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강나림 기자

두 번 버림받은 사람들…한센병 환자의 눈물

두 번 버림받은 사람들…한센병 환자의 눈물
입력 2014-06-09 08:41 | 수정 2014-06-09 10:34
재생목록
    일제 강점기는 물론 정부 수립 후에도 단종(생식능력을 없애는 일), 낙태를 강요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센인 환자들입니다.

    유전질환이 아닌데도 국가 권력에 의해 반인권적 시술을 강요당하고 격리돼 살아온 한센인들.

    일본에서는 소송을 통해 자국민은 물론, 강점기 한국인 피해자들에게도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와 한국인 피해자들도 억울함을 보상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 국가가 이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지만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피고인 대한민국 정부가 항소한 것.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한센인들은 일본, 대만 정부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우리 정부의 항소를 지켜보며 다시 한 번 눈물을 삼키고 있습니다.

    =============================

    문둥병, 혹은 천형이라고 불렸던 한센병.

    이 곳 소록도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한센병은 오래 전 완치가 가능해졌고 소록도 역시 누구나 올 수 있는 섬이 됐지만, 과거에 병에 걸려 여기 격리됐던 사람들의 한 많은 사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남 고흥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섬, 소록도.

    5년 전 소록대교가 개통돼 이젠 더 이상 섬이 아닙니다.

    이곳에 사는 한센인은 7백여 명.

    정확히는 한센병 환자가 아니라 과거에 치료가 끝난, 한센병 '병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16살에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에 들어온 76살 장인심 할머니.

    양 손에 오래된 병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할머니는 21살이 되던 해인 1959년 첫 임신을 했지만, 곧바로 낙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소록도 병원 직원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임신부를 찾아내 수술실로 데려갔습니다.

    ◀장인심/76세▶
    "이 사람이 임신했다더라, 가서 그렇게 딱 불려 가 불려 가. 그래서 그런데 그냥 임신한 사람은 미리 인상부터 벌벌 떤다 떨어.."

    만삭 임산부도 예외 없이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장인심/76세▶
    "만삭이 됐는데도 반드시 뺍니다, 애기 빼요. 수술하러 가는 그 모습들은 어떤 줄 아세요?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그런 모습, 하..정말 그런 모습.."

    같은 동네에 사는 다른 할머니는 어떻게든 몰래 자식을 가져보려 했지만 도망다니다 병원 직원에게 발각돼 두 번이나 낙태 수술을 당했습니다.

    ◀장 o o /70세▶
    "원수가 맺혔는가 자기가 뭐 할 일 한다고 그러는가 모르겠지만 지독하게 찾아다니고 따라다니고 문 열어봐라 하고, 병원 직원 오면 맨날 피해 다니고 도망 다니고 무슨 죄인처럼 그렇게 살았어요. 우리가."

    할머니가 낙태 수술을 받은 뒤, 남편도 끌려가 정관 절제 수술, 즉 단종 수술을 받았습니다.

    ◀장 o o /70세▶
    "우리 영감도 잡혀가고 강제로 잡아다가 그렇게 했지, 그래서 영감이 돌아가셨지 병신이 애를 낳으면 되겠나, 그런 생각으로 그랬겠지."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고, 이른바 근절시키려는 단종 정책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됐습니다.

    먼저 단종 수술을 받아야만 부부가 한 집에 살 수 있는 허가가 났고, 몰래 아이를 낳았다가 들키면 부모와 강제 격리해 보육원으로 보냈습니다.

    소록도 곳곳엔 아직도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격리와 차별 정책은 계속됐습니다.

    이 길을 사이에 두고 한 쪽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맞은편엔 그의 자녀들이 한 달에 한 번만 면회를 했습니다.

    병이 옮을까봐 서로 만질 수도 없이 바라만 보고 헤어져야 했던 이곳은 근심과 탄식의 거리, 수탄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소록도 국립병원 연보를 보면 1949년부터, 심지어 1992년까지도 단종 수술을 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병원 운영 규정엔 한센병 환자 부부는 일제히 단종 수술을 해야 하고, 한센인에 대한 격리 수용, 임신 제한 등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센병은 유전병도 아니고, 1941년부터 완치가 가능해졌지만, 이 같은 단종 수술 조항은 50년이 넘도록 남아있었습니다.

    강영주 할아버지도 1976년, 마흔 살에 늦은 장가를 가려다 단종 수술을 받았습니다.

    ◀강영주/78세▶
    "(혼인) 신청을 했는데 수술 먼저 해야 방을 준다, 근데 만약에 (수술 받으러) 안 가면 쫓아다녀. 잡으러 다녀."

    단종 수술을 받지 않으면 소록도에서 쫓겨나야 했는데, 당시 한센인이 소록도를 벗어나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강영주/78세▶
    "그 때 당시에는 기라고 하면 기어야 되고, 인간으로서 취급을 못 받았어 사실상. 나가서 살 수 없고 죽으나 사나 여기서 살아야 되니까 할 수 없이 단종을 하고 여기서 살게 되고 그런 거지."

    정부는 2009년에 와서야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6천 4백여 명의 피해자를 밝혀냈습니다.

    억울함을 뒤늦게 인정받은 한센인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지난 4월 이들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법원은 "국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신체의 권리, 자손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뤄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을 국가가 정당한 근거 없이 침해했고, 궁극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센인들에게 정관절제 수술에 대해선 3천만 원, 낙태 수술에 대해선 4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정부의 인권 침해에 따른 한센인들의 피해를 뒤늦게나마 인정한 첫 판결.

    그러나 이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판결 보름 만에, 정부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한 겁니다.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낙태와 단종 수술은 당사자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불법성이 없으며, 손해배상 시효도 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정부의 한센인 격리 정책으로 편견과 차별이 조장됐고, 이 때문에 한센인들이 병원을 떠나 자립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현실을 고려할 때, 진정한 동의를 받았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박영립 변호사/한센인권변호단 단장▶
    "퇴소하고, 퇴원조치 당한다는 것은 그들이 거의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런 현실이기 때문에 한센인들은 그렇게 해야만 되는 것으로 알고, 어쩔 수 없이 그런 데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국가의 불법행위라고 법원에서 인정하게 된 (이유입니다)"

    항소 이유를 듣기 위해 소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를 찾아갔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다며 취재진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이유를 제대로 설명조차 하기 힘든 상황에서 항소장 접수를 하신건가요?) "아니죠 (항소)하겠다는 이유는 있지만 그 이유를 밝힐 수가 없는 거죠."

    항소 사유가 원고 측에 미리 알려지면 안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사전에 (항소 이유를) 알려주는 꼴이 되니까..하여튼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저희 판단보다는 저희도 (검찰) 지휘를 받아서.."

    ◀박영립 변호사/한센인권변호단 단장▶
    "기계적으로 (항소) 한 것이 아닐까 싶어서 정말 안타깝고, 이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또 한 번 잘못을 저지르고 두 번 못질을 하고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식을 들은 한센인들은 다시 한 번 힘이 빠집니다.

    무엇보다, 고령인 이들이 살아있는 동안 재판 결과를 볼 수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강영주/78세▶
    "나는 사실 항소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금년에 다 (보상)된다고 해도 그 순간 몇 사람이 세상을 뜰지도 모르는데.."

    이들이 정부의 항소에 충격을 받은 건, 이웃나라 일본과 대만 정부의 대응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처럼 강제단종을 시행했던 대만정부는 지난 2008년 한센인들이 소송을 하기도 전에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를 보상했습니다.

    일본은 2001년, 한센인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하자 정부는 즉각 항소를 포기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일본 前 총리▶
    "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판결에 힘입어 2003년 한국의 한센인 124명도 일제강점기 저질러진 인권 침해에 대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지만, 당시 일본 법원은 우리나라 한센인들에겐 배상의무가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일본 시민사회가 들끓었습니다.

    "재판관 도망가지 마라! 판결 다시 해라!"

    일본 정부는 여론을 받아들여 재판 결과와 상관 없이 법 개정을 통해 한국과 대만 등 타국의 한센인들에게도 보상의 길을 열었고, 한국의 한센인 5백여 명은 일본 정부로부터 한 사람당 최대 1억 5천만 원을 보상금으로 받았습니다.

    국가에 의한 인권 침해는 국적이나 시효와 상관없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요구에 따른 겁니다.

    ◀정근식 교수/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우리가 일본 정부에 대해서 일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강력하게 요구를 하는데 우리 내부에서 발생한 명백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그러면 앞뒤가 잘 안 맞는 그런 조치가 아닐까."

    한센병은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1년 평균 6명 정도가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항력을 갖고 있어 좀처럼 걸리지 않는데다 치료도 아주 간단합니다.

    ◀채규태 교수/가톨릭대학교 한센병연구소▶
    "99.9%는 면역을 갖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중에..어떤 소견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리팜피신 1회 복용으로 몸 안에 있는 균의 99.999%가 죽는다 이거죠. 증식을 못해요."

    하지만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한센인들에 대한 격리와 차별 정책은 수십 년 동안 이어졌고, 일반인들의 두려움과 편견도 여전합니다.

    그 피해는 한센병과 상관없는 2세,3세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센인 자녀라는 게 알려지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권 o o/한센인2세▶
    "(어릴 때) 야외수업 나가서 다쳤는데 피가 나니까.. 피가 나면 와서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그런데 그 주위에 있는 친구들은 이제 옮는다고, 전염된다고 전부 다 도망을 가버리고 없고.."

    이러다보니 한센병이 희귀한 병이 되어버린 지금까지도 많은 한센인들은 전국 80여 개 정착촌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남 산청의 성심원.

    스페인에서 온 유의배 신부의 하루는 한센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을 부비며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얼굴을 쓰다듬고, 간지럼을 태우고 또 입맞춤을 하고..

    34년간 지속돼온 일상입니다.

    힘없이 누워 있다가도 신부님만 만나면 아이처럼 웃습니다.

    ◀김용진/78세▶
    "한창 좋죠, 신부님은, 유 신부님은 다 끌어안으니까 모두가 신부님을 좋아해요."

    여기 살고 있는 140여 명의 한센인 가운데 90여 명이 강제 단종 등 인권침해 피해자들, 대부분 70대 이상의 노인들입니다.

    모두가 외면해왔던 사람들 곁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던 신부는 아직도 계속되는 우리 사회의 외면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의배 신부/성심원▶
    "내가 여기 와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와가지고 나 진짜 현재 비슷한 가족처럼 말하게 되었는데, 사랑하게 되었는데 같은 나라 사람들 왜 안 그러는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한센인은 651 명.

    일본에서 한센인 소송을 이끌었던 쿠니무네 변호사는 한국 정부가 시간을 끌지 말고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2580에 보내왔습니다.

    ◀쿠니무네 나오코 변호사▶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틀린 지식을 사회에 널리 퍼뜨렸다는 책임, 그건 절대 피할 수 없는 책임이라고 생각하므로 정부로서의 책임을 다해서 (보상을 했으면 좋겠어요.)"

    한센병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평생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사람들,

    이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장 o o/70세▶
    "아무도 안 알아줘요. 보기는 멀쩡해도 한센병 걸렸다고 해봐라. 딱 돌아선다. 끝이라 끝. 사람 취급 받는 줄 알아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책임을 미뤄선 안 될 시점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인기 키워드

        취재플러스

              14F

                엠빅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