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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송양환 기자

합법? 불법?

합법? 불법?
입력 2014-04-14 08:47 | 수정 2014-04-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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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규모 자본의 자영업을 꿈꾸는 이들이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푸드트럭'.

    최근 일반트럭을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일이 합법화되면서 규제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푸드트럭을 합법적으로 만들어도 장사를 하러 도로에 나서는 순간 불법인 현실은 여전합니다.

    임대료를 내고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 그리고 노점상들도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들이 꼬여있는 푸드트럭, 어떻게 될까요?

    =============================

    반짝반짝 빛나는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

    원두를 갈아주는 그라인더와 '커피의 눈물'이라 불리는 더치커피 시설.

    생과일을 갈아 넣어 만드는 스무디까지.

    1톤 화물차에 커피전문점을 옮겨놨습니다.

    ◀이은엽/푸드트럭 업주▶
    "이 고급스러움을 계속 유지해서 나가려면 좋은 기계하고, 인테리어를 신경쓸 수밖에 없었어요."

    아파트 주차장에서 커피 만들기에 열중인 이은엽, 정우학 씨는, 800만 원짜리 중고 트럭을 구입해 1500만원을 들여 이동 카페로 꾸몄습니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푸드트럭입니다.

    ◀이은엽/푸드트럭 업주▶
    "자신감도 있고요 내가 노력한 만큼 벌수 있다는 도전 같은 게 생기니까 기분이 업되어 있긴 해요 사실."

    첫 출근.

    아침부터 고속도로를 내달려 서울의 한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선 오늘 알뜰 장터가 열립니다.

    ◀정우학/푸드트럭 업주▶
    "장터에 커피트럭이 처음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고객들이 신기하고 해서 많이 찾으실 것 같아요."

    역사적인 개시 손님이 왔습니다.

    아메리카노 한잔 2천 5백 원이 첫 매출입니다.

    ◀김미희▶
    "분위기 좋아요. 이런 데에선 처음 봤거든요. 이렇게 아파트에 생긴 건 처음 봤는데, 신기하고 분위기 좋아서 한 번 먹어보러 왔어요."

    ◀이은엽/푸드트럭 업주▶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서 편안하게 가족처럼 와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고급스러운 커피 전문점이 되고 싶습니다."

    적은 자본, 그리고 손님 많은 곳을 직접 찾아다닐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푸드트럭은 누군가에겐 젊음을 밑천으로 한 도전, 누구가에겐 절실한 생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일상의 친근한 벗이기도 하지만, 불법 노점상이라는 오명도 따라다니는 이 푸드트럭을 정부가 합법화하겠다고 나섰는데요.

    문제가 다 풀리는 것일까요?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개혁 끝장 토론.

    작심한 듯 이런저런 요청이 터져 나오고..

    ◀배영기/푸드트럭 개조업체 대표▶
    "대통령님 그리고 정부 관계자 여러분/중고트럭을 푸드트럭으로 개조시 구조변경 승인을 받지도 못하고 자동차 검사의 어려움도 따르고 있습니다."

    장관들은 즉시 규제개혁을 약속했습니다.

    ◀서승환/국토교통부 장관▶
    "빠른 시일 내에 (법)개정을 해서 1톤 화물자동차를 푸드카로 바꾸는 것이 적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승/식품의약품안전처장▶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서 구조개선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자동차등록증만 첨부하면 그 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트겠습니다."

    10분 만에 풀린 규제개혁의 상징.

    푸드트럭은 이렇게 양지로 나왔습니다.

    며칠 전 여의도 벚꽃축제.

    사람이 모이는 곳에 먹거리가 빠지지 않는 법,

    '푸드 트럭'과 각종 노점이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상인들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서둘러 짐을 꾸리고, 줄줄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노점상인▶
    ("어디 가세요 갑자기?")
    "지금요? 도망가는 거예요."
    ("왜 도망가세요? 갑자기..")
    "단속 나와가지고요."

    구청 단속반이 가스통을 압수하고, 음식 조리 기구마저 가져가려 하자 노점상인은 필사적으로 매달립니다.

    ◀SYN▶
    ("놔요 놔요!")
    "아니야 아니야 갈게 이제. 다음에 오면 내가 치울게."
    ("아침에도 말했지 지금!")
    "다음에 오면 빼앗아가도 내가 말 안 할게."

    합법화가 된다고 했는데 이들은 여전히 단속의 대상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정부의 푸드트럭 합법화 방안은 크게 3가지.

    먼저 특수차량으로 따로 분류됐던 푸드트럭을 적재 면적 0.5제곱미터만 확보하면 화물차로도 개조할 수 있게 길을 열었습니다.

    대통령 앞에서 규제를 풀어달라 외쳤던 배영기 사장.

    푸드트럭 개조업을 해온 배씨는 이번 조치로 9년간 따라다녔던 불법이라는 꼬리표를 뗐습니다.

    ◀배영기/푸드트럭 개조업체 대표▶
    "불법이라는 부분을 알고 차를 제작을 했지만, 저한테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죠. 법률이 미처 사회적 문화적 트렌드를 쫓아오지 못해서 공백기에 발생되는 부분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었고, 이제는 정당한 이유를 찾았구나 라는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합법적으로 개조된 푸드트럭은 식품위생법상 하나의 점포로 인정받게 돼 휴게음식점 사업자등록이 가능해집니다.

    기존엔 음식점을 내기 위해선 반드시 건축물 대장이 필요했는데, 푸드트럭은 자동차등록증이 건축물 대장을 대신하도록 규정을 고친 겁니다.

    이렇게 푸드트럭을 만드는 것까지는 해결이 됐는데, 문제는 어디 가서 장사를 하느냐가 됐습니다.

    트럭을 몰고 도로에 나와 장사하는 건 여전히 단속 대상입니다.

    식품위생법, 도로교통법 상 길거리 음식 판매는 여전히 규제 대상이기 때문인데요.

    푸드트럭은 합법인데 영업은 불법인 상황이 된 것입니다.

    정부는 일단 도로가 아닌, 전국 355개 대형 공원이나 유원지 안에서 푸드트럭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요셉/민간합동 규제개선추진단 전문위원▶
    "그냥 길거리에서 하면 우리나라의 특수성과도 맞지 않고 형평성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이 장소를 355개라는 유원시설이라는 건물로 생각을 하시면 쉬운 것이죠. 그래서 건물주와의 계약이 아니라 유원시설 관리자의 허가를 통해서.."

    그런데 정작 유원지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미 음식 파는 곳들이 꽉 차있는 데 이들을 또 들이기는 어렵고, 공원 안에서 트럭이 돌아다니게 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A유원지 관계자▶
    "군데군데 식당이 다 있어요. 그분들 사용료를 비싸게 내서 들어와서 하고 있는데 그분들 반발이 심하죠."

    ◀B유원지 관계자▶
    "(유원지는)기본적으로 손님들이 많이 오시는 곳이잖아요. 손님들 사이를 비집고 그런 걸 움직이고 그런 게 쉽지 않아요. 그거로 인해서 안전사고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받아주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숫자는 많아야 2,3백 대에 불과할 전망인데, 푸드트럭은 서울에만 700여 대가 있고, 전국적으론 3천 대가 넘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또 이번 합법화조치로 영세민들이 운영하는 푸드트럭 시장에 자본력 있는 대형업체가 진출한 거란 전망도 있습니다.

    ◀박기환 교수/중앙대 식품공학과▶
    "장소 사용료 내야 되고, 위생 관리하는 데 뭐 해야 되고, 들어가는 돈이 많다는 거거든요. 오히려 지금 푸드트럭은 생계를 위한 노점상들을 위한 것보다는 대형 큰 기업들이나, 큰 유원지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용도밖에는 안 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당장 길거리 영업을 허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가게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 중인 안희용 씨.

    몇 달 전까진 서울 이태원에서 잘 나가던 푸드트럭 사장님이었습니다.

    3년 전 1천 6백만 원으로 푸드트럭을 만들어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를 팔아 맛집으로 소문도 났습니다.

    ◀안희용▶
    ("장사 잘 됐을 때는 하루에 몇 개까지 팔아보셨어요?")
    "최고 찍었을 때는 250개."

    지난 1월엔 맛집을 소개하는 방송에 두 차례나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방송이 나가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장사를 중단했습니다.

    심해진 단속에 나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영업시간도 일정하지 못해 일부러 찾아온 손님을 돌려보내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안희용▶
    "단속 나온 날은 다른 데다 차 세워놓고 그 다음에 전화 오면 여기서 구워가지고 그쪽까지 가서 드리고 그렇게 했었어요. 파주, 일산,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 많으니까 그런 분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결국 안 씨는 푸드트럭을 포기하고 대출에 전세금까지 빼서 가게를 빌렸습니다.

    푸드트럭이 양지로 나왔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입니다.

    특히 기존 노점상과의 형평성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부가 푸드트럭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발표하자, 비싼 임대료를 내고 장사하는 점포 상인들은 물론, 노점상들까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과일 트럭도 있고, 물건 파는 노점도 있는데 푸드트럭만 합법화해주는 건
    '역차별'이라는 겁니다.

    ◀유의선/전국 노점상 총연합회 정책위원장▶
    "노점상에게 너희 푸드트럭 받아서 합법적으로 유원지 들어가서 해라. 이렇게 얘기하면서 또 단속을 할 거잖아요. 떡 하나 던져주는 형태로 푸드트럭 인정해 줘. 이러면 이쪽에서 반발해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어려운 사람들끼리 더 반목하게 만드는 이런 정책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요."

    푸드트럭의 본고장 미국은 요건에 맞게 차량을 개조한 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게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프랜시스/미국 워싱턴 푸드트럭 업주▶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2시 반까지 4시간 동안 장사하도록 허가받았어요."

    우리나라도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권의 상황과 수요 등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푸드트럭이나 노점의 영업을 허용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 10만 명 당 식당 수가 다른 나라 대도시에 비해 2-3배 가까이 많고, 새로 문을 연 식당의 절반 이상이 3년 안에 망한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로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자영업자 비율을 고려할 때 당장 실시하는 건 무리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시간을 갖고 조정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겁니다.

    정부는 푸드트럭 합법화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먼저 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요셉/민간합동 규제개선추진단 전문위원▶
    "그걸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의 수요가 굉장히 늘고 있었잖아요. 그분들이 500명이 됐든 아니면 몇 명이 됐든 실효성의 문제는 그 다음의 문제이고, 일단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꿈꿔보지도 못했던 사업을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이게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여의도 벚꽃축제의 밤.

    토스트 트럭 사장님은 단속반에 가스통을 빼앗겨 일찌감치 장사를 접고 있었습니다.

    ◀조주현/푸드트럭 업주▶
    "합법화한다고 그래서 안이한 생각이지만 편한 마음으로 나오긴 했거든요. 그런데 뭐 피부로 와 닿는 건 없어요."
    ("오늘 많이 파셨어요? 어때요?")
    "아뇨, 손해예요. 가스통 뺏기고. 처음으로 나왔는데 딱 나오자마자 지금 상황이 이렇게 돼서 너무 속상해요."

    합법화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한 장애인 푸드트럭 사장도 현실의 벽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윤주호/푸드트럭 업주▶
    "규제개혁이라는 게 저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했는데, 이렇게 막상 생각해보고 알아보고 하니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불필요한 규제를 하루빨리 푸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빈틈없이 챙겨야 애초에 규제를 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서민 생계수단으로 활성화하면서도 기존 노점과의 공존을 해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 조금은 느리더라도 꼼꼼히 검토해야 푸드트럭은 제대로 달릴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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