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강나림 기자
강나림 기자
트라우마 치유 어떻게?
트라우마 치유 어떻게?
입력
2014-05-12 08:43
|
수정 2014-05-12 09:52
재생목록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이 남아있는 가운데,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안산시에 마련된 트라우마 센터는 구조된 학생들과 희생자 가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고, 정부는 올 연말까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한 상황.
슬픔과 분노, 반성과 질책이 뒤섞여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
세월호 희생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안산 합동분향소.
단원고 학생들이 줄지어 버스에서 내립니다.
세월호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75명의 학생들이 친구들 앞에 겨우 섰습니다.
수백개의 영정이 모두 아는 얼굴입니다.
참지 못한 눈물이 흐르고, 결국 주저앉고 맙니다.
세월호 참사 한 달 째.
여전히 이 곳 팽목항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통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이들과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세월호의 충격과 슬픔이 전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가족, 그리고 생존자, 안산시민들까지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일반국민들도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유는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안산 단원보건소 안에 차려진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
아침부터 심리 상담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각자 어디론가 출동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집집마다 찾아가 상태를 살피는 겁니다.
지난 1일 문을 열었지만 이곳을 제 발로 찾아오는 가족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는 치료가 시급한 사람들, 그래서 상담가들은 매일 방문 상담에 나섭니다.
◀김선정/심리 상담사▶
"처음엔 문도 안 열어주시고 됐다고 가라고 아무도 안 만나고 싶다고...이제 인터폰 안에서 말씀하시지만 저희 정말 마음 담아서 식사는 하셨는지 잠은 좀 주무세요? 라고 인사드리면 그 때 문 열어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사고 이후 심리 상담가들이 직접 만난 희생자 가족은 1백여 명.
이들의 심신은 위험할 만큼 무너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아직 대부분 일상적인 대화조차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심민영/정신과 전문의▶
"내가 자식을 이리 잃고서 이 정도도 뭐, 내가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건 내가 그래야 마땅하다..그런 것도 사실 자책에 가깝거든요. 본인 몸이 상하시고 이럴 정도로 계시면 저희가 설득을 해서 상담을 이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어요."
돌봐야할 사람도 많고 갈 길도 먼 데 이곳에 상주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5명.
이마저 원래 일하던 곳에서 급한 대로 출장을 온 겁니다.
상담 장소도 마땅치 않아 보건소 내 커피숍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복지부가 트라우마 센터를 향후 3년 동안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상시 체제로 운영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 등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참사 때문에 센터를 급하게 마련하다보니, 트라우마의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 상태는 아주 심각합니다.
제주도 공사 현장에 가려고 세월호를 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42살 故 이광진 씨.
칠순 노모는 아들 회사 사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광진 씨가 세월호에 탄 걸 알았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故 이광진 씨 어머니▶
"광진이가 그 배를 탔다는 거야. 그래서 듣는 순간에 숨이 멎는 것 같았어. 진짜 솔직한 얘기지. 벌벌벌 떨리고 전화를 어떻게 받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아들의 흔적.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사진을 보다가, 불쑥 불쑥 고통이 찾아옵니다.
◀故 이광진 씨 누나▶
"그 물 속에서..엄마한테는 말씀은 안 드렸는데 물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생각만 하면 진짜 가슴이 미어져요 진짜로."
사고 이후 가족들은 두통과 악몽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2580은 이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 전문의 진단을 의뢰했습니다.
뇌파와 스트레스 지수 등을 검사한 결과 고인의 어머니와 누나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습니다.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
◀배활립 교수/명지병원 외상심리치유센터▶
"불안이나 우울증상도 꽤 높게 좀 심각한 수준으로 나왔고요. 근육 긴장도도 많이 올라가 계시고, 실제로 불면이라든지 두통 이런 것도 많이 호소하고 게시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이후 반복적으로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올라 고통을 겪는 것으로, 트라우마라고도 합니다.
보통 사고 한 두달 이후 진단이 가능하고 몇 년이 지나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해 오랜 기간 추이를 지켜봐야 합니다.
비용도 꽤 듭니다.
트라우마 진단을 위한 심리 검사만 40만 원.
긍정적인 기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구 운동 치료만 2백만 원이 드는데,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도 제각각이라 언제까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할지 예측이 힘듭니다.
정부는 유가족과 생존자 등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해 올해 연말까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지원 대책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피해자들은 비용 자체도 부담스럽거니와 선뜻 치료에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故 이광진 씨 매형▶
"병원 가서 "저희 세월호 가족입니다", (라고 해야하는데) 솔직히 세월호 가족이라고 말하는 거 자체도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크거든요."
이런 증상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참사의 생존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38살 김 모씨.
사고 이후 매일 악몽에 시달립니다.
◀김 0 0/세월호 생존자▶
"그 물살에 못 나오는 사람이 되는 꿈이었어요. 나갈 수도 없고 물은 가득차서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 잠에서 깨서 한참을 울었어요.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미안함이, 한 명이라도 더 살렸어야 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김 0 0/세월호 생존자▶
"(나라도) 아이들한테 나오라고 했었으면 이렇게까진 되진 않았겠죠. 그 때 말 한마디라도 했었으면.."
김 씨처럼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혼자 고통을 감내하다
오랜 기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의 경우 사고 이후 1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77%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1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절반은 증상이 계속됐고, 12%는 4년이 지난 뒤까지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간 추적 연구나 지원은 없었습니다.
◀황명애/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이후에 수습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정말로, 지금도 고통 받고 있거든요. 숨을 못 쉬는 거예요. 저희들처럼 이렇게 11년이라는 세월, 저희들 이렇게 갈 줄 알았나요? 몰랐죠."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오랜 기간 보살핌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고통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이나 알콜 중독, 가정 불화와 실직, 극단적으로는 자살 시도 등 사고 직후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 스스로를 돌볼 여력을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종류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채정호 교수/서울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제일 끔찍한 일이 자살, 난 따라 죽는다 하시는 분들이 있겠고요. 부부사이가 극도로 나빠지는 경우도 굉장히 많고요. (사고 이후) 부모들의 이혼률이 높아지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신체 건강도 나빠지는 경우도 많이 있고요."
이번 참사는 규모가 컸던 만큼 트라우마의 대상과 여파 역시 엄청납니다.
수습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 대부분이 큰 심리적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팽목항에서는 지금도 소방 구급 인력이 사흘에 한번 꼴로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시신을 확인하는 부모의 오열을 천막 밖에서 들을 때, 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이동할 때. 너무 힘든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선홍진 구급대원/전남소방본부▶
""딸아, 딸아," 하면서 슬퍼하시는거 보니까 그냥 가슴이 아프고 그 때는 저희도 아무 정신이 없고 그냥 멍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명안진 구급대원/전남소방본부▶
"제일 힘든 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이송하는 시간이) 너무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저희가 여기서 공설운동장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거든요. 그 30분이 정말 3시간, 30시간 이렇게 느껴집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웃을 잃은 안산 주민들.
그리고 참사의 전 과정을 TV로 지켜봤던 일반인들까지.
그래서 이번 참사가 남긴 상처는 그 규모와 깊이가 이전과는 또 다릅니다.
'세월호 트라우마'가 또 하나의 사회적 재난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 때문입니다.
◀홍성태 교수/상지대 인문사회과학대학▶
"전원 구조됐다고 해서 다들 기뻐했는데 이게 결정적인 오보였던 것이죠. 그 때부터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면서 구조되는 과정을 다 지켜봤어요. 그런데 이게 구조가 아니라 사실은 죽어가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너무나 끔찍하고 참담한 광경의 목격자가 되어버렸던 거죠."
일반국민들 역시 슬픔과 안타까움, 죄책감,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성혜▶
"너무 화가 나요.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며칠을 울고 자기가 일상적으로 하던 일도 이렇게 해도 되나라고 스스로 죄책감을 갖는데.."
◀서장원▶
"이런 사회적 시스템을 만든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조차도 반항하지도 않고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이 있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은 이같은 '전 국민 트라우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불신, 죄책감의 근원을 제대로 짚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참사를 초래한 선사와 선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진상규명은 물론 해경과 정부에 대해서도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수영 교수/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내가 믿지 못할 곳을 어느 정도 믿을만한 곳으로 바꾸는 어떤 노력들이 보인다 이제야 믿을 수 있겠구나 그런 전제가 없으면 뭔가 희망이 없는 이런 느낌을 계속 가지실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3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9.11 테러 사건 이후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은 물론 주변인과 목격자들까지 육체적 후유증과 심리치료 모두 지금까지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테레사 골멘/건강 프로그램 담당자▶
"10년이 지나서 치료를 받는데 필요한 관련 서류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비극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는 대형 기념물을 세워 전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대형사고가 벌어져도 그 때 뿐, 얼마 지나면 잊혀지고 마는 일들이 너무 자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윤근/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는 순간부터 2003년 지하철 참사 속으로 온 가족이 푹 빠져들었어요. 하루 종일 TV 화면을 보면서도 똑같아도 어떡하면 그렇게 똑같은가 가슴을 치면서.."
◀채정호 교수/서울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러한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 사건의 당사자와 유가족한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으로 지금까지 문제를 겪었던, 그리고 나름대로 자기의 노력으로 회복하려고 애써왔더 모든 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대형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그 진정한 치유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할 것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희생자를 기억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이더라도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잠시 슬퍼하고 분노했다가 잊어버리고, 그러다 비극이 반복된다면 우리사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산시에 마련된 트라우마 센터는 구조된 학생들과 희생자 가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고, 정부는 올 연말까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한 상황.
슬픔과 분노, 반성과 질책이 뒤섞여 나타나는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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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들이 안치되어 있는 안산 합동분향소.
단원고 학생들이 줄지어 버스에서 내립니다.
세월호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75명의 학생들이 친구들 앞에 겨우 섰습니다.
수백개의 영정이 모두 아는 얼굴입니다.
참지 못한 눈물이 흐르고, 결국 주저앉고 맙니다.
세월호 참사 한 달 째.
여전히 이 곳 팽목항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통곡이 흐르고 있습니다.
가까이서 이들과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세월호의 충격과 슬픔이 전국을 뒤덮고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가족, 그리고 생존자, 안산시민들까지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일반국민들도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치유는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안산 단원보건소 안에 차려진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
아침부터 심리 상담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각자 어디론가 출동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집집마다 찾아가 상태를 살피는 겁니다.
지난 1일 문을 열었지만 이곳을 제 발로 찾아오는 가족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는 치료가 시급한 사람들, 그래서 상담가들은 매일 방문 상담에 나섭니다.
◀김선정/심리 상담사▶
"처음엔 문도 안 열어주시고 됐다고 가라고 아무도 안 만나고 싶다고...이제 인터폰 안에서 말씀하시지만 저희 정말 마음 담아서 식사는 하셨는지 잠은 좀 주무세요? 라고 인사드리면 그 때 문 열어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사고 이후 심리 상담가들이 직접 만난 희생자 가족은 1백여 명.
이들의 심신은 위험할 만큼 무너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아직 대부분 일상적인 대화조차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심민영/정신과 전문의▶
"내가 자식을 이리 잃고서 이 정도도 뭐, 내가 어떻게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건 내가 그래야 마땅하다..그런 것도 사실 자책에 가깝거든요. 본인 몸이 상하시고 이럴 정도로 계시면 저희가 설득을 해서 상담을 이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어요."
돌봐야할 사람도 많고 갈 길도 먼 데 이곳에 상주하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5명.
이마저 원래 일하던 곳에서 급한 대로 출장을 온 겁니다.
상담 장소도 마땅치 않아 보건소 내 커피숍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복지부가 트라우마 센터를 향후 3년 동안 운영한다고 밝혔지만 상시 체제로 운영하기 위한 인력과 예산 등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참사 때문에 센터를 급하게 마련하다보니, 트라우마의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의 심리 상태는 아주 심각합니다.
제주도 공사 현장에 가려고 세월호를 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 42살 故 이광진 씨.
칠순 노모는 아들 회사 사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광진 씨가 세월호에 탄 걸 알았습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故 이광진 씨 어머니▶
"광진이가 그 배를 탔다는 거야. 그래서 듣는 순간에 숨이 멎는 것 같았어. 진짜 솔직한 얘기지. 벌벌벌 떨리고 전화를 어떻게 받았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아들의 흔적.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사진을 보다가, 불쑥 불쑥 고통이 찾아옵니다.
◀故 이광진 씨 누나▶
"그 물 속에서..엄마한테는 말씀은 안 드렸는데 물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생각만 하면 진짜 가슴이 미어져요 진짜로."
사고 이후 가족들은 두통과 악몽으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2580은 이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 전문의 진단을 의뢰했습니다.
뇌파와 스트레스 지수 등을 검사한 결과 고인의 어머니와 누나 모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습니다.
지속적인 관찰과 치료가 필요한 상황.
◀배활립 교수/명지병원 외상심리치유센터▶
"불안이나 우울증상도 꽤 높게 좀 심각한 수준으로 나왔고요. 근육 긴장도도 많이 올라가 계시고, 실제로 불면이라든지 두통 이런 것도 많이 호소하고 게시고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이후 반복적으로 사고 당시 기억이 떠올라 고통을 겪는 것으로, 트라우마라고도 합니다.
보통 사고 한 두달 이후 진단이 가능하고 몇 년이 지나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해 오랜 기간 추이를 지켜봐야 합니다.
비용도 꽤 듭니다.
트라우마 진단을 위한 심리 검사만 40만 원.
긍정적인 기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안구 운동 치료만 2백만 원이 드는데,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도 제각각이라 언제까지 어떤 치료를 받아야할지 예측이 힘듭니다.
정부는 유가족과 생존자 등 세월호 피해자들에 대해 올해 연말까지 치료비 전액을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지원 대책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피해자들은 비용 자체도 부담스럽거니와 선뜻 치료에 나서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故 이광진 씨 매형▶
"병원 가서 "저희 세월호 가족입니다", (라고 해야하는데) 솔직히 세월호 가족이라고 말하는 거 자체도 마음의 부담이 너무 크거든요."
이런 증상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사람들은 참사의 생존자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세월호에서 구조된 38살 김 모씨.
사고 이후 매일 악몽에 시달립니다.
◀김 0 0/세월호 생존자▶
"그 물살에 못 나오는 사람이 되는 꿈이었어요. 나갈 수도 없고 물은 가득차서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그런 상황. 잠에서 깨서 한참을 울었어요. 눈물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미안함이, 한 명이라도 더 살렸어야 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김 0 0/세월호 생존자▶
"(나라도) 아이들한테 나오라고 했었으면 이렇게까진 되진 않았겠죠. 그 때 말 한마디라도 했었으면.."
김 씨처럼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혼자 고통을 감내하다
오랜 기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의 경우 사고 이후 1년 5개월이 지난 시점에 77%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1년이 지났을 때까지도 절반은 증상이 계속됐고, 12%는 4년이 지난 뒤까지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피해자들에 대한 장기간 추적 연구나 지원은 없었습니다.
◀황명애/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이후에 수습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정말로, 지금도 고통 받고 있거든요. 숨을 못 쉬는 거예요. 저희들처럼 이렇게 11년이라는 세월, 저희들 이렇게 갈 줄 알았나요? 몰랐죠."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오랜 기간 보살핌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고통으로 인해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이나 알콜 중독, 가정 불화와 실직, 극단적으로는 자살 시도 등 사고 직후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 스스로를 돌볼 여력을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종류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채정호 교수/서울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제일 끔찍한 일이 자살, 난 따라 죽는다 하시는 분들이 있겠고요. 부부사이가 극도로 나빠지는 경우도 굉장히 많고요. (사고 이후) 부모들의 이혼률이 높아지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신체 건강도 나빠지는 경우도 많이 있고요."
이번 참사는 규모가 컸던 만큼 트라우마의 대상과 여파 역시 엄청납니다.
수습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 대부분이 큰 심리적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팽목항에서는 지금도 소방 구급 인력이 사흘에 한번 꼴로 24시간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시신을 확인하는 부모의 오열을 천막 밖에서 들을 때, 이들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이동할 때. 너무 힘든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선홍진 구급대원/전남소방본부▶
""딸아, 딸아," 하면서 슬퍼하시는거 보니까 그냥 가슴이 아프고 그 때는 저희도 아무 정신이 없고 그냥 멍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명안진 구급대원/전남소방본부▶
"제일 힘든 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이송하는 시간이) 너무너무 길게 느껴집니다. 솔직히 저희가 여기서 공설운동장까지 30분 정도가 소요되거든요. 그 30분이 정말 3시간, 30시간 이렇게 느껴집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웃을 잃은 안산 주민들.
그리고 참사의 전 과정을 TV로 지켜봤던 일반인들까지.
그래서 이번 참사가 남긴 상처는 그 규모와 깊이가 이전과는 또 다릅니다.
'세월호 트라우마'가 또 하나의 사회적 재난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 때문입니다.
◀홍성태 교수/상지대 인문사회과학대학▶
"전원 구조됐다고 해서 다들 기뻐했는데 이게 결정적인 오보였던 것이죠. 그 때부터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면서 구조되는 과정을 다 지켜봤어요. 그런데 이게 구조가 아니라 사실은 죽어가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너무나 끔찍하고 참담한 광경의 목격자가 되어버렸던 거죠."
일반국민들 역시 슬픔과 안타까움, 죄책감,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성혜▶
"너무 화가 나요.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며칠을 울고 자기가 일상적으로 하던 일도 이렇게 해도 되나라고 스스로 죄책감을 갖는데.."
◀서장원▶
"이런 사회적 시스템을 만든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저조차도 반항하지도 않고 바꾸려고 생각하지도 않고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이 있지 않았을까.."
전문가들은 이같은 '전 국민 트라우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불신, 죄책감의 근원을 제대로 짚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참사를 초래한 선사와 선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진상규명은 물론 해경과 정부에 대해서도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수영 교수/을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내가 믿지 못할 곳을 어느 정도 믿을만한 곳으로 바꾸는 어떤 노력들이 보인다 이제야 믿을 수 있겠구나 그런 전제가 없으면 뭔가 희망이 없는 이런 느낌을 계속 가지실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3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9.11 테러 사건 이후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은 물론 주변인과 목격자들까지 육체적 후유증과 심리치료 모두 지금까지 전액 지원하고 있습니다.
◀테레사 골멘/건강 프로그램 담당자▶
"10년이 지나서 치료를 받는데 필요한 관련 서류가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비극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는 대형 기념물을 세워 전 국민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대형사고가 벌어져도 그 때 뿐, 얼마 지나면 잊혀지고 마는 일들이 너무 자주 반복되고 있습니다.
◀윤근/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이번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는 순간부터 2003년 지하철 참사 속으로 온 가족이 푹 빠져들었어요. 하루 종일 TV 화면을 보면서도 똑같아도 어떡하면 그렇게 똑같은가 가슴을 치면서.."
◀채정호 교수/서울 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러한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 사건의 당사자와 유가족한테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으로 지금까지 문제를 겪었던, 그리고 나름대로 자기의 노력으로 회복하려고 애써왔더 모든 분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대형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그 진정한 치유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회 전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서 시작할 것입니다.
고통스럽더라도 희생자를 기억하고, 시간과 비용을 들이더라도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바로잡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요합니다.
잠시 슬퍼하고 분노했다가 잊어버리고, 그러다 비극이 반복된다면 우리사회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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