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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최 훈 기자

'글루텐'이 나쁘다?

'글루텐'이 나쁘다?
입력 2014-10-06 08:55 | 수정 2014-10-06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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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가루는 '글루텐'이 있어 몸에 좋지 않으니 쌀로 만든 음식을 먹어라", "소시지와 육포에 들어있는 '아질산나트륨'은 많이 섭취하면 좋지 않은데도 색깔을 내려고 넣는다"...

    글루텐은 정말 몸에 나쁜가?

    아질산나트륨은 해로운 물질인가? 이런 첨가물을 뺏으니 더몸에 좋은 식품이라는 식품회사들의 마케팅 문구는 과연 사실일까?

    소비자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이른 바 '무첨가 마케팅'의 허상을 고발합니다.

    =============================

    요즘 다이어트 중인 이은수 씨는 매일 체중계에 올라갑니다.

    (엄청 빼셨네요) "네."
    (만족하시겠어요?) "네 너무 좋아요."

    다이어트 두 달 만에 20킬로그램 넘게 빠졌습니다.

    몸무게 101kg, 허리둘레 37인치의 고도비만이었던 은수 씨는 밀가루를 먹지 않는 이른 바 글루텐프리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밀가루 음식엔 아예 입을 대지 않았고, 매일 먹던 야식도 끊었습니다.

    ◀이은수/밀가루 다이어트▶
    "(치킨) 한 마리 좀 넘게 먹을 때도 있는데 아무튼 굉장히 많이 먹었고, 피자 한 판 다 먹고 미디엄 사이즈 혼자 다 먹고, 족발은 시키면 조금 남고. 야식비가 엄청 나왔어요."

    고질병이었던 장염증상이 사라진 것도 밀가루를 끊어서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은수/밀가루 다이어트▶
    "밀가루가 이게 가스를 되게 잘 차게 하더라고요. 그러면 배가 아프고. 그러다 보면 며칠 참다 보면 장염이 생기고 그래서 이제 밀가루를 안 먹게 됐죠."

    29살 김진아 씨는 밀가루를 비롯한 탄수화물을 아예 끊었습니다.

    하루 세 끼 모두 닭가슴살을 상추에 싸서 먹습니다.

    ◀김진아/밀가루 다이어트▶
    "처음엔 순대도 조금 집어 먹고 그랬는데 이제 사람들이 살 빠지니까 다 예뻐졌다고 하니 기분 좋아서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어요."

    다이어트 한 달 반 만에 14kg 감량.

    진아 씨 역시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진아/밀가루 다이어트▶
    (밀가루 음식은 앞으로도 안 드실 거예요?)
    "안 먹을 거예요." (왜요?) "미란다 커도 밀가루 음식 안 먹는데 전혀 몸에 좋을 게 없으니까 안 먹을 거예요.

    밀가루가 몸에 좋지 않고, 특히 비만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밀가루 음식을 기피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이 밀가루에 들어있는 단백질인 글루텐을 뺐다는 식품까지 등장했습니다.

    밀가루와 글루텐, 과연 몸에 나쁜 걸까요?

    "파스타 주세요. 밀가루로..."

    밀가루를 밀거래하는 현장을 경찰이 급습했습니다.

    밀가루를 마약에 빗댄 한 식품업체 광고입니다.

    "이런 글루텐 덩어리들. 너희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이 광고 영상은 밀가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 준다는 대한제분협회의 고발로 인터넷에서 모두 내렸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TV 광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밀가루와 글루텐이 없다며 쌀로 만든 파스타를 광고하는 겁니다.

    ◀조규철/아워홈 홍보팀장▶
    "밀가루 자체에 대해서 예민하고 과민하신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저희는 그런 소비자의 어떤 수요가 있다고 봤고요."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이 회사 면류 제품의 매출은 150% 성장했습니다.

    글루텐이 무엇일까?

    밀가루를 여러 차례 반죽한 뒤 흐르는 물로 씻어내면 전분은 흘러 나가고, 쫀득쫀득한 부분만 남습니다.

    이게 바로 밀가루의 단백질인 글루텐입니다.

    ◀김은미 연구원/대선제분▶
    "점탄성을 가진 글루텐은 면에서는 쫄깃한 식감을, 빵에서는 형태와 볼륨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글루텐 프리 열풍은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인 133명 당 1명, 약 0.8%의 인구가 글루텐을 먹으면 소화장애 등 심각한 증세를 일으키는 이른바 셀리악 병에 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텁니다.

    ◀최명규 교수/서울 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그 병은 심한 영양실조가 생기고 암도 많이 발생하고 전신질환이 생기고 신경질환도 생기고 또 삶의 질이 굉장히 많이 떨어지고 굉장히 위험한 질환인데"

    글루텐프리를 표방한 식품들이 미국에서 유행하고, 미셸 오바마와 배우 기네스 팰트로 등 유명인들도 이런 식품을 먹는다고 알려지면서 글루텐 프리 열풍은 우리나라까지 넘어왔습니다.

    서점가에선 밀가루 음식의 위험을 경고하는 책들이 다양하게 출간됐고, 밀가루 없이 1주일을 살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하는 글루텐 프리 요리법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과점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만들 수 있거든요."

    과연 우리나라 사람의 몸에도 글루텐은 안 좋은 걸까.

    밀가루 음식 때문에 소화도 안 되고, 장염증상에 시달렸다던 이은수 씨와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했더니, 소장 내벽에 돌기 모양의 '융모'가 정상적으로 뚜렷하게 보입니다.

    ◀최명규 교수/서울 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이런 융모가 있으면 융모가 이제 음식물하고 넓게 표면적을 많이 늘리는 거죠. 영양분을 흡수하기 위해서... 이거는 다 정상입니다."

    셀리악 병 환자는 이 융모가 없는데 글루텐이 융모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은수 씨의 소화불량, 장염증상은 셀리악병 때문이 아니라는 얘기.

    실제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셀리악 판정을 받은 사람은 단 1명.

    한국인이 셀리악 병이 없는 이유는 유전자 구조가 미국인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인은 HLA-DQ2라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많고 이 가운데 일부가 셀리악 병에 걸리지만, 다행히 한국인은 이 유전자가 없어서 앞으로 병이 늘어날 가능성도 없습니다.

    ◀이동호 교수/분당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셀리악 병이 아닌 분들은 글루텐 프리 식품을 섭취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에게 글루텐 프리가 좋다고 자꾸만 광고하는 것은 조금 비약이다. 너무 무리수를 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밀가루를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사람들도 대부분 과식 때문이지, 밀가루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최명규 교수/서울 성모병원 소화기내과▶
    (밀가루 먹으면 속이 안 좋아서 그래서 오시는 분들도 많이 있나요?)
    "있죠 있기야 있죠. 근데 실제로 밀가루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같이 드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대부분.“
    (밀가루 때문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네요.)
    "그렇죠."

    밀가루 음식 때문에 비만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도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합니다.

    밀가루의 열량은 100g 당 330Kcal로 흰쌀밥 보다 오히려 낮고,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매일 먹는 탄수화물과 밀가루 양도 적정한 수준이라는 겁니다.

    ◀송태희 교수/배화여대 식품영양학과▶
    "탄수화물 부분으로 가장 많이 먹는 게 백미. 백미가 140g으로 제일 많고요. 그리고 국수나 빵 라면 밀가루 합쳐서 한 30g 정도 되니까 평균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루텐 프리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아워홈도 밀가루 음식이 나쁘다고 단정한 건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조규철/아워홈 홍보팀장▶
    (아워홈엔 밀가루 음식이 없나요?)
    "밀가루 음식이 있습니다. 저희가 어떤 것은 나쁘다 또 어떤 것은 피해야 된다라고 얘기한 게 아니고요. 소비자한테 선택의 다양성을 주기 위해서"

    글루텐이 없으니 몸에 좋다는 식의 광고처럼.

    요즘 식품업계에선 이런 저런 첨가물을 뺐다는 이른바 무첨가 마케팅이 대세입니다.

    하지만 여기엔 소비자가 잘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식품 마다 겉 표지에 '무첨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3무첨가, 5무첨가, 6무첨가.

    이런 저런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았다는 뜻.

    소비자들은 이런 제품이 몸에 더 좋을 거라고 믿습니다.

    ◀백수진▶
    "합성첨가물 안 들어간 게 좋은 거 아니에요?"
    (왜 그렇게 안 들어간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몸에 안 좋으 거니까요."

    ◀박건욱▶
    "몸에 나쁘고 안 나쁘고를 떠나서 조금 안심이 되는 것 같아요. 무첨가 됐는 것 자체가 안 좋은 게 안들어 갔다는 느낌이라서."

    웬만한 주부들도 한두 가지 첨가물 이름을 알 정도가 됐습니다.

    ◀백현미▶
    (알고 계신 합성첨가물 뭐가 있을까요?)
    "햄 같은 거 아질산나트륨?
    (그런 것도 아세요?)
    "발색제."

    바로 이 소시지가 주부가 말한 아질산나트륨을 뺐다는 제품입니다.

    겉표지에 눈에 띄게 아질산나트륨 무첨가라고 적어놨습니다.

    뭔가 나쁜 물질을 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질산나트륨은 인체에 무해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필요한 첨가물이라는게 전문가의 말입니다.

    ◀정재훈/한국·미국 약사▶
    "사실은 이런 가공육을 만들 때 아질산나트륨이 안 들어 있으면 더 위험한 거예요. 안 들어 있으면 보툴리누스균이라고 해서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균에 오염될 수 있거든요"

    업체들이 방부기능을 위해 썼다는 대체 물질은 '샐러리 분말'.

    그런데 이 샐러리 분말이 다름 아닌 바로 아질산나트륨입니다.

    말하자면 아질산나트륨을 빼고, 아질산나트륨을 다시 넣은 셈입니다.

    ◀정재훈/한국·미국 약사▶
    "결국엔 샐러리 분말에 들어 있는 게 아질산나트륨이니까 마찬가지 역할이거든요. 이렇게 하는 건 사실 좀 굉장히 소비자를 오인 시키거나 오도할 수 있는 그런 행위이죠."

    업체들은 아질산나트륨이 무해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좀 더 고급 이미지의 무첨가 제품을 내 놓고 가격을 10~20% 올려 받는 겁니다.

    ◀이덕환 교수/서강대 화학과▶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사회적으로 거부감을 불러 일으켜 놓고 그 다음에 그걸 이용해서 다시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거죠. 소비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마케팅 전략입니다."

    이에 대해 업체들은 억울하다고 반박합니다.

    일부 환경단체와 언론이 아질산나트륨을 유해물질인 것으로 잘못 알고 사용을 금지하라고 줄기차게 압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겁니다.

    ◀김세원 과장/제일제당 육가공 마케팅팀▶
    "계속 햄 소시지 먹으면 안 된다 불매운동하고 이러면 저희입장에서 소비자들한테 어떤 선택을 줘야 되는 거죠. 우리는 합성아질산 나트륨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도 있고요. 합성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간 제품도 있고요"

    아질산나트륨은 우리가 흔히 먹는 김치나 시금치에도 많이 들어있는, 보편적인 성분으로 유해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최낙언 소장/시아스식품연구소▶
    "아질산을 먹지 말라고 하면 사실은 채소를 먹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고 있는 아질산의 80%가 다 채소로 먹는 겁니다. 저희 침에도 아질산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이걸로 살균하고 내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요."

    이밖에도 무첨가 했다는 물질을 따지고 보면 어이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어묵엔 밀가루를 뺐다고 해 놓고 뒷면을 보면 소맥전분을 사용했습니다.

    알고 보면 그게 그건데, 가격만 더 비쌉니다.

    ◀송태희 교수/배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그런데 그거를 무밀가루라고 하면서 소맥전분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 역시
    밀가루에서 나온 밀가루 전분입니다."
    (같은 건가요?) "네."

    완전 천연 색소인 코치닐 색소를 뺐다는 게살도 있고, 이름도 어려운 스테비올배당체와 소르빈산나트륨을 빼고, 그 대신 천연 비타민C를 넣었다는 제품도 있는데 사실 뺐다는 첨가물들이 바로 비타민C입니다.

    ◀이덕환 교수/서강대 화학과▶
    "사실은 다 비타민C를 화학적으로 부르는 이름들이에요. 그러니까 화학분야에서 화학 물질을 부르는 이름은 하나가 아니고 굉장히 다양합니다. 똑같은 물질을 서로 다른 이름을 바꿔가면서 소비자를 속이는 거죠."

    이런 무첨가 꼼수 마케팅은 당장은 이득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업체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조미료로 쓰는 MSG.

    사탕수수를 발효해서 만든 천연물질로, 아무리 먹어도 해롭지 않다는 게 이미 입증 됐고, 소금사용량을 1/6로 줄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라면 업체의 경우, MSG 대신 더 값비싼 천연물질을 쓰느라 해마다 200억 원의 비용을 더 들이고, 소비자들은 불필요하게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정재훈/한국·미국 약사▶
    "무첨가라든지 건강에 좋은 이런 메시지들은 사실은 그냥 마케팅 차원에서 적혀있는 거지 거기에 대해서 실질적인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굉장히 드물어요.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너무 휘둘리지 않고 상술에 놀아나지 않는 그런 게 현명한 소비 방법이겠다."

    나와 가족이 먹을 음식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악용한 꼼수 마케팅.

    소비자들이 알아서 걸러내고 선택하라는 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유행병이 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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