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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2580
기자이미지 김현경 기자

“불치병이 아닙니다”

“불치병이 아닙니다”
입력 2014-08-18 08:58 | 수정 2014-08-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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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경찰청이 경찰공무원 선발시험에 최근 3년간의 정신과 치료경력을 조회하겠 다고 발표했습니다.

    의료계와 인권단체 등은 부당한 낙인찍기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는데..

    우리나라 인구를 기준으로 발병률 100분의 1, 50만 명이 앓고 있다는 조현병(정신분열병).

    이들은 정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잠재적 범죄자일까?

    전문가들은 사회적 편견과 잘못된 의료시스템 때문에 이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수십 년간 장기 입원환자가 되어 사회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들을 ‘평생환자’로 만드는 것일까?

    조현병으로 고통 받고 있거나 조현병을 극복한 이 들을 2580이 만났습니다.

    ==========================================

    “귀에 자꾸 들려요/혼자서 얘길하는 거예요. 누구랑 얘기해 하면 판사랑 얘기하는 중이래.”

    “(누군가) 저기 앉아 있어요. (사람들이) 귀신이라 그러는데 내 눈에는 똑같이 보이니까.”

    “옛날에 세탁물 가져오면 '세탁 세탁' 이런소리 하잖아요 그 '세탁'이란 신호가 '저를 죽여라' 하는 암호다”

    환청과 환시, 망상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

    '정신 분열'이라 불리던 이 병은 3년 전 편견을 없애자는 취지로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조현'이란 말 그대로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것처럼 정신의 부조화를 치료한다는 뜻인데요,

    이 환자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과연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일까요.

    경기도의 한 임대주택.

    47살 이 모씨가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전자 업체를 운영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던 이 씨의 삶이 갑자기 바뀌게 된 건 8년 전.

    사업 실패와 이혼을 잇따라 겪고 난 후 갑자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헛 것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 이00 / 조현병 환자 ▶
    “(뭐가 보이시는 거예요?) 아줌마도 보이고 아줌마 친구들도 같이 데려오고. 자기한테 잘하면 내가 옛날에 사업했던거 다 찾게 해주고 건강 다 회복시켜 주겠다고.”

    이씨는 인터뷰 중에도 문득문득 증상에 시달리는 듯 했습니다.

    ◀ 이00 / 조현병 환자 ▶
    “아까 아줌마가 들어오던데.. 아줌마가. 맞아요. 아까 (취재진이) 들어오실 때 아줌마 들어와가지고 ‘촬영 못 한다’ 하더니만 촬영 못하겠다”

    집을 나가 정신없이 떠돌다가 구급차에 실려가기를 수 차례.

    생계 유지가 안돼 4년 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고, 주변의 손가락질로 아이들은 전학까지 했습니다.

    ◀ 이00 / 조현병 환자 ▶
    “너희 아빠 정신병원 다닌다며 너희 아빠 똘아이라며.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막 학교시간에도 집에 오고.”

    절망 속에 한 때 자살까지 기도했었다는 이 씨.

    의료진은 현재 입원 치료를 권하는 상황이지만 미성년자인 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외래 진료만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 이00 / 조현병 환자 ▶
    “그래도 똘똘하고 잘 살았는데 아이한테 내가 이렇게 부모 노릇도 못하고...”

    지난 14일 경찰청 앞.

    정신질환 환자 모임과 인권 단체 등 12개 단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경찰청이 최근 임병장 총기난사 사건으로 계기로 신규 경찰 공무원을 선발할 때 최근 3년 간의 정신과 치료경력을 조회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정신질환을 범죄자로 등식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찰청의 인권침해적 정책적 발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다"

    경찰 선발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국가기관이 나서서 '낙인 찍기'를 하는 것은 문제라는게 이들의 주장.

    경찰은 아직 확정된 방침은 아니라고 한 발 물러섰습니다.

    ◀ 경찰청 관계자 (전화) ▶
    “전문가들 의견을 이쪽저쪽에 수렴하고 있거든요. 가장 합리적인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야 할 거 아닙니까“

    실제로 정신 병력이 있는 사람이 일반인보다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객관적인 근거는 있는 걸까.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범죄를 일으킨 128만명 중에 정신질환자는 0.3%에 불과합니다.

    ◀ 홍진표 법제이사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
    “법제이사범죄율 측면에서 보면 일반인들보다는 훨씬 낮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대중들은 정신질환이면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끔찍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상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정신의학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각종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수는 약 500만명.

    그 중 '정신질환계의 암'이라 불리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인구의 약 1%인 5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조현병은 뇌의 신경전달 물질에 이상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뇌 전체에 문제가 생기는 병입니다.

    약물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증상이 개선되고 고혈압. 당뇨처럼 관리하면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지만, '불치병'이란 편견이 심해 병원 진료를 받는 경우는 20만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적극적인 치료나 재활보단 수용과 다름없는 장기 입원으로 사회와 격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15년째 조현병을 앓고 있는 30대 딸을 둔 박 모씨.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박 씨의 딸은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뒤 최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됐습니다.

    그런데 의사로부터 딸이 복용하던 약 중 하나를 더 이상 처방하기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박00 / 조현병 환자 어머니 ▶
    “병원에 갔는데 그러는 거예요. 신약 개념이 하나가 들어있었어요. 근데 따님은 이게 1알에 6천원짜리라는 거에요. 근데 생활보호 대상자가 됐으니까 이 약을 못준다 그러는 거에요.”

    기초생활수급자는 나라가 병원비를 전액 부담해주는 의료급여 혜택을 받는데, 정신과 질환은 다른 병과 다르게 의료급여 수가가 '정액제'로 묶여있습니다.

    액수도 적어 외래의 경우 2008년 이후 6년째 하루 무조건 2770원.

    이 때문에 효과가 좋은 신약대신 마비 증상 같은 부작용이 심한 값싼 약을 먹어야 하고 적극적인 치료도 불가능합니다.

    ◀ 김의태 /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
    “1300 치료의 폭이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게 문제죠. 그게 왜 중요하냐면 그렇게 되면 자꾸 약이 불편하기 때문에 약물을 중단하게 되고 중단하게 되면 다시 재발하게 돼서 기능이 더 떨어지게 되고”

    입원을 할 경우엔 기관의 등급에 따라 하루 약 3만원에서 5만원, 즉 한달에 100만원에서 많게는 150만원을 나라가 병원에 지급합니다.

    병원 입장에선 많은 환자를 장기 입원시키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

    보호자도 환자 돌볼 방법이 마땅치 않다보니 입원을 선호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최00 / 조현병 환자 어머니 ▶
    “생활보호 대상자가 됐다고 하면 (입원비가) 전액 무료거든요. 그러니까 부모들이 데리고 있기가 힘드니까 그저 병원에 보내려고 하는 거예요.병원, 수용소 이런 데서 이 사람을 죽을 때까지 병원 생활을 하라고 유도하는 그런 제도에요.”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 입원 병상은 2000년 5만여개에서 2010년 8만9천여개로 무려 3만개가 늘었습니다.

    정신질환 입원환자에게 쏟아붇는 돈도 8년사이 무려 5배가 증가해 한 해만 1조 4천억원이 넘습니다.

    ◀ 이영문 / 공주국립병원 원장 ▶
    지금 OECD 국가 중에서도 정신과 병원의 병상수가 유일하게 증가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거든요./이런 식으로 나갔을 때는 2024년 정도를 기준으로 하면 의료비의 어마어마한 붕괴 사태가 올 수 밖에 없는 거거든요.

    병원 입장에서도, 보호자 입장에서도, 입원시키는 게 더 편한 일이 되고, 여기에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까지 더해지다 보니 정신질환자들은 어떻게든 안보이게 숨기는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격리식의 대처로 과연 빠르게 늘어나는 정신질환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대전에 있는 한 재활시설.

    정신질환 회원들이 미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증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환자들이 10명 이내의 소규모 인원으로 가정집과 같은 환경에서 살며 재활을 하는 '그룹홈'입니다.

    이곳에서 실제로 장기 입원을 했던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 달 전까지 200명의 환자가 있는 외딴 요양원에서 살았다는 백은옥씨.

    ◀ 백은옥 / 조현병 환자 ▶
    “(거기 얼마나 계셨던 거에요?) 92년도에 들어갔죠. (92년부터 쭉 계신거예요?)네 20살에 들어갔어요. 수양원이요. 지금 41살이죠.”

    박명우씨 역시 고2 때 발병한 뒤 역시 한 요양원에서만 20년을 살았습니다.

    나오고 싶어도 받아줄 가족이 없어 긴 세월을 세상과 단절된 채 보낸 겁니다.

    ◀ 박명우 / 조현병 환자 ▶
    “집에서 안봐줘요. 가고 싶어도 집에서 안돼. 있을 데가 없대요. (네가 있을 데가 없다. 안왔으면 좋겠다.) 네 평생 있으면 좋겠대요. (그런 말씀 들으면 속상하시겠어요) 안속상해요. (안속상하세요?) 여기가 좋아요.”

    이들은 건강은 상당히 회복됐지만 장기간 수동적인 단체 생활을 한 탓에 사회 적응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 구은열 / 정신질환 그룹홈 '사랑채' 원장 ▶
    “뭔가 하려고 하는 뜻도 시기가 좀 지나지 않았나. 안타까운 부분이 많이 있어요. 너무 오랫동안 병원에 있었구나./미리 이런 자유로운 곳에 알아서 나와서 생활했으면 많이 살아서 재활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면 같은 그룹홈 회원 중에서도 입원 기간이 짧았던 젊은 환자들은 빨리 사회로 복귀합니다.

    2년 전 취업에 성공한 최경섭씨.

    양극성장애, 즉 조울증을 앓고있는 최씨는 올 초 한 달 가량 다시 입원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껏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최경섭 / 조울증 치료 환자 ▶
    “(사장님과 동료들이) 많이 챙겨주세요. 걱정도 많이 해주시고요. 기회를 다시 줬기 때문에 그 기회에 제가 실망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정신질환자들을 돕는 이런 소규모 그룹홈들은 현재 전국에 28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는데 활성화되려면 아직 여러 면에서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 이옥자 원장 / 정신질환 그룹홈 '섭리가정' ▶
    “(환자를) 10년 20년 병원에 두면 한달에 150만원씩하면 1년이면 얼마입니까 1500입니다. 10년이면 1억5천이에요. 그거 다 국가돈입니다. 그걸 다 계산을 하면 차라리 (약) 처방을 (수가 제한을) 풀어줘서 부작용을 없애고 지역사회 재활시설을 활성화해서 지역사회에서 그들이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게 훨씬 더 (이익이죠)”

    병원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

    대구에 있는 한 정신과 전문병원.

    오전 10시가 되자 이 병원 환자인 26살 이아영씨가 병원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의사를 만나는 대신 병원 내 커피숍으로 가더니 손님들에게 커피를 만들어 판매합니다.

    “(카페라떼 주세요) 따뜻한 거요?”

    이 병원이 운영하는 '낮 병동' 프로그램의 하나로 직업 재활 훈련을 받고 있는 겁니다.

    직장에 다니다 3년 전 발병한 아영씨는 병원에서 치료는 물론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새로운 친구도 사귀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아영 / '낮병동' 참여 조현병 환자 ▶
    처음 등록했을 땐 말주변 없어서 조금 먼저 다가가기 그랬는데 규칙적으로 일어나서 살다보니까 많이 성격도 밝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낮 병동'은 환자들이 매일 낮에 병원에 와서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수강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병원의 경우 아영씨처럼 매일 출퇴근하는 환자가 290여명으로 입원 환자보다 오히려 더 많습니다.

    입원 환자들 역시 증상만 조절되면 3개월 이상은 입원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 박상운 / 대구 정신과병원 원장 ▶
    “가능하면 사회성을 잃지 않게끔 해주는게 특히 정신질환자한테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선 저걸(폐쇄병동을) 없애야 겠다. 빨리 퇴원을 시켜야되겠다. (대신 매일) 아침엔 출근하듯이 오라..”

    우리 주변에서 정신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은 고통 속에서 숨죽이고 있습니다.

    ◀ 박OO / 조현병 환자 어머니 ▶
    “굉장히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건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도 절망하고”

    힘들고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병.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들을 편견없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 이상은 / '조현병' 극복 환자 ▶
    “아, 이 분은 ‘다른’게 아니고 ‘아픈’ 거라는 그런 인식 확산이 되어야 이분들이 용기를 갖고 사회에 나가서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몸에 든 병처럼, 정신에 든 병도 똑같이 치료하면 된다는 인식의 전환.

    이것이 정신질환 500만 시대를 맞는 첫 단추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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