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송양환 기자
송양환 기자
'두부전쟁' 2라운드
'두부전쟁' 2라운드
입력
2014-05-19 08:50
|
수정 2014-06-17 11:26
재생목록
요즘 예식장 업계가 떠들썩합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개인 업자들이 위기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다. 통신 대기업이 꽃배달 서비스에 진출했고, 또다른 대기업은 오토바이 퀵서비스에까지 손을 댔다가 거센 비판에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마찰을 줄이기 위해 3년 전 사회적 합의로 탄생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자, 그래서 함께 살자는 길은 여전히 먼 것일까요.
=============================
요즘 예식장 업계가 시끄럽습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예식장업에 뛰어들며 생긴 일입니다.
기존 중소예식장 업주들은 업계가 초토화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예식장 뿐 아니라 일본 라면집, 꽃 배달, 심지어 계란 유통에까지 대기업들이 뛰어들며 이른바 '골목상권' 전쟁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예식장 아펠가모.
교회 예배당 형식의 이른바 '채플 웨딩'으로 유명한 이곳은 1년 전에 가도 예약하기가 어렵습니다.
◀SYN▶
"11월달이랑, 12월달도 날짜가 조금 들어와서 올해는 다 찼어요."
(3월부터는 좀 많이 있어요?)
"3월도 토요일은 마감됐어요."
이곳을 운영하는 건 대기업 CJ푸드빌.
2011년 잠실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지난해 서울 반포와 광화문에 잇따라 2, 3호점을 열었습니다.
◀웨딩플래너▶
"일반적인 웨딩홀, 단독적으로 사장님들이 하는 웨딩홀들은 그 정도 위치에, 규모하려면 거의 힘들죠. 말 그대로 대기업이니까 가능한 위치고 자리고 시설이고.."
신랑신부와 하객을 유치해오는 결혼 컨설팅업체, 즉 웨딩플레너들에겐 중소 예식장이 지급하는 것보다 서너 배 많은 리베이트를 뿌렸다고 합니다.
◀웨딩플래너▶
"일반적인 웨딩홀 (하객 1인당) 기본 천원 리베이트가 있는데 거기는 이천원, 삼천원 더 준다 하면 아무래도 한 번 더 여기 한번 가보세요 라고 할 수밖에 없죠."
예식장 뷔페의 식자재는 또 다른 계열사인 CJ프레시웨이를 통해 공급받습니다.
반면, 같은 지역에서 2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이 예식장은 예약명부가 텅 비어 있고, 매출도 40%나 떨어졌습니다.
10억 원을 들여 시설을 정비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에 홍보, 영업능력까지 모두 앞서는 대기업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호소합니다.
◀황의암/AW컨벤션센터 대표▶
"CJ만 유독 이 전문웨딩홀 형태로 일반 중소업자들이 하는 그런 형태의 가격, 그런 측면을 공략해서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큰 그물로 큰 배로 큰 고기를 잡을 생각을 해야지.."
풀무원, CJ, 오뚜기 등 내로라하는 식품 대기업들은 계란 유통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는 않고, 계란을 납품 받아 자신들의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남무현/계란유통협회장▶
"똑같은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이 기업브랜드를 달면 풀무원 계란이 되고 오뚜기가 되고 CJ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브랜드를 가지고 라벨지를 판다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품질의 소상공인들의 계란보다 대기업의 계란은 개당 100원 정도 비싸지만, 이름값 덕에 마트 진열대에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는 어김없이 대기업 계란이 차지합니다.
대형마트는 이미 80%를 장악했습니다.
◀남무현/계란유통협회장▶
"풀무원이나 CJ, 오뚜기는 다 영업사원이 상주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좋은 자리를 예를 들어서 설령 놓더라도 영업사원이 와서 바꿔 놓아버립니다."
이밖에 통신회사인 KT는 자회사를 통해 꽃배달과 커피전문점 사업에 나섰습니다.
LG패션에서 사명을 바꾼 LF는 일본 라면 프랜차이즈와 해산물 음식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모두 사업 다각화입니다.
◀KT 관계자▶
"매출이 줄고 있는 사업을 보완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국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LF (前 LG패션) 관계자▶
"패션을 포함해서 의식주를 다 아우르는 생활문화기업으로 나가겠다는 차원에서 외식업도 일종의 생활문화다."
골목상권까지 파고드는 대기업,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중소기업.
그래서 정부는 3년 전 상생과 동반성장,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적 공감 속에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영세업종에선 대기업이 확장을 자제하라는 데요.
그 후 3년, 상황은 어떻게 변했고, 이 제도의 취지는 지켜지고 있을까요.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 피해를 봤다는 중소기업들이 지정을 요청하면 동반성장위원회가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합의를 통해 지정하는 방식입니다.
◀정운찬/동반성장위원회 前 위원장▶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마련된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된 민주주의 정신을 부탁드립니다."
지정되면 중소기업은 3년 동안 합의안 내에서 보호를 받고, 3년이 지나면 자동 소멸하지만, 심사를 거쳐 한 번에 한해 재 지정될 수 있습니다.
현재 두부, 김, 청국장 같은 식품과 세탁비누, 차량용 블랙박스 같은 공산품, 서점과 제과점 같은 서비스업까지 현재 100개 품목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올 하반기 82개 품목에 대한 지정이 해제됩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재지정 절차가 시작되는데 이를 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두부입니다.
한 대형마트의 두부 코너.
진열대의 대다수는 풀무원, CJ, 대상 등 대기업 3사의 두부들이고, 중소업체 두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포장두부 시장의 80% 이상을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부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뒤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게 된 건 여섯 모 크기의 대용량 포장두부 뿐, 다른 모든 두부 종류는 사업이 가능합니다.
현재 전체 두부시장의 20% 정도를 1천 5백 개 중소 업체들이 나눠 갖는 실정입니다.
◀최선윤/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장▶
"일본은 사실 우리보다 몇 배의 큰 두부시장인데도 대기업은 두부 안 만듭니다. 소기업, 3, 4 대째 가내를 이은 중소기업들이 일본 두부시장을 평정하고 있고요."
그런데 대기업들은 이 규제마저 풀어줄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뭘까.
대기업들은 국산콩 가격 하락을 내세웁니다.
대기업들이 두부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게 돼 국산콩 구매량이 줄었고, 이 때문에 콩값이 하락해 농민들만 피해를 봤다는 겁니다.
◀유환익/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대기업들의 수요가 줄어들면 당연히 가격이 떨어지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에 국산콩의 수요를 막음으로써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농민들의 소득이 (줄고) 생산량 자체가 팔 곳을 못 찾는 거죠."
중소기업들은 펄쩍 뜁니다.
적합업종에 지정된 뒤에도 대기업들이 1+1 특가 행사와 판매사원까지 동원해 두부를 팔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두부를 더 만들지 못해 콩 값이 떨어졌다는 건 억지라는 겁니다.
◀최선윤/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장▶
"적합업종 자체를 흔들고 혼란시키는 어떤 내용 아닌가 그렇게 보여지고요, 그건 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11월 농민단체와 대기업, 정부관계자가 모여 국산콩 가격 하락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2580이 입수한 당시 회의록을 보면 대기업들은 콩값이 떨어진 건 자신들이
안 사서가 아니라 콩 생산량이 많아진데다 불경기까지 겹쳐서 발생한 거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CJ(음성대역)▶
"불경기로 수요가 위축되어 3배 비싼 국산콩두부 판매가 늘지 않고 있습니다. 국산콩 문제 해결 방안에는 많은 요소가 있는데, 이것(적합업종) 때문 아니냐고 하면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풀무원(음성대역)▶
"대기업 3사가 수매할 수 있는 국산콩 물량은 최대 2만 톤을 넘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정부가 수매를 통해 비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순대도 올해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됩니다.
3년 전엔 사업을 접을까 고민했다는 김만제 사장.
적합업종에 지정된 뒤 위생 시설을 강화하고, 생산라인을 자동화해 위해요소 중점관리, HACCP 인증도 받았습니다.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건 대기업과 경쟁할 시간을 벌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입니다.
◀김만제/선젠제품 대표▶
"1차적으로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거고요, 2차적으로는 대기업하고 경쟁하는 구도에서 맞서기 위한 시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적합업종으로 보호받는 건 재 지정된다 해도 앞으로 3년이 최대이고, 그 이후엔 대기업이 들어와도 막을 수 없어 순대 업계는 늘 불안합니다.
◀방재홍/순대산업협동조합 사무장▶
"대기업들이 들어온다면 사실 저희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그 자본, 유통 거기에는 저희가 당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전경련은 적합업종 제도를 '나쁜 규제'로 규정하고, 올해 지정이 끝나는 82개 품목 전체에 대한 효과를 분석해 문제를 제기할 방침입니다.
LED 전구를 비롯해 지정품목 전반에서 국내 대기업이 역차별 받는 사이 외국계 기업만 점유율을 높였다며, 산업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입장입니다.
◀유환익/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대기업들도 들어와서 건전한 경쟁력을 갖춰야 건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칸막이 규제를 해 놓으면 그 내에서 결코 경쟁할 의지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산업 전체의 생태계는 위협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것인 만큼 재지정은 물론 대기업이 침범한 새로운 품목도 추가로 넣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재광/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시장 생태계도 살아나기 위해서는 소기업,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기본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런 측면이고요. 이건 해보니까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건 뺄 필요성도 있죠. 그런 것들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잘 합의해서 조정을 하면 좋겠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립니다.
국가 간의 장벽이 사라진 시장에서 통상마찰까지 일으킨다는 우려와 함께,
◀조동근 교수/명재대학교 경제학과▶
"동등한 어떤 내부적인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외국 기업들로서는, 특히 FTA는 두 나라 간의 직속의 어떤 관계이기 때문에 좀 넓죠. WTO보다 이게 시비가 붙죠. 그리고 외식 업체는 이미 시비가 붙은 걸로 알고 있어요."
대기업의 공세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시각이 공존합니다.
◀김문겸 교수/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과▶
"동네 도랑에서 동네 스케이트대회 열렸는데 거기 김연아가 와가지고 싹 휩쓸어버리고 와 1등이다. 이거 의미가 없잖아요. 미들급은 미들급끼리 싸우고 그다음에 헤비급은 헤비급끼리 싸우는 게 그게 공정한 경쟁이라고요."
자유로운 경쟁이냐, 약자에 대한 배려냐,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속속 진출하면서 개인 업자들이 위기로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다. 통신 대기업이 꽃배달 서비스에 진출했고, 또다른 대기업은 오토바이 퀵서비스에까지 손을 댔다가 거센 비판에 철수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마찰을 줄이기 위해 3년 전 사회적 합의로 탄생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자, 그래서 함께 살자는 길은 여전히 먼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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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식장 업계가 시끄럽습니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기업들이 예식장업에 뛰어들며 생긴 일입니다.
기존 중소예식장 업주들은 업계가 초토화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예식장 뿐 아니라 일본 라면집, 꽃 배달, 심지어 계란 유통에까지 대기업들이 뛰어들며 이른바 '골목상권' 전쟁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예식장 아펠가모.
교회 예배당 형식의 이른바 '채플 웨딩'으로 유명한 이곳은 1년 전에 가도 예약하기가 어렵습니다.
◀SYN▶
"11월달이랑, 12월달도 날짜가 조금 들어와서 올해는 다 찼어요."
(3월부터는 좀 많이 있어요?)
"3월도 토요일은 마감됐어요."
이곳을 운영하는 건 대기업 CJ푸드빌.
2011년 잠실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지난해 서울 반포와 광화문에 잇따라 2, 3호점을 열었습니다.
◀웨딩플래너▶
"일반적인 웨딩홀, 단독적으로 사장님들이 하는 웨딩홀들은 그 정도 위치에, 규모하려면 거의 힘들죠. 말 그대로 대기업이니까 가능한 위치고 자리고 시설이고.."
신랑신부와 하객을 유치해오는 결혼 컨설팅업체, 즉 웨딩플레너들에겐 중소 예식장이 지급하는 것보다 서너 배 많은 리베이트를 뿌렸다고 합니다.
◀웨딩플래너▶
"일반적인 웨딩홀 (하객 1인당) 기본 천원 리베이트가 있는데 거기는 이천원, 삼천원 더 준다 하면 아무래도 한 번 더 여기 한번 가보세요 라고 할 수밖에 없죠."
예식장 뷔페의 식자재는 또 다른 계열사인 CJ프레시웨이를 통해 공급받습니다.
반면, 같은 지역에서 20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던 이 예식장은 예약명부가 텅 비어 있고, 매출도 40%나 떨어졌습니다.
10억 원을 들여 시설을 정비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에 홍보, 영업능력까지 모두 앞서는 대기업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호소합니다.
◀황의암/AW컨벤션센터 대표▶
"CJ만 유독 이 전문웨딩홀 형태로 일반 중소업자들이 하는 그런 형태의 가격, 그런 측면을 공략해서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큰 그물로 큰 배로 큰 고기를 잡을 생각을 해야지.."
풀무원, CJ, 오뚜기 등 내로라하는 식품 대기업들은 계란 유통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는 않고, 계란을 납품 받아 자신들의 상표를 붙여 판매하는 방식이 대부분입니다.
◀남무현/계란유통협회장▶
"똑같은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이 기업브랜드를 달면 풀무원 계란이 되고 오뚜기가 되고 CJ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브랜드를 가지고 라벨지를 판다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품질의 소상공인들의 계란보다 대기업의 계란은 개당 100원 정도 비싸지만, 이름값 덕에 마트 진열대에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는 어김없이 대기업 계란이 차지합니다.
대형마트는 이미 80%를 장악했습니다.
◀남무현/계란유통협회장▶
"풀무원이나 CJ, 오뚜기는 다 영업사원이 상주돼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좋은 자리를 예를 들어서 설령 놓더라도 영업사원이 와서 바꿔 놓아버립니다."
이밖에 통신회사인 KT는 자회사를 통해 꽃배달과 커피전문점 사업에 나섰습니다.
LG패션에서 사명을 바꾼 LF는 일본 라면 프랜차이즈와 해산물 음식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모두 사업 다각화입니다.
◀KT 관계자▶
"매출이 줄고 있는 사업을 보완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국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LF (前 LG패션) 관계자▶
"패션을 포함해서 의식주를 다 아우르는 생활문화기업으로 나가겠다는 차원에서 외식업도 일종의 생활문화다."
골목상권까지 파고드는 대기업,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중소기업.
그래서 정부는 3년 전 상생과 동반성장,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적 공감 속에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하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영세업종에선 대기업이 확장을 자제하라는 데요.
그 후 3년, 상황은 어떻게 변했고, 이 제도의 취지는 지켜지고 있을까요.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의 사업 확장으로 피해를 봤다는 중소기업들이 지정을 요청하면 동반성장위원회가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고, 합의를 통해 지정하는 방식입니다.
◀정운찬/동반성장위원회 前 위원장▶
"대기업, 중소기업 모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쳐 마련된 결과에 승복하는 성숙된 민주주의 정신을 부탁드립니다."
지정되면 중소기업은 3년 동안 합의안 내에서 보호를 받고, 3년이 지나면 자동 소멸하지만, 심사를 거쳐 한 번에 한해 재 지정될 수 있습니다.
현재 두부, 김, 청국장 같은 식품과 세탁비누, 차량용 블랙박스 같은 공산품, 서점과 제과점 같은 서비스업까지 현재 100개 품목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올 하반기 82개 품목에 대한 지정이 해제됩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재지정 절차가 시작되는데 이를 두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두부입니다.
한 대형마트의 두부 코너.
진열대의 대다수는 풀무원, CJ, 대상 등 대기업 3사의 두부들이고, 중소업체 두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포장두부 시장의 80% 이상을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두부가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뒤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게 된 건 여섯 모 크기의 대용량 포장두부 뿐, 다른 모든 두부 종류는 사업이 가능합니다.
현재 전체 두부시장의 20% 정도를 1천 5백 개 중소 업체들이 나눠 갖는 실정입니다.
◀최선윤/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장▶
"일본은 사실 우리보다 몇 배의 큰 두부시장인데도 대기업은 두부 안 만듭니다. 소기업, 3, 4 대째 가내를 이은 중소기업들이 일본 두부시장을 평정하고 있고요."
그런데 대기업들은 이 규제마저 풀어줄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뭘까.
대기업들은 국산콩 가격 하락을 내세웁니다.
대기업들이 두부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게 돼 국산콩 구매량이 줄었고, 이 때문에 콩값이 하락해 농민들만 피해를 봤다는 겁니다.
◀유환익/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대기업들의 수요가 줄어들면 당연히 가격이 떨어지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에 국산콩의 수요를 막음으로써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농민들의 소득이 (줄고) 생산량 자체가 팔 곳을 못 찾는 거죠."
중소기업들은 펄쩍 뜁니다.
적합업종에 지정된 뒤에도 대기업들이 1+1 특가 행사와 판매사원까지 동원해 두부를 팔고 있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두부를 더 만들지 못해 콩 값이 떨어졌다는 건 억지라는 겁니다.
◀최선윤/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장▶
"적합업종 자체를 흔들고 혼란시키는 어떤 내용 아닌가 그렇게 보여지고요, 그건 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11월 농민단체와 대기업, 정부관계자가 모여 국산콩 가격 하락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2580이 입수한 당시 회의록을 보면 대기업들은 콩값이 떨어진 건 자신들이
안 사서가 아니라 콩 생산량이 많아진데다 불경기까지 겹쳐서 발생한 거라고 스스로 말합니다.
◀CJ(음성대역)▶
"불경기로 수요가 위축되어 3배 비싼 국산콩두부 판매가 늘지 않고 있습니다. 국산콩 문제 해결 방안에는 많은 요소가 있는데, 이것(적합업종) 때문 아니냐고 하면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풀무원(음성대역)▶
"대기업 3사가 수매할 수 있는 국산콩 물량은 최대 2만 톤을 넘지 못합니다. 이 부분은 정부가 수매를 통해 비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순대도 올해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됩니다.
3년 전엔 사업을 접을까 고민했다는 김만제 사장.
적합업종에 지정된 뒤 위생 시설을 강화하고, 생산라인을 자동화해 위해요소 중점관리, HACCP 인증도 받았습니다.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건 대기업과 경쟁할 시간을 벌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 때문입니다.
◀김만제/선젠제품 대표▶
"1차적으로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거고요, 2차적으로는 대기업하고 경쟁하는 구도에서 맞서기 위한 시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적합업종으로 보호받는 건 재 지정된다 해도 앞으로 3년이 최대이고, 그 이후엔 대기업이 들어와도 막을 수 없어 순대 업계는 늘 불안합니다.
◀방재홍/순대산업협동조합 사무장▶
"대기업들이 들어온다면 사실 저희가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그 자본, 유통 거기에는 저희가 당할 수 있는 부분은 없습니다."
전경련은 적합업종 제도를 '나쁜 규제'로 규정하고, 올해 지정이 끝나는 82개 품목 전체에 대한 효과를 분석해 문제를 제기할 방침입니다.
LED 전구를 비롯해 지정품목 전반에서 국내 대기업이 역차별 받는 사이 외국계 기업만 점유율을 높였다며, 산업 경쟁력이 약해졌다는 입장입니다.
◀유환익/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
"대기업들도 들어와서 건전한 경쟁력을 갖춰야 건전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게 칸막이 규제를 해 놓으면 그 내에서 결코 경쟁할 의지가 없어지고, 그러다보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산업 전체의 생태계는 위협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 제도가 중소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것인 만큼 재지정은 물론 대기업이 침범한 새로운 품목도 추가로 넣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재광/전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시장 생태계도 살아나기 위해서는 소기업, 소상공인, 중소기업이 기본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런 측면이고요. 이건 해보니까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건 뺄 필요성도 있죠. 그런 것들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잘 합의해서 조정을 하면 좋겠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립니다.
국가 간의 장벽이 사라진 시장에서 통상마찰까지 일으킨다는 우려와 함께,
◀조동근 교수/명재대학교 경제학과▶
"동등한 어떤 내부적인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외국 기업들로서는, 특히 FTA는 두 나라 간의 직속의 어떤 관계이기 때문에 좀 넓죠. WTO보다 이게 시비가 붙죠. 그리고 외식 업체는 이미 시비가 붙은 걸로 알고 있어요."
대기업의 공세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시각이 공존합니다.
◀김문겸 교수/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과▶
"동네 도랑에서 동네 스케이트대회 열렸는데 거기 김연아가 와가지고 싹 휩쓸어버리고 와 1등이다. 이거 의미가 없잖아요. 미들급은 미들급끼리 싸우고 그다음에 헤비급은 헤비급끼리 싸우는 게 그게 공정한 경쟁이라고요."
자유로운 경쟁이냐, 약자에 대한 배려냐,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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