토바이 사고 절반은 10대 청소년과 60대 이상 노인에 집중돼 있고, 100cc 미만의 이륜차 사고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면허제도나 교육프로그램을 보완한다면 사고는 더욱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명묘희 박사/교통과학연구원▶
    "이륜차를 타기 위해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 된다든지, 면허를 취득해야 된다는지 이런 의식들이 좀 떨어지는 계층입니다. 50cc 이상은 별도의 면허가 있어야 운전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고요."

    일본, 대만 등은 물론 많은 유럽 국가들이 기동성과 에너지 효율 등을 높이 평가해 오토바이 전용차선이나 주차장 등을 만들어 이륜차 이용을 활성화하는 추셉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위험성만 강조하다보니 오토바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김필수 교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예를 들어 이륜차 전용 정지선을 만들어서 앞쪽에 배치를 시켜 줍니다. 또 좌회전 전용 박스선도 있습니다. 이륜차 전용 박스 선에 이륜차가 들어가 있게 되면 보호를 받을 수가 있고요. 또 좌회전할 때 혼동을 안 일으킵니다. 선진국에서는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노력이 아예 없다는 것이 상당히 문제점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 탓에 국내 이륜차 산업도 크게 위축된 상황.

    한 때 연간 30만대를 웃돌았던 판매량은 최근엔 10만대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배동준 사장/KR모터스▶
    "든든한 제조업체가 두 군데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륜차는 관심 밖의 산업이 돼서 상당히 경쟁력이 약화되고 납품업체들도 지금 많이 힘든 상황에 있습니다."

    한 번 충전으로 60km를 달릴 수 있는 친환경 전기이륜차가 미래형 품목으로 이미 개발됐지만, 4백만 원이 넘는 가격에, 전기차와는 달리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거의 없어 판매는 미미한 실정입니다.

    지난 주말, 인천과 강릉을 잇는 6번 국도.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도로 위를 시원하게 내달립니다.

    휴게소는 잔뜩 멋을 낸 라이더들과 주인보다 더 화려하게 치장한 바이크들로 북적입니다.

    혼자 여행에 나선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친구 또는 동호회 사람들과 그룹 주행을 즐깁니다.

    ◀원은석▶
    "일상생활에 있다가 이렇게 한 번 나오면 기분 좋잖아요. 시원하고 스트레스 한방에 쏵"

    하지만 그룹 주행은 단체 폭주 행위로 간주돼 걸핏하면 단속 당하기 십상이라고 합니다.

    ◀길준수▶
    "무작위로 잡는다는 거? 일단 바이크만 대면 무조건 잡고 본다는 거. 차하고는 차별화를 많이 두는 게 사실이니까."

    ◀심경연▶
    "세금도 내고 보험도 들고 이제 이륜차 환경검사도 하고, 규제만 있고 풀어주는 건 없으니까 많이 불편하죠."

    오토바이에 탄 채 촬영을 하고 있는 이진수 씨.

    불법개조를 한 오토바이나 난폭운전을 하는 라이더들을 적발하는 이른 바 모파라치 입니다.

    사비를 털어가며 같은 라이더들에게 눈총 받을 활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진수 회장/수입이륜차협회▶
    "우선 우리가 변해야죠. 이건 명백한 불법행위고,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이러지 않으면서 우리 도로가 불합리하니까 '풀어' 하면 안 풀 방법이 없어요. 우리가 약점 투성인데, 우리가 개판을 치는데 ‘야, 열어’하면 콧방귀 뀌죠."

    불합리한 정책과 법규를 바꾸기 위해선 라이더들 스스로 오토바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부터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등록된 이륜차는 2백여 만 대.

    누군가는 생계의 절실함에,

    또 누군가는 출퇴근이나 취미 등의 필요에 따라 이륜차를 이용합니다.

    그들 스스로 성숙한 운전문화를 갖추는 것이 일단 선행돼야할 과제겠지만, 위험하다, 무질서하다는 선입견 속에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차단하고, 애써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고려해야 할 때가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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