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80
장인수 기자
장인수 기자
위험천만, 무자격 조종사…항공자격 세탁까지
위험천만, 무자격 조종사…항공자격 세탁까지
입력
2014-06-02 08:51
|
수정 2014-06-0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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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명 승객이 탄 베트남항공 여객기가 김해공항에서 착륙을 앞두고 이리저리 갈 짓자 비행을 하는데...
조종간을 잡았던 부기장은 한국인 김 모씨. 알고 보니 그는 수차례 비행경력을 위조한 무자격 파일럿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동남아와 한국을 오가며 경력을 세탁한 그의 행적을 통해 파일럿 자격제도가 얼마나 허술한 지 짚어봅니다.
=============================
2011년 4월 26일 오전 김해공항.
승객 160여명을 태운 베트남 항공 에어버스 320 여객기가 착륙 도중 큰 사고를 일으킬 뻔 했습니다.
당시 비행기록에 근거해 2580이 비행시뮬레이터로 상황을 재연해봤습니다.
기체를 정확히 돌려 활주로와 일직선이 돼야 착륙할 수 있는데 활주로를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조종간을 잡은 사람은 한국인 부기장 김 모 씨.
활주로 왼쪽에서 진입을 시도하던 부기장은 착륙을 위해 비행기를 급격히 왼쪽으로 틀었습니다.
기체가 45도 넘게 기울어지며 방향을 바꿨지만 이번엔 오히려 활주로 오른쪽으로 벗어나버렸습니다.
다시 활주로 진입을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이번에도 활주로를 벗어났습니다.
활주로를 가운데 두고 상공에서 이리저리 갈 짓자 비행을 반복합니다.
◀이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정말 추락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일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비행을 한 거죠. 활주로 위에서 갈 지 자로..."
다시 고도를 높여 가까스로 참사를 면한 여객기,
황급하게 조종간을 바꿔 잡은 베트남 기장이 가까스로 착륙시켰습니다.
아찔한 사건 이후, 부기장 김 씨의 조종 실력에 의심을 품게 된 베트남항공과 베트남 항공청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판쑨득/베트남항공 부사장▶
"조종사들이 잘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행기가 바로 착륙하지 못했고, 다시 시도해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우리는 조종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 결과 김씨가 여객기를 조종해서는 안 되는 무자격자라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집니다.
한국인 부기장 김 모 씨.
그는 누구기에 자격도 없는데 승객 수백 명을 태우는 여객기를 조종했던 걸까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2580 취재진은 그의 행적을 추적해봤습니다.
그가 비행기와 처음 연관을 맺은 곳은 이곳 필리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김씨는 2006년 필리핀으로 가 여객기 면허 중 가장 기본 면허인 사업용 비행기 면허를 땁니다.
김 씨는 이 면허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2007년 5월 국토교통부에서 사업용 비행기 면허를 발급받습니다.
한 나라에서 면허를 따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같은 면허를 내주게 돼 있는 ICAO, 즉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른 겁니다.
다시 라오스로 건너간 김씨는 2007년 9월 에어버스320과 보잉737, 두 여객기 기종을 몰 수 있는 부기장 자격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김 씨가 자격을 딴 2007년 당시 라오스에는 에어버스나 보잉 같은 제트기 기종이 아예 없었습니다.
당시 라오스에는 프로펠러 비행기만 있었습니다.
◀前 라오항공 부기장▶
"그게 저도 의아한 거예요. 737이 2008년에는 비행기 자체가 없었거든요. 에어버스도 없었고.."
해당 기종도, 그 비행기를 조종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 나라에서 자격을 내 준 겁니다.
김 씨는 이 자격증을 들고 또 다시 한국에 들어와 이번에는 에어버스320의 파일럿 자격을 달라고 신청합니다.
처음엔 라오스엔 에어버스가 없다며 자격을 내주지 않던 우리 당국은 김씨가 유럽에 가서 에어버스 320 훈련을 받았다는 라오스 항공당국의 통보에 결국 자격증을 발급했습니다.
◀이종성/국토교통부 항공자격과 사무관▶
(유럽에서 (훈련) 받았다는 거는 실제로 받은 거예요?)
"실제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우리가. 솔직하게."
◀前 라오항공 부기장▶
(라오스에 같이 계시는 동안 (김 씨가) 유럽에 가서 시뮬레이터를 타고 한 적이 있나요?)
"저 있을 땐 없었죠."
이 자격증을 들고 김씨는 다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바타비아'라는 저가 항공사에 부기장으로 취직합니다.
하지만 거의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비행실력도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이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기장) 한 명은 난 이 사람한테 겁나서 조종바를 못 주겠다. 전혀 못한다. 어떻게 이 사람이 훈련이 끝났는지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이랑 비행을 안 하겠다고..."
김 씨는 결국 입사 아홉 달 만에 바타비아 항공에서 해고됩니다.
하지만 석 달 뒤인 9월 그는 베트남항공에 에어버스320 부기장으로 다시 취직합니다.
파일럿 자격도, 비행 실력도 갖추지 못한 김 씨가 어떻게 베트남항공에 취업할 수 있었을까요?
김 씨의 입사지원서를 살펴봤습니다.
베트남항공사는 2010년 에어버스320 조종 경력 500 시간이 넘는 부기장을 뽑고 있었습니다.
김씨의 입사지원서에는 에어버스320을 680시간 조종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개인 비행 로그북, 또 에어버스를 680시간 조종한 게 맞다는 전 직장 바타비아 항공사의 증명서까지 냈습니다.
김 씨는 합격했습니다.
◀호민땅/베트남항공청 항공안전표준국장▶
"바타비아 항공사가 김 o o의 A320 항공기 조종시간이 680시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김 o o의 서류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가 제시한 비행 경력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항공청은 김 씨가 바타비아 항공에서 일할 당시 한 번도 에어버스320을 탄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가 낸 바타비아 항공의 증명서도 위조된 것이었습니다.
◀박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당시 바타비아에 빌리라고 그 사람 이름과 서명을 날인을 해서 감쪽같이 위조를 한 거죠. 그 문서가 그렇게 위조가 어려운 문서도 아니고.."
김 씨의 비행로그북도 거짓이었습니다.
김 씨가 바타비아항공에서 해고된 시점은 2010년 6월 11일.
그런데 그가 베트남에 낸 비행 로그북을 보면 해고날짜 이후인 6월 14일 15일 16일 18일에 에어버스320을 조종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종성/국토교통부 항공자격과 사무관▶
"돈세탁한다고 이야기하죠. 똑같이 자격증 세탁을 하신 분입니다. 국가와 (국제민간항공 협약) 규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저발전 국가를 상대로 다니면서 악용을 행하고 항공자격 세탁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상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베트남항공에 취직하기 전인 2010년 4월엔 김씨의 총 비행시간이 1900시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항공 입사지원서엔 총 비행시간이 4226시간이라고 돼 있습니다.
서너 달 만에 2300시간 비행기를 탔다는 건데, 이는 석 달 동안 매일 24시간씩 비행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베트남 항공청이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김 씨는 그날로 도망치듯 베트남을 떠나버렸습니다.
◀정상용/베트남항공 검열관▶
"대부분 한국정부가 발행한 조종사 자격증을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김 o o이 나쁘게 이용한 것은 한국 국가의 공신력을 이용해서 주로 제 3세계에서 자격을 세탁했다는 거죠."
그를 아는 파일럿들은 그가 필리핀에서 딴 최초 면허증도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이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그 사람이 자격증을 편하게 딸 수 있게끔, 필리핀에서 좀 이렇게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면허를 취득한 경우가 좀 있거든요. (필리핀 기장이 말하길) 자기가 (그런) 도움을 많이 줬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취재진이 만난 필리핀 항공학교 관계자도 돈으로 파일럿 자격증을 사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합니다.
◀필리핀 항공학교 관계자▶
"몇몇 작은 학교나 일부 학교는 그런 경우가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자격증을 딸 수 있게 해준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前 필리핀 교민/항공업 종사▶
"진짜 제가 봐도 비리가 너무 심했어요. 돈만 주면 면허증 살 수도 있다. 한 3~4만 불(3천~4천만 원)만 주면은.."
취재진은 김 씨를 만나기 위해 연락했지만 김 씨는 인터넷 메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취재 내용은 모두 사실과 다르며 본인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취득했기 때문에 이를 방송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1년 김해공항의 갈짓자 착륙 사건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 o o▶
"이렇게 갈지 자를 걸었다든가 그런 내용도 전부 다 사실이 아니죠. 어디에서 확인하셨다고요?"
(국토교통부에서 확인했다고요.)
"국토교통부에서 어떤 그 자료가 있던가요?"
(네.)
"아니죠, 아니죠. 없는 걸 있다고 하면..."
좀 더 구체적인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김 씨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김 o o▶
"아니 뭐 뻔히 다 나와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제가 굳이 입증을 해야 되나요?“
(아니 6월 11일 날 퇴사를 하셨는데 바타비아에서 12일, 13일, 14일 계속..)
"아니 뭐 제가 계속 거기 있는 것처럼 더 이상 드릴 말씀 없고요. 엘리베이터입니다."
김 씨를 잘 아는 몇몇 파일럿들은 지난해 사기와 사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그를 인천지검에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뜻밖에도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입니다.
김씨가 입사지원서를 허위로 기재한 것은 맞지만 자기 문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은 죄가 안 된다.
바타비아항공사의 증명서도 허위로 보이지만 김 씨가 이 문서를 직접 위조했다는 증거가 없다.
비행로그북 역시 위조문서가 분명하지만 김 씨가 이를 위조했는지 바타비아 항공사 직원이 위조한 것인지 몰라 기소할 수 없다'고 돼있습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박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법에 대해 불신감이 생겼어요. 도대체 왜 항공법이 존재하고 제 스스로 의문이 생길 정도로. 너무 명명백백한데 그리고 이 사람이 또 다른 곳에 취직을 하려고 하고 있고..."
구체적 경위를 파악하려 했지만, 인천지검은 세월호 수사 때문에 바쁘다며 취재를 거절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태도도 이상합니다.
문서위조에 무자격자란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아직까지 김씨의 비행 면허를 단 한건도 취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종성/국토교통부 항공자격과 사무관▶
"부조종사로 조종을 했지만 크게 심각한 항송사고를 발생시킨 것은 아니고 자격증이 있다고 항공사에 다 취업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박원화 교수/한국항공대학교 항공교통법학부▶
"당연히 큰 범죄로 취급이 돼야죠. 본인 개인의 취업과 이익을 위해서 자기는 간단하게 위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은 수백 명의 승객 안전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건 집단 살인과 같은 결과를 가지고 오거든요.”
우리와 달리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즉시 김 씨의 면허를 취소했고 베트남은 수배령까지 내렸습니다.
◀호민땅/베트남항공청 국장▶
"수배령을 내렸고 김 o o이 베트남에 다시 들어오면 체포하라고 공항 출입국관리 부서에도 통보 했습니다. 베트남 법에 따라서 이런 사기는 서류 위조이기 때문에 꼭 처벌해야 합니다."
베트남정부는 김 씨가 베트남에서 도망친 뒤 라오항공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라오스 정부에 경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라오스에서도 쫓겨났고 라오스 정부는 김 씨의 면허를 취소했습니다.
작년 11월 러시아에서는 보잉737 여객기가 착륙도중 수직으로 추락해 탑승자 50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사고 여객기의 조종사는 면허증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10년에는 중국항공 당국이 자국 여객기 조종사를 조사한 결과 200명 이상이 비행경력을 속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선 공군이 최근 문제가 됐습니다.
공군 비행기에는 파일럿 말고도 무기를 다루는 무장사나 좌표를 다루는 항법사들이 탑승합니다.
이들은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지 않는데도 공군은 2012년까지 이들에게 파일럿과 똑같은 비행경력증명서를 발급해 왔습니다.
전역 후 민간 항공사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섭니다.
◀공군 관계자▶
"우리에 맞는, 우리가 편한, 그런 서식을 썼어요. 그동안은.. 그런 세세한 기장으로 탔는지, 부기장으로 탔는지 항법사로 탔는지 이런 것을 발급을 안 한 거예요."
이들은 공군에서 나온 뒤 비행면허를 취득해 상당수가 항공사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공순 교수/김포대학교 항공운항과▶
"어떻게 (자격) 취득을 했는지,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든 경로 이런 것들을 좀 조사하고, 외국 교육을 받았으면 그쪽에 문의해서 정확하게 어떤 경위로 어떤 교육을 받아서 자격을 취득했는지 조사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도 민간도 한목소리로 안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탑승객 수백 명 의 생명을 책임지는 파일럿, 어느 분야보다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허점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조종간을 잡았던 부기장은 한국인 김 모씨. 알고 보니 그는 수차례 비행경력을 위조한 무자격 파일럿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동남아와 한국을 오가며 경력을 세탁한 그의 행적을 통해 파일럿 자격제도가 얼마나 허술한 지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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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6일 오전 김해공항.
승객 160여명을 태운 베트남 항공 에어버스 320 여객기가 착륙 도중 큰 사고를 일으킬 뻔 했습니다.
당시 비행기록에 근거해 2580이 비행시뮬레이터로 상황을 재연해봤습니다.
기체를 정확히 돌려 활주로와 일직선이 돼야 착륙할 수 있는데 활주로를 그냥 지나쳐버립니다.
조종간을 잡은 사람은 한국인 부기장 김 모 씨.
활주로 왼쪽에서 진입을 시도하던 부기장은 착륙을 위해 비행기를 급격히 왼쪽으로 틀었습니다.
기체가 45도 넘게 기울어지며 방향을 바꿨지만 이번엔 오히려 활주로 오른쪽으로 벗어나버렸습니다.
다시 활주로 진입을 위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이번에도 활주로를 벗어났습니다.
활주로를 가운데 두고 상공에서 이리저리 갈 짓자 비행을 반복합니다.
◀이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정말 추락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일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비행을 한 거죠. 활주로 위에서 갈 지 자로..."
다시 고도를 높여 가까스로 참사를 면한 여객기,
황급하게 조종간을 바꿔 잡은 베트남 기장이 가까스로 착륙시켰습니다.
아찔한 사건 이후, 부기장 김 씨의 조종 실력에 의심을 품게 된 베트남항공과 베트남 항공청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판쑨득/베트남항공 부사장▶
"조종사들이 잘못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비행기가 바로 착륙하지 못했고, 다시 시도해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우리는 조종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 결과 김씨가 여객기를 조종해서는 안 되는 무자격자라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집니다.
한국인 부기장 김 모 씨.
그는 누구기에 자격도 없는데 승객 수백 명을 태우는 여객기를 조종했던 걸까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2580 취재진은 그의 행적을 추적해봤습니다.
그가 비행기와 처음 연관을 맺은 곳은 이곳 필리핀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김씨는 2006년 필리핀으로 가 여객기 면허 중 가장 기본 면허인 사업용 비행기 면허를 땁니다.
김 씨는 이 면허를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 2007년 5월 국토교통부에서 사업용 비행기 면허를 발급받습니다.
한 나라에서 면허를 따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같은 면허를 내주게 돼 있는 ICAO, 즉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른 겁니다.
다시 라오스로 건너간 김씨는 2007년 9월 에어버스320과 보잉737, 두 여객기 기종을 몰 수 있는 부기장 자격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김 씨가 자격을 딴 2007년 당시 라오스에는 에어버스나 보잉 같은 제트기 기종이 아예 없었습니다.
당시 라오스에는 프로펠러 비행기만 있었습니다.
◀前 라오항공 부기장▶
"그게 저도 의아한 거예요. 737이 2008년에는 비행기 자체가 없었거든요. 에어버스도 없었고.."
해당 기종도, 그 비행기를 조종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 나라에서 자격을 내 준 겁니다.
김 씨는 이 자격증을 들고 또 다시 한국에 들어와 이번에는 에어버스320의 파일럿 자격을 달라고 신청합니다.
처음엔 라오스엔 에어버스가 없다며 자격을 내주지 않던 우리 당국은 김씨가 유럽에 가서 에어버스 320 훈련을 받았다는 라오스 항공당국의 통보에 결국 자격증을 발급했습니다.
◀이종성/국토교통부 항공자격과 사무관▶
(유럽에서 (훈련) 받았다는 거는 실제로 받은 거예요?)
"실제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확인이 안 됩니다. 우리가. 솔직하게."
◀前 라오항공 부기장▶
(라오스에 같이 계시는 동안 (김 씨가) 유럽에 가서 시뮬레이터를 타고 한 적이 있나요?)
"저 있을 땐 없었죠."
이 자격증을 들고 김씨는 다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바타비아'라는 저가 항공사에 부기장으로 취직합니다.
하지만 거의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비행실력도 형편없었다고 합니다.
◀이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기장) 한 명은 난 이 사람한테 겁나서 조종바를 못 주겠다. 전혀 못한다. 어떻게 이 사람이 훈련이 끝났는지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사람이랑 비행을 안 하겠다고..."
김 씨는 결국 입사 아홉 달 만에 바타비아 항공에서 해고됩니다.
하지만 석 달 뒤인 9월 그는 베트남항공에 에어버스320 부기장으로 다시 취직합니다.
파일럿 자격도, 비행 실력도 갖추지 못한 김 씨가 어떻게 베트남항공에 취업할 수 있었을까요?
김 씨의 입사지원서를 살펴봤습니다.
베트남항공사는 2010년 에어버스320 조종 경력 500 시간이 넘는 부기장을 뽑고 있었습니다.
김씨의 입사지원서에는 에어버스320을 680시간 조종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개인 비행 로그북, 또 에어버스를 680시간 조종한 게 맞다는 전 직장 바타비아 항공사의 증명서까지 냈습니다.
김 씨는 합격했습니다.
◀호민땅/베트남항공청 항공안전표준국장▶
"바타비아 항공사가 김 o o의 A320 항공기 조종시간이 680시간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김 o o의 서류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가 제시한 비행 경력은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항공청은 김 씨가 바타비아 항공에서 일할 당시 한 번도 에어버스320을 탄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가 낸 바타비아 항공의 증명서도 위조된 것이었습니다.
◀박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당시 바타비아에 빌리라고 그 사람 이름과 서명을 날인을 해서 감쪽같이 위조를 한 거죠. 그 문서가 그렇게 위조가 어려운 문서도 아니고.."
김 씨의 비행로그북도 거짓이었습니다.
김 씨가 바타비아항공에서 해고된 시점은 2010년 6월 11일.
그런데 그가 베트남에 낸 비행 로그북을 보면 해고날짜 이후인 6월 14일 15일 16일 18일에 에어버스320을 조종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종성/국토교통부 항공자격과 사무관▶
"돈세탁한다고 이야기하죠. 똑같이 자격증 세탁을 하신 분입니다. 국가와 (국제민간항공 협약) 규정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저발전 국가를 상대로 다니면서 악용을 행하고 항공자격 세탁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수상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베트남항공에 취직하기 전인 2010년 4월엔 김씨의 총 비행시간이 1900시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베트남항공 입사지원서엔 총 비행시간이 4226시간이라고 돼 있습니다.
서너 달 만에 2300시간 비행기를 탔다는 건데, 이는 석 달 동안 매일 24시간씩 비행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베트남 항공청이 그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김 씨는 그날로 도망치듯 베트남을 떠나버렸습니다.
◀정상용/베트남항공 검열관▶
"대부분 한국정부가 발행한 조종사 자격증을 인정해줍니다. 그런데 김 o o이 나쁘게 이용한 것은 한국 국가의 공신력을 이용해서 주로 제 3세계에서 자격을 세탁했다는 거죠."
그를 아는 파일럿들은 그가 필리핀에서 딴 최초 면허증도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이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그 사람이 자격증을 편하게 딸 수 있게끔, 필리핀에서 좀 이렇게 적법하지 않은 방법으로 면허를 취득한 경우가 좀 있거든요. (필리핀 기장이 말하길) 자기가 (그런) 도움을 많이 줬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취재진이 만난 필리핀 항공학교 관계자도 돈으로 파일럿 자격증을 사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합니다.
◀필리핀 항공학교 관계자▶
"몇몇 작은 학교나 일부 학교는 그런 경우가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자격증을 딸 수 있게 해준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前 필리핀 교민/항공업 종사▶
"진짜 제가 봐도 비리가 너무 심했어요. 돈만 주면 면허증 살 수도 있다. 한 3~4만 불(3천~4천만 원)만 주면은.."
취재진은 김 씨를 만나기 위해 연락했지만 김 씨는 인터넷 메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취재 내용은 모두 사실과 다르며 본인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취득했기 때문에 이를 방송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2011년 김해공항의 갈짓자 착륙 사건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김 o o▶
"이렇게 갈지 자를 걸었다든가 그런 내용도 전부 다 사실이 아니죠. 어디에서 확인하셨다고요?"
(국토교통부에서 확인했다고요.)
"국토교통부에서 어떤 그 자료가 있던가요?"
(네.)
"아니죠, 아니죠. 없는 걸 있다고 하면..."
좀 더 구체적인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김 씨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김 o o▶
"아니 뭐 뻔히 다 나와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제가 굳이 입증을 해야 되나요?“
(아니 6월 11일 날 퇴사를 하셨는데 바타비아에서 12일, 13일, 14일 계속..)
"아니 뭐 제가 계속 거기 있는 것처럼 더 이상 드릴 말씀 없고요. 엘리베이터입니다."
김 씨를 잘 아는 몇몇 파일럿들은 지난해 사기와 사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그를 인천지검에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뜻밖에도 불기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검찰의 불기소 이유서입니다.
김씨가 입사지원서를 허위로 기재한 것은 맞지만 자기 문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한 것은 죄가 안 된다.
바타비아항공사의 증명서도 허위로 보이지만 김 씨가 이 문서를 직접 위조했다는 증거가 없다.
비행로그북 역시 위조문서가 분명하지만 김 씨가 이를 위조했는지 바타비아 항공사 직원이 위조한 것인지 몰라 기소할 수 없다'고 돼있습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박 o o(가명)/前 바타비아항공 부기장▶
"법에 대해 불신감이 생겼어요. 도대체 왜 항공법이 존재하고 제 스스로 의문이 생길 정도로. 너무 명명백백한데 그리고 이 사람이 또 다른 곳에 취직을 하려고 하고 있고..."
구체적 경위를 파악하려 했지만, 인천지검은 세월호 수사 때문에 바쁘다며 취재를 거절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태도도 이상합니다.
문서위조에 무자격자란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아직까지 김씨의 비행 면허를 단 한건도 취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종성/국토교통부 항공자격과 사무관▶
"부조종사로 조종을 했지만 크게 심각한 항송사고를 발생시킨 것은 아니고 자격증이 있다고 항공사에 다 취업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박원화 교수/한국항공대학교 항공교통법학부▶
"당연히 큰 범죄로 취급이 돼야죠. 본인 개인의 취업과 이익을 위해서 자기는 간단하게 위조를 한다고 생각하지만은 수백 명의 승객 안전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건 집단 살인과 같은 결과를 가지고 오거든요.”
우리와 달리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즉시 김 씨의 면허를 취소했고 베트남은 수배령까지 내렸습니다.
◀호민땅/베트남항공청 국장▶
"수배령을 내렸고 김 o o이 베트남에 다시 들어오면 체포하라고 공항 출입국관리 부서에도 통보 했습니다. 베트남 법에 따라서 이런 사기는 서류 위조이기 때문에 꼭 처벌해야 합니다."
베트남정부는 김 씨가 베트남에서 도망친 뒤 라오항공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라오스 정부에 경고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라오스에서도 쫓겨났고 라오스 정부는 김 씨의 면허를 취소했습니다.
작년 11월 러시아에서는 보잉737 여객기가 착륙도중 수직으로 추락해 탑승자 50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사고 여객기의 조종사는 면허증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10년에는 중국항공 당국이 자국 여객기 조종사를 조사한 결과 200명 이상이 비행경력을 속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선 공군이 최근 문제가 됐습니다.
공군 비행기에는 파일럿 말고도 무기를 다루는 무장사나 좌표를 다루는 항법사들이 탑승합니다.
이들은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지 않는데도 공군은 2012년까지 이들에게 파일럿과 똑같은 비행경력증명서를 발급해 왔습니다.
전역 후 민간 항공사 취업을 도와주기 위해섭니다.
◀공군 관계자▶
"우리에 맞는, 우리가 편한, 그런 서식을 썼어요. 그동안은.. 그런 세세한 기장으로 탔는지, 부기장으로 탔는지 항법사로 탔는지 이런 것을 발급을 안 한 거예요."
이들은 공군에서 나온 뒤 비행면허를 취득해 상당수가 항공사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공순 교수/김포대학교 항공운항과▶
"어떻게 (자격) 취득을 했는지, 교육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든 경로 이런 것들을 좀 조사하고, 외국 교육을 받았으면 그쪽에 문의해서 정확하게 어떤 경위로 어떤 교육을 받아서 자격을 취득했는지 조사해서..."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도 민간도 한목소리로 안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탑승객 수백 명 의 생명을 책임지는 파일럿, 어느 분야보다 철저한 검증이 요구되지만, 현실은 허점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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